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956년 7월
달링턴 홀
요 며칠 사이에 나의 상상을 붙들어 온 그 여행을 정말 감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패러데이 어르신의 안락한 포드를 타고 나 홀로 즐기게 될 여행, 잉글랜드의 수려한 산하를 거쳐 서부 지방으로 나를 데려다줄 여행, 그리고 예상컨대 무려 닷새나 엿새 동안 나를 달링턴 홀에서 떼어 놓을 여행이다. 이 여행의 발상 자체가 패러데이 어르신의 지극히 고마운 권유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 P9
그러나 잠시 후 주위 풍경이 점점 낯설어지면서 내가 기존에 알았던 모든 경계들을 넘어 버렸음을 깨달았다. 흔히들 쓰는 말을 빌리자면 배에 돛이 오르는 순간 마침내 육지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이러한 순간을 두고 들뜬 기분과 불편함이 뒤섞인 느낌이라는 표현이 종종 사용되는데, 내가 주변 경관이 점점 낯설어지는 가운데 포드에 앉아서 받았던 느낌과 매우 흡사한 것 같다. 이런 느낌이 든 것은 내가 차의 방향을 틀어 산자락을 끼고 도는 도로에 들어선 직후였다. 도로변에 늘어선 수목들과 두껍게 덮인 나뭇잎들 때문에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왼편이 가파른 절벽이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내가 정말 달링턴 홀을 남겨 두고 떠나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고백하건대 약간 불안감도 들었다. 지금 혹시 길을 잘못 들어 황야로 이어지는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쌩쌩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더욱 짙어지는 불안감 말이다. 그 느낌은 아주 잠깐에 불과했지만 결국 속도를 늦추게 만들었다. 심지어 길을 제대로 가고 있음을 확인한 후에도 왠지 차를 멈추고 잠시 중간 평가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 P39
우리가 이 땅을 ‘그레이트(위대한)‘ 브리튼이라 부르는 것을 두고 좀 건방진 관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우리 나라의 풍경 하나만으로도 그 숭고한 형용사를 사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위대함‘이란 정확하게 무엇인가? 그것은 대체 어디에, 혹은 무엇에 존재하는가? 물론 이러한 질문에 답하자면 내 머리보다 훨씬 더 지혜로운 머리가 필요하다는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게 위험을 무릅쓰고 추측해 보라고 한다면 명백한 극적 효과나 화려함의 ‘결핍‘, 바로 그점이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차분한 아름다움, 절제의 미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다. 마치 땅 자체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대함을 자각하고 있어 굳이 소리 높여 외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에 비해 아프리카나 미국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은 전율에 가까운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꼴사나운 과시욕으로 인해 객관적인 관찰자에게는 저급하다는 인상을 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P47
모두 내가 확인해 보았으므로 아마도 정확한 이야기들일것인 이 두 사례에서 내 부친은 ‘헤이스 소사이어티‘가 지칭한 ‘자신의 직위에 상응하는 품위‘를 증명해 보일 뿐 아니라 당신이 이미 그 화신의 경지에 근접해 있었다는 점에 여러분도 동의해 주면 좋겠다. 그러한 때의 내 부친과 잭 네이버스 씨(기술적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던 때의 그 사람이라고해도 상관없다.) 같은 인물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면 ‘위대한‘ 집사와 단순히 유능한 집사를 나누는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식별이 좀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만찬 식탁 밑에서 호랑이를 발견하고도 태연할 수 있었던 집사의 이야기를 내 부친이 그렇게나 좋아하셨던 이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그 일화의 어딘가에 진정한 ‘품위‘의 핵심이 담겨 있음을 내 부친은 본능적으로 알고 계셨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이 단정하고 싶다. 즉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모자라는 집사들은 약간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포기하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집사로산다는 것은 무슨 팬터마임을 연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슬쩍 밀거나 약간만 비틀거리게 만들어도 가면이 떨어져 내려가면 뒤의 배우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는 점에서 말이다. - P70
위대한 집사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제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점잖은 신사가 정장을 갖춰 입듯 자신의 프로 정신을 입고 다니며, 악한들이나 환경이 대중의 시선앞에서 그 옷을 찢어발기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그 옷을 벗을 때는 오직 본인의 의사가 그러할 때뿐이며, 그것은 어김없이 그가 완전히 혼자일 때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품위‘의 요체다. - P71
