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G는 ACLU에서 활동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임신중절권을 옹호한 사실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임신 여부에 대한 결정은 여성의 인생과 행복과 존엄이 달린 문제입니다. 따라서 여성이 자율적으로 내려야 할 결정입니다. 정부가 이런 결정을 통제한다면, 여성은 자기 선택에 책임지는 완전한 성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셈이 됩니다." - P120
스캘리아는 소수의견에서 대법원이 뒷문을 통해 슬그머니 엄격심사를 ㅍ집어냈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RBG의 기쁨을 빼앗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버지니아군사대학 판결이야말로 여성이 아무런 인위적 제약 없이 마음껏 열망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닫힌 문을 열어젖히려고 발버둥 치던 1970년대의 노력이 마침내 열매를 맺은 일대 사건이라고 여겼다." RBG는 자신이 대법관에서 낭독한 판결문 사본을 90세의 전 대법관 브레넌에게 보냈다. 오래전 프론티에로 사건에서 엄격심사 여부에 대해 RBG가 다섯 표를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준 사람이었다. RBG는 이렇게 썼다. "친애하는 빌당신이 비춘 빛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보세요!"
RBG는 대법관석에서 판결문을 낭독한 바로 그날, 함께 축하하자며 재판연구원 예닐곱 명을 집무실로 불렀다. 샴페인은 없었지만 대법관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당시 재판연구원으로 그 순간을 함께한 데이비드 토스카노가 말했다. "법원에서 일하던 저에게 찾아온 정말 근사한 하루였습니다."
얼마 뒤 RBG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을 1967년도 버지니아군사대학 졸업생이라고 소개한 발신인은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고 적었다. 젊은 여성들이 과정을 이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튼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아울러 10대인 자기 딸이 그 대학을 가고 싶어 한다고도 썼다. 몇 달 뒤,
같은 사람에게서 또 한 통의 편지가 왔다. 두툼한 봉투에는 물건이 꽁꽁 싸여 있었다. 뜯어보니 주석으로 만든 조그만 장난감 병사가 들어 있었다. 머리핀에 달린 것이었다. 발신인의 어머니가 얼마 전 타계하면서 남긴 것으로, 아들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모든 어머니가 선물로 받은 머리핀이었다. 그는 모친이 이 머리핀을 RBG에게 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P125
RBG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남편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인생을 통틀어 마티에게 받은 가장 중요한 조언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티는 나에게 이런 느낌을 선물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대개 불확실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내가 이 변론취지서를 쓸 수 있을까? 이번 구두변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럴 때면 마티가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그러면 나는 동료들을 둘러보며 속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만만치 않은 일이군. 하지만 적어도 저 친구들만큼은 할 수 있어‘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마티는 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어요. " - 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