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토를 두르세요.」 내가 말했다. 이제 빗발이 잦고 거세졌다. 모드는 내가 두건을 씌우고 끈을 묶어 주는 동안 어린아이처럼 가만히 있었다. 만약 내가 모드를 무덤에서 데리고 나가지않았다면 모드는 흠뻑 젖을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비틀거리는 모드를 데리고 작은 예배당문으로 갔다. 문은 녹슨 사슬과 맹꽁이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지만, 그 위로 썩은 나무 현관이 돌출되어 있었다. 거센 빗방울을 맞자, 현관 나무가 떨렸다. 치마 밑단이 흙탕물로 시커메졌다. 우리는 예배당 문에 어깨를 딱 붙인 채 서로 가까이 서 있었고, 비는 곧게, 화살처럼 곧게 내렸다. 화살 천 개와 불쌍한마음 하나 모드가 말했다.
「리버스 씨가 내게 청혼했어, 수.」모드는 독송을 하는 여자아이처럼 생기 없게 말했다. 그리고모드가 이 말을 하기를 그토록 열심히 기다려 왔음에도, 대답을 하는 내 목소리도 모드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어두웠다. 내가 말했다.
「어머, 모드 아가씨. 이보다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어요!! - P182

「모르겠어.」
「모르시다니요? 어떻게 그런 일을 모르실 수가 있으세요? 리않으세버스 씨가 다가오는 걸 보실 때면 가슴이 콩닥거리지요? 그분 목소리에 가슴이 설레고 손길에 몸이 떨리지 않으세요? 밤에는 그분 꿈을 꾸지 않으세요?」
모드는 도톰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게 내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뜻이야?」 「당연하죠! 그럼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모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고, 몸을 떨었다. 손을한데 모으고 젠틀먼이 어제 입술을 댔던 손바닥 부분을 다시 어루만졌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모드가 그곳을 어루만지는 게 아니라 문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제의 키스를 소중히 여기고있던 게 아니었다. 모드는 젠틀먼 입이 닿은 자리를 화상 입은것처럼, 가려운 것처럼, 가시 박힌 것처럼 느꼈고, 입술이 닿았던 곳을 문질러 그 기억을 지우려던 것이었다.
모드는 젠틀먼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다. 모드는 젠틀먼을두려워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모드는 눈을 뜨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내가 속삭였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모드가 전율했다. 
「리버스 씨는 나를 원하셔. 청혼을 하셨고, 나를 자기 아내로 맞으실 생각이야.」
「그러면 싫다고 하세요.」
모드는 내 말이 안 믿긴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나 역시 내가한 말이 믿기지 않았다. - P186

나는 거의 일어설 뻔했다. 하마터면 문 쪽으로 갈 뻔했다. 하인 역할을 하는 데 그토록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드를 보았다. 얼굴에 혈색이 하나도 없었다. 모드가 말했다. 「하지만 마거릿이나 다른 아이들이 문 앞으로 오면 어떻게 해요?」「그 사람들이 뭐 하러 그러겠습니까?」 젠틀먼이 말했다. 그리고 그런다한들 무슨 소리를 듣겠습니까? 우리가 아무 소리없이 조용히 있을 텐데 말이죠. 그러면 하인들은 다시 가던 길로 갈 겁니다.」 젠틀먼이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좀 봐줘, 수.」젠틀먼이 음흉하게 말했다. 「연인들을 위해 좀 봐줘. 넌 연인이있었던 적 없어?」 젠틀먼이 이 말을 하기 전까진, 거의 나가려던 중이었다. 하지만 돌연 <자기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젠틀먼은 왕이라도 되는 양 행동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사기꾼에 불과했다. 끼고 있는 반지는 가짜였고, 가지고 있는 은화니 금화니 모두가 가짜였다. 젠틀먼보다는 내가 더 모드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었다. 나는 모드 침대에서 모드와 함께 잤다. 나는 모드가 나를 자기 누이동생처럼 사랑하게 했다. 젠틀먼은 모드를 겁내게 할 뿐이었다. 나는 원한다면 모드가 젠틀먼에게서 마음을 돌리게 할 수도 있었다! 결국에 젠틀먼은 모드와 결혼할 터였고, 그거면 충분했다. 원할 때마다 젠틀먼이 모드에게키스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모드가 질질 끌려 다니며 겁먹게 놔두고 싶진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빌어먹을. 어찌되든 3천 파운드는 받을 거잖아!>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저는 릴리 아가씨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아가씨 삼촌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그리고 스타일스 부인이 알기라도 하면 전 여기를 떠나야 한답니다.」
젠틀먼은 나를 보고 인상를 썼가. 모드는 나를 전혀 보고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모드가 고마워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 P191

젠틀먼이 옳았다. 빌어먹을 젠틀먼. 모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젠틀먼이 마음씨와 가스관에 대해 무엇이라 지껄이든, 모드는 상냥하고 친절했으며 다정함과 아름다움과 선함 그 자체였고,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젠틀먼의이야기는 옳았다. 어떻게 빈손으로 버러에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석스비 부인이 한몫 잡게 해줘야 했다. 어떻게 부인과입스 씨, 그리고 존에게 가서 내가 계획을 박차고 나왔으며 3천파운드를 날려 버렸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유라고는 단지••••••.
이유는 뭐? 단지 내 마음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고와서?
아마도 그 말을 들으면 부인이나 입스 씨, 존 모두 내가 용기가없어서 실패했다고 말할 터였다. 내 앞에서 비웃을 터였다! 내게는 명성이 있었다. 나는 살인자의 딸이었다.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그 가운데 고운 마음씨는 포함되어 있지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이 모든 것을 포기했다손 치자. 그렇다고 어떻게 모드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 P201