반쯤 빛을 받고 있던 부친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내가 계속 말했다. "외부 손님들이 계시든 안 계시든 더 이상 아버님께 식탁시중을 맡겨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지난 오십사 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식탁 시중을들어왔다." 부친은 서두르는 느낌이 전혀 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또 있습니다. 아무리 짧은 거리더라도 아버님께 물건이얹힌 쟁반을 나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제한들을 고려해, 또 아버님께서 간명한 것을 워낙 중시하신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수정한 업무 목록을 만들어 왔습니다. 지금 이 시간 이후로는 이 내용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들고 있던 종이를 그분께 직접 건네기가 싫어 침대가장자리에 얹어 놓았다. 부친은 그것을 힐끔 보시고는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리셨다. 여전히 뚜렷한 감정의 흔적이 없는 표정이었고 의자 등받이에 얹힌 두 손도 긴장 상태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비록 등은 굽었지만 그분의 풍채에담긴 충격적인 효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옛날 차뒷좌석에 앉은 술 취한 두 신사를 정신 번쩍 들게 만들었던 바로 그 느낌 말이다. 이윽고 부친께서 말씀하셨다. "그때는 계단 때문에 넘어졌을 뿐이다. 계단이 한쪽으로 기울었어. 다른 사람이 또 그 꼴을 당하기 전에 거기를 바로잡으라고 시머스한테 일러 주어라."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저 종이를 꼼꼼하게 읽어 보기는하실 거죠?" "시머스한테 계단을 고치라고 꼭 지시해. 유럽에서 신사분들이 도착하시기 전에 확실하게 해야 해." "알겠습니다. 아버님. 그럼 좋은 아침 되십시오." - P104
포플러나무의 그림자들이 잔디밭 대부분을 덮고 있었지만 모퉁이, 정자로 올라가는 언덕배기 쪽에는 아직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부친은 네 개의 석판으로 된 그 계단 옆에 깊은 생각에잠겨서 계셨다. 미풍이 그분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흩어 놓고 있었다. 잠시 후 내가 지켜보는 사이 부친께서 아주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셨다. 맨 위 칸에 이르러 돌아서시더니 약간 더 빠른 걸음으로 다시 내려오셨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시더니 앞에 놓인 계단을 응시하며 몇 초가량 다시 조용히 서계셨다. 이윽고 부친께서 두 번째로 아주 조심조심 계단을 오르셨다. 이번에는 계단 위 잔디밭으로 계속 걸어가 정자 가까이 가서야 돌아서셨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땅에서눈을 떼지 않은 채 되돌아오셨다. 그때 그분의 행동은 사실내가 설명하더라도 켄턴 양이 편지에서 묘사한 것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마치 떨어뜨린 귀한 보석이라도 찾고 있는 사람처럼.‘ - P106
"그는 나의 적이었소." 나리께서 말씀하고 계셨다. "그러나 항상 신사답게 행동했어요. 우리는 육 개월 동안서로 포탄을 퍼부어 대면서도 서로를 점잖게 대했소. 그는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신사였고 나는 그에게 아무런 적의도 품지 않았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소. ‘이봐요, 지금은 우리가 적이니 나는 전력을 다해 당신과 싸우겠소. 하지만 이 몹쓸 짓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적이 될 필요가 없으니 함께 어울려 술이나 한잔합시다.‘ 그러나 더 몹쓸것은 이 조약이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다는 거요. 나는 분명 그에게 전쟁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적이 아니라고말했소. 하지만 내가 지금 어떻게 그를 마주 바라보면서 내말이 결국 진실로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 있겠소?" 그리고 잠시 후 나리께서 고개를 가로저으시며 다소 무겁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번 전쟁에서 싸운 것은 이 세계의 정의를 지키기위함이었소. 게르만족을 상대로 하는 복수전에 가담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결코 없었소." - P116
어쨌거나 브레만 씨의 사망 후 이 년여에 걸쳐 나리와 당시 그분의 가장 가까운 동지였던 데이비드 카디널 경이 힘을 합쳐 꾸준히 노력한 결과, 독일의 상황을 계속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공감하는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결속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는 영국인과 독일인은 물론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대부분 외교관이거나 고위 정치인, 저명한 성직자, 퇴역 장성, 작가, 사상가들이었다. 이 신사들 중 일부는 나리와 생각이같아서 당시 베르사유 조약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미 끝난 전쟁을 두고 한 나라를 계속 단죄하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일부는 독일이나 독일 사람들을 크게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다만 독일의 경제 혼란을 막지 못하면 전 세계로 급속히 파급될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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