혜영 대중을 만나기 위한 다른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코미디 워크숍도 가본 거예요.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정치인은 그냥 만들어야 하는 법만들기만 하면 되고, 사람들은 그걸 알아주겠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어떤 정치인이 청년이고, 여성이고, 소수 정당 소속이고, 게다가 약자 관련 이슈를 다룬다고 하면 그 자체로 놀잇감이 되기 쉬워요.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무시할 준비가 되어 있거나, 모욕할 준비가되어 있거나, 아주 극소수의 청중들만 모이게 되죠. - P158
혜영 누군가를 미워하려면 정성을 다해야 되지 않나요? 그 사람의 디테일을 알아야 미움이 솟아나니까요. 예를 들면 전가족은 미워할 수 있어요. 왜냐면 가족의 가장 미운 점을 속속들이 잘 아니까요. 거기에 대해서 두 시간 동안 떠들 수 있을정도죠. 근데 트위터에 있는 사람들을 그렇게까지 정성껏미워할 수는 없어요. 그만큼 제 마음속 미움이 크지는 않아요. 대신에 악의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가 좀 더 어려운부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 안에 또 다른 캐릭터가 생기는 것 같아요. 공적인 나의 캐릭터.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페르소나가 생기는 과정에 있어요. 선의만으로 이루어진 마음은 악의를 만날 때 너무 부서지기 쉽고, 배반당했을 때 상처를 너무 크게입잖아요. 그래서 과거와 다르게 공적인 선의의 차원에서 페르소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 P160
유리 아직 많이 남았어요. n번방 방지법 입법했을 때도요. n번방 방지법에 따라 카카오톡 등 해당 법의 대상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을 필터링하도록 했는데, 당시 쟁점이 온통 기술적인 문제에 쏠려 있었어요. 필터링이 뭐 하는 거냐, 혹시 위험한 기술 아니냐, 이런 걸 가지고 갑론을박했지, 이 법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는 신기할 정도로 외면되었거든요. 가해자 처벌을 엄하게 하면 되지, 기술적 차단을 왜 하려고 하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죠. 재판하는 동안에도 피해자의 불법 촬영물은 계속 유포되고 있으니까 그렇죠! 그런 사람들은 불법으로 촬영하고 유포하고 시청하는 가해자 수가 몇 명인지는 알까요? 저는 거꾸로 따지고 싶어요. 어차피 다른 플랫폼으로도 유포되는데 왜 카톡 오픈채팅방에 굳이 그런 기술을 적용하냐고요? 불법 촬영물이 유통되는 오픈채팅방이 엄청나게 많으니까 필터링을 하죠! 카톡에도 n번방 같은 게 존재했으니까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라도 막아야지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격앙됨) 근데 그때 혜영 님이 라디오에 나와서 이런 발언을했어요. ‘완벽한 n번방 방지법을 만들고 싶어 한다면 대한민국은 아마 그런 법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기술적이고 물리적인 환경이 끊임없이 달라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성범죄가 등장하고 있고, 그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따라잡기 위해 입법부가 노력하는 것이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이법이 입법됐을 때 얼마나 안심할 수 있을지를 조금 생각해봐주시면 좋겠다. 이 법이 모든 인터넷에서의 성착취 피해 영상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특정한 규모의 온라인 공간에서는 나의 피해 영상이 올라가지 않겠구나, 라고 하는 데서 얼마나 안심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주면 좋겠다.‘ - P175
무모 담 님의 계기는 뭐였어요?
담 사실 저는 기르던 식물 때문에 비거니즘을 시작했거든요. ‘괴마옥‘이라는 선인장과 식물이었어요. ‘옥자‘ 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열심히 키웠는데, 애정이 과했는지 과습이 온 거예요. 선인장이 물을 싫어하잖아요.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어느 순간부터 선인장이 무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살리고 싶어서 사이버 식물병원에 문의를 해보니까 이미 상한 밑동을 잘라내고 남은 윗부분을 말렸다가 다시 심으면 괜찮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무모 네.
담. 그래서 제가 옥자를 뽑아가지고 칼로 밑동을 자르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한 거예요. (웃음)
무모 (웃으며 끄덕끄덕)
담. 맨날 다른 채소, 그러니까 감자, 당근, 양파 같은 거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썰어서 음식을 만들었으면서도, ‘옥자는 나한테 채소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모 같은 식물인데도요•••.
담 네. 그때부터 약간 고기 먹기가 어려워졌던 것 같아요. 뭘 먹을지 말지가 너무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 P210
무모 예방적 살처분을 최대 3킬로미터 이내라는 광대한 범위까지 시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일본을 비롯해서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경우는 전염병이 발생한 농가에서만 살처분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어요. 역학조사상으로 위험군에 속하지만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은 농가에서는 정밀검사 후에 문제가 있을 때만 살처분을 시행하고요. 네덜란드는 방역 정책이 굉장히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는데도 1킬로미터 이내 살처분 정책을 가지고 있고요. 독일에서도 살처분 범위 설정은 굉장히 신중하게 이루어지거든요. 사육 밀집도 등의 요소를 꼼꼼히 고려해서요.
유리 돼지의 목적이 건강한 음식이기 때문에, 음식이라서더 철저하게 ‘예방‘하는 것도 있겠죠? 위생적인 고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
담 실적 내기에 급급한 행정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2021년 12월에 동물권 행동 카라가 주관한 가축전염병 예방법 개정 국회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현재의예방적 살처분 정책을 ‘실패한 맞불 작전‘에 비유하는부분이 있었어요.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산을 맞불로 태워버린 다음 산불 진압에 성공했다고 말해도 되냐는 지적이었죠. 그러면서 ‘가축방역이란가축을 건강하게 살리는 것이 목적이지 건강한 가축을 과잉 살처분하여 방역 행정 성과 실적을 쌓으라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하고 있어요. 현재의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동물을 소모품으로만 다룰 뿐 동물의 생명과 건강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현행법에 ‘가축의 건강 유지‘를 목적으로 추가하라는 개정안도 제안되었고요.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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