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버그가 내놓은 연구 결과 중에도 영향력이 가장 컸던 것은, 도덕적으로 가장 발달한 아이 (콜버그의 채점 기법으로 따졌을 때)는 역할 바꾸기를 평상시에 자주 접하는 아이라는 사실이었다. 역할 바꾸기란 자기 자신을 상대방의 입장에 놓아보고 어떤 문제를 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평등한 관계 (또래 사이)에서는 이것이 쉽지만, 수직적 관계(선생님이나 부모와의 관계)에서는 이것이 여의치 않다. 태어나서 한 번도 선생님이 되어본 적이 없으니 아이로서는 선생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부모를 비롯한 권위적 존재가 도덕 발달에는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것이 피아제와 콜버그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물리적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아이에게 뭔가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는 아이에게컵과 물을 가져다주고 그것으로 놀이를 하게 하면 된다. 물의 총량불변의 원리를 굳이 말로 가르치려 들지 말고 말이다. 아이에게 사람과 어울려 사는 사회적 세상에 대해 가르치고 싶을 때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내버려두고 다툼도 자기들끼리 해결하도록 한다. 십계명을 구구절절 말로 가르칠 필요가 없는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제발 아이들에게 하느님이나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복종할 것을 강제하지 말라고 했다. 그랬다간 아이들이 규약정립기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만 초래될 뿐이라는 것이다. - P39

다시 말해, 피아제나 콜버그의 애초 가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어린나이임에도 모든 규칙을 다 똑같이 다루지는 않는다. 도덕철학자처럼 유창한 말솜씨는 없을지언정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정보를 복잡다단한 방식으로 분류하느라 그들 역시 나름대로 바쁜 것이다. 남에게 해가 가지 않게 하는 규칙이 특별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또 어디에나 적용되는 불변의 규칙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일찌감치 깨닫는 것으로 보인다. 튜리얼은 이러한 깨달음이야말로 모든 도덕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기본 토대였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잘못이다"라는 절대적인 도덕적 진리를 주춧돌로 삼고 그 위에 도덕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하나하나 건설해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마다 규칙의 세부 내용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튜리얼이 연구한 문화에서는 어느 곳이나 아이들은 도덕적 규칙과 규약적 규칙을 구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튜리얼이 도덕 발달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보면 콜버그의 설명과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둘의 연구가 담고 있는 정치적함의는 비슷하다. 즉, 개개인에게 도리를 다하는 것이 도덕성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충성심 · 존경심·의무감 · 경건함. 애국심 · 전통 등의 덕목보다는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공평성을 지키는 것이 도덕성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한편 위계나 권위는 대체로 훌륭한것이 못 된다(그러므로 제일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스스로 깨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나 가정에서는 권위주의적 원칙에 따라 어른들이 아이들을 훈련시키고 제약하기보다는 평등과 자율성으로 대표되는 진보적원칙을 구현하려고 애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 P43

내 예측대로라면 세 도시 중 가장개인주의적인 곳(나아가 튜리얼의 이론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곳)은 필라델피아일 것이었고, 가장 사회중심적인 곳(나아가 오리사에서와 비슷한 결과가나오는 곳)은 헤시피가 될 것이었다.
연구 결과는 그야말로 명약관화하게 슈웨더의 이론을 지지하고 있었다. 먼저, 필라델피아의 피험자 네 그룹 모두는 튜리얼의 연구 결과를 확인시키기라도 하듯 도덕 위반과 규약 위반을 확실히 구분하는 미국인의 모습이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나는 튜리얼이 연구에사용한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즉, 여자아이가 그네에서 남자아이를 밀어 떨어뜨리는 이야기 (사람들은 이를 확실한 도덕 위반의 사례로보았다)와 교복을 입지 않고 학교에 가는 남자아이 이야기 (이는 규약 위반의 사례로 보았다)를 이용한 것이다. 이는 연구의 방법론을 정당화하는 길이기도 했다. 도덕과 사회 규약의 차이를 이런 식으로 못 박아이 두 이야기를 포함시켜두면, 무해한 금기 이야기에서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탐색 질문이나 면접관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탓할 소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도 상류층은 튜리얼의 두 가지 이야기에 대해서 미국인과 생각이 똑같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브라질의 노동자 계층 아이들은 달라서 교복을입지 않는 것은 보편적으로 잘못이라고 답했다. 특히 헤시피에 사는노동자 계층 아이들은 교복 안 입는 반항아를 또래를 미는 여자아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양상은 슈웨더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즉, 문화 집단에 따라 어디까지가 도덕이고 어디까지가 규약인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 P61

연구에서 얻은 두 번째 발견은 무해한 금기 이야기에 대해 사람을은 슈웨더가 예측한 그대로의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필라델피아의 상류층에서는 그 이야기를 사회적 규약을 어긴 것으로 판단한 반면, 헤시피의 하층민은 도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나아가 도시(포르투 알레그레의 시민들이 필라델피아 시민들보다 도덕의 범위가 넓었다). 사회계층(하층민이 상류층보다 도덕의 범위가 넓었다), 연령 (아이가 어른보다 도덕의 범위가 넓었다)도 저마다 상당히 큰 영향력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예상치 못했던 점은, 도시보다도 사회계층이 갖는 영향력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세 도시 어디든 고학력자들은 이웃의 하층민보다 오히려 다른 도시의 고학력자와 더 유사한 성향을 보였다. 도덕성이 차이 나는 곳을 찾겠다고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무려 5000마일을 날아갔건만, 알고 보니 그 차이는 불과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우리 학교 주변의 가난한 이웃과의 사이에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 P62

• 도덕성의 범위는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서양적이고, 교육 수준이 높고, 개인주의적인 문화에서는 도덕성의 범위가 몹시 좁다. 반면 사회중심적 문화에서는 도덕성의 범위를 넓히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써 삶의 더 다양한 측면을 아우르고 통제한다.
• 사람들이 갖는 직감(특히 역겨움 및 경멸감과 관련된 것)은 때로 도덕적 추론을 진행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도덕적 추론은 때로사후 조작과 다름없는 양상을 보인다.
• 도덕성은 아이들이 피해의 개념을 잘 이해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세워나가는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틀림없이 문화를 통한 학습이나 문화적인 유도가 합리주의 이론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할 것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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