「당신은 진주예요.」 내가 말했다. 모드는 그토록 하얬다. 「진주예요, 진주, 진주]

어둠 속에서 말하기는 쉬웠다. 행동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침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회색 빛줄기를 보며 내가 지난밤에 한 일을 떠올리자 <하느님, 맙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드는 여전히 자고 있었고 눈살을 찌푸리고있었다. 입이 벌어져 있었다. 입술은 말라 있었다. 내 입술 역시말라 있었다. 손을 올려 내 입술을 만져 보았다. 그리고 손을 뗐다. 모드 냄새가 났다. 그 냄새에 몸 안쪽에서부터 전율이 일었다. 이 전율은 지난밤 내가 모드와 몸을 맞대고 움직였을 때 나를, 우리 둘을 휘어잡았던 전율의 유령이었다. 〈갖다.〉 버러의 여자아이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그 남자가 널 가졌어?> 사람들은 그것이 재채기처럼 다가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채기는그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전혀 관계없었다••••••.
나는 기억을 되살리며 다시 몸을 떨었다. 손가락 끝을 혀에댔다. 날카로운, 식초 같은, 피 같은 맛이 났다.
돈 맛이 났다.
두려워졌다. 모드가 살짝 움직였다. 나는 모드에게서 시선을돌린 채 일어났다. 내 방으로 갔다. 아픈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 술에 취한 모양이었다. 아마 저녁 식사 때 마신 맥주가 잘못된 모양이었다. 어쩌면 열이 있는 것도 같았다. 손과 얼굴을씻었다. 물이 너무 차가워 바늘에 찔리는 느낌이었다. 다리 사이도 씻었다. 그리고 옷을 입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모드가 깨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천천히 모드에게 갔다. 커튼 사이공간으로 모드를 바라보았다. 모드는 베개에서 일어나 잠옷 끈을 매고 있었다. 지난밤 내가 풀어 놓은 끈이었다. - P213

그 순간, 마침내, 나는 젠틀먼이 꾸민 더러운 음모의 대상이 바로 나였음을 깨달았다.
나는 울부짖었다.
「이 돼지 같은 자식아!」 다시 몸을 비틀어 젠틀먼 쪽으로 다가가려 하며 내가 외쳤다. 이런 망할 놈! 오!」 젠틀먼은 사륜마차 출입구에 서 있었다. 마차가 살짝 기울어있었다. 크리스티 의사는 나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고, 의사의얼굴이 험악해졌다.
「제 병원에서는 그런 말을 쓰시면 안 됩니다. 리버스 부인.」 의사가 말했다.
「이 남색꾼 새끼.」 내가 의사에게 말했다. 「저 새끼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저놈이 거짓말하고 있는 걸 모르겠어? 당신이 데려가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나는 여전히 발버둥쳤고, 의사는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의사 너머로, 흔들리는 사륜마차로 눈길을 주었다. 젠틀먼은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젠틀먼 너머로 모드가 앉아 있었다. 미늘창 가리개사이로 들어온 빛줄기가 모드를 비추고 있었다. 모드의 얼굴은 말랐고, 머리털은 부스스했다. 입고 있는 드레스는 하녀들 드레스처럼 낡아 있었다. 모드의 눈은 거칠었고,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물 뒤로 보이는 모드의 시선은 차갑고 단단했다. 대리석처럼, 놋쇠처럼 단단했다.
진주처럼 단단했고, 진주 속 모래처럼 단단했다.
크리스티 의사는 내가 모드를 보는 것을 보았다.
「뭘 보고 계시는 겁니까?」 크리스티 의사가 말했다. 「부인의 하녀를 아실 텐데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드는 할 수 있었다.
모드는 평소와 다른 목소리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쌍한 우리 마님. 오! 이런 모습을 보니 제 가슴이 미어져요!」

당신은 모드를 숙맥이라고 생각했다. 숙맥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 계집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년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 P258

7

처음에, 나는 내가 매우 잘 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저지른 첫 번째 실수이다.

나는 피로 미끈거리는 탁자를 상상한다. 어머니에게서 흘러나온 피이다. 무척 흥건하다. 너무나 홍건해서 피가 잉크처럼 흐른다는 생각이 든다. 피가 그 아래 바닥에 흐르는 걸 막으려고 여자들이 도자기 그릇을 받쳐 놓았고, 그래서 어머니의 비명사이사이로 흐르는 고요함을 <똑!똑!> 하는 소리가 채우고 있다. 어쩌면 시계가 엇박자로 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엇박자소리 뒤편으로 다른 비명들이 좀 더 약하게 들려온다. 미치광이들이 질러 대는 비명과 간호사들이 고함지르고 야단치는 소리이다. 여기는 정신 병원이니까. 어머니는 미치광이이다. 사람들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지 못하게 하려고 어머니를 탁자에 끈으로 묶어 놓았다. 혀를 깨물지 못하게 하려고 턱도 끈으로 벌려 놓았다. 내가 나올 수 있도록 다리 역시 끈으로 묶어 벌려 놓았다. 내가 태어나도 끈은 그대로 어머니를 묶고 있다. 어머니가 나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까 봐 말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머니 가슴에 올려놓자 내 입은 젖을 찾아간다. 나는 젖을 빨고, 병동은 나를 중심으로 침묵에 잠긴다. 아직까지도 〈똑!똑!> 하고떨어지는 핏방울 소리만이 들린다. 내 인생 최초의 몇 분을, 어머니의 최후의 몇 분을 세어 나가는 소리이다. 곧, 헤아리는 소리가 느려지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가슴이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다시 올라간다. 그리고 영원히 가라앉는다.
그걸 느끼고 나는 더욱 거세게 젖을 빤다. 그러자 여자들이 나를 어머니에게서 떼어 낸다. 그리고 내가 울자, 여자들이 나를 때린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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