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 국어 정책은 국어 사용의 현황을 조사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국어학은 국어의 정립이라는 근대적 과제에서 벗어나 언어 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국어 현상을 설명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특히 1960년대 중반 이후 촘스키N. Chomsky의 변형생성문법 이론이 국어학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국어학의 주류적 경향은 국어 정책을위한 언어 연구와 멀어졌지요. 변형생성문법 이론에서는 민족과 민족어의 관계나 언어와 사고방식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보편적인 언어 능력과 보편문법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언어 능력과 보편문법을 전제하는 국어학 연에서 ‘민족어를 발전시키기 위하여‘라는 논리가 설 자리는 없었던것입니다. - P327

●●● 선생님께서는 앞서 해외 한국어 문제, 북한어 문제 등에 대한장기적인 계획의 필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문제는 선생님께서사명의식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실천 방안을 모색한 문제이기도 하죠.
먼저 선생님께서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계획의 일환으로1960년대 후반부터 북한어 연구를 해오셨고 그 결과물로 《북한의 언어연구》(1985)를 출간하셨습니다. 이는 최초의 종합적 북한 언어 연구이면서 이후 북한어 연구의 토대가 되었던 저술이었죠. 선생님께서연구의 물꼬를 트신 북한어 문제는 남북 언어 통일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라 할 수 있을 텐데, 선생님께서 북한어 연구를 하시면서 언어 통일과 관련한 정책 방향에 대해 생각하신 바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지금 국어 정책에 관련되는 문제도 그렇고, 맞춤법 문제와 표준어 문제는 남북 통일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느낌이나 감상을 떠나 장기적으로 검토해서 계획을 세워야 됩니다. 가령 맞춤법은 반드시 합리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조정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또 표준어는 북측과 관련해서 역시 서로가 무리가 없는 수정이 필요합니다. - P333

 선생님께서 제안하신 원칙은 대체로 2005년부터 시작한 <겨레말큰사전> 편찬 작업에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과 북의 언어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하는 이 사전은 남과 북의 언어를 하나로 통일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남과 북의 서로 다른 규범을 존중하는 가운데 남북이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을 편찬 원칙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 이야기가 나오니까 1993년 선생님과 문익환 목사와의 만남에 동행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문익환 목사께서 1989년 방북하여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면서 남북 통일사전 편찬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남으로 돌아와 옥고를 치른 후 이와 관한 사업을 구체화하시면서, 1994년 1월 11일 선생님과 회동을 했으지요. 그 만남이 있고 얼마 뒤인 1994년 1월 18일 문 목사께서 돌아시면서 더 이상 논의를 진척시키지 못했었습니다.  - P334

◆◆◆ 1981년 6월 정부가 외국 이민과 유학을 자유화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종전 정책에 대한 대전환이었다. 그때 뜻있는 사람들은 개방에 앞서 민족성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정책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81년 6월 26일 김민수, 박영순 두 교수는 가칭 이중언어교육연구회 창립이 긴급하다는 소신을 토로했고, 7월 3일 제1차 발기회를 시발로 학회 설립을 구체화했고, 9월 26일 덕성여대에서 이중언어학회 창립 총회를 하고 임원진을 구성했다.
이중언어학회의 문제의식은 학회 설립 취지서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 2세, 3세들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인 국어교육은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정부로 하여금 적극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데 이론적인 뒷받침을 하기 위한 전문기구가 절대로 필요하다. 이에 뜻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지한 논의를한 결과, 다음과 같은 이론적인 근거 위에 가칭 ‘이중언어학회‘라는학술단체를 만들기로 결의하였다." - P338

우리말 글과 관련한 많은 것들이 선생이 이룬 학문적 성과와 실천에 기대어 시작되었고 존속되고 있다. 우리말 공동체가 지속되는 한, 남북 언어 통합을 위한 연구와 실천은 지속되어야 하고, 재외동포와 세계인을 위한 우리말 보급은 더 확대되어야하고, 우리말 사전은 더 풍부하고 정교해져야 하고, 우리말의 원리와 작용은 더 정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선생의 삶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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