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혼란기에, 해방 후에 급속히 확산된 것은 민족을 의식하는국수주의적 사조였어요. 그런데 요것도 가만히 생각하면 일제의 영향으로 보여요. 일본이 군국주의인데 일제 말기에 전쟁이 점점 격화되면서 국수주의로 흘렀거든요. 그런데 일제시대 일본에서 주장하고 강조하던 국수주의를 해방이 되면서 우리나라 쪽으로 돌린 것 같아요. 이걸 우리나라로 돌려서 국수주의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한 거지요. ●●● 선생님 말씀은 일반적인 상식과 다른 좀 뜻밖의 말씀인데요. 일제 말기의 군국주의에 기반한 국수주의적 학문 태도가 해방 이후 우리의 국어 정책을 주도한 조선어학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우리의 국어 정책이 국수주의적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는 말씀이신 거죠? 이게 조선어학회의 해방 직후 언어 정책의 경향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건가요? ◆◆◆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해방과 동시에 석방된 조선어학회 중진들의 존재감, 그리고 일제의 탄압을 받았던 조선어학회활동에 대한 기억은 조선어학회 주도의 국어 정책이 국수주의로 흐르는 데 기폭제가 됐어요. 대중은 이 학회의 운동에 전폭적인 존경과 공감을 표했고 활동에 대해서도 찬동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 P127
◆◆◆ 게다가 아무런 제한도 없이 독단으로 채택해서 보급시킨 규범인(한글 맞춤법 통일안)은 이후 제안된 한글 간소화에서 너무 어렵다고거센 도전을 받고는 약간의 수정을 거쳐 정부 규정이 되었죠. 이렇게이후 진행 과정과 결과를 보면 당시 조선어학회 중심의 국어 정책은당초의 존경과 공감에 비해 기대 이하였다고 하는 것이 조선어학회의 역사적 위상에 대한 올바른 평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 선생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은 결국 국수주의적 태도에 따라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해서 결과가 보잘것없었다는 것이죠? 선생님의 말씀은 민족 독립 운동의 후광이 조선어학회가 추진한 국어 정책에 대한건강한 비판을 가로막았고, 그것이 국어 정책의 실패로 이어졌다는 점을 지적해주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 건강한 비판을가로막아서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 P128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상실된 민족적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해방 직후에는 무엇보다 국어 회복 운동이 시급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일제 말기에 심각한 탄압을 받으면서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진 조선어학회에서는 이러한 위상을 십분 활용하여 전국적 규모의 강습회를 열고국어 교사를 양성하며 일제 치하에서 이룬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좀더 보편적인 규범으로 만들어나가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또한 국어정책의 기본 골격을 ‘한자 폐지, 한글 전용화‘와 ‘일제 잔재 일소, 우리말 도로 찾기‘의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해나가면서 짧은 시간에 적지 않은 성과를 일구어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 조선어학회의 행정, 재정 및 학술적 핵심 내용을 구성하는 데 특정인의 영향력이 지나친 측면이 있었고, 모든 정책들이 충분한 내적 고려 없이 조급하게 이루어진 측면이 있었음은 오늘날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반성해볼 측면이 있습니다. 아울러 이 시기의 국어 정책이 남북으로 분리되어 정착하는 과정에 서로를 염두에두면서 규정을 통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나갔어야 함에도 여러상황상 남북 언어 규범의 분기가 점차 더 심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해방 직후 조선어학회의 많은 언어 정책적 노력들은 그절실함과 진지함. 관심과 환대 속에서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전개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해방 직후 조선어학회 활동의 의의, 장점과 문제점, 한계 부분을 나눠 함께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이 대담의 국어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P135
대한제국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하는 ‘대한민국大韓民國 ‘이라는 국호는 국토의 일부인 남쪽만을 반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저는이 국호가 내내 불만스럽습니다. 저는 ‘대한大韓‘에 대한 해석이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용어의 역사적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할 말이 있습니다. 역사적 시점마다 깊은 검토 없이 ‘대한‘이라는 말을 수용한 당사자들의 무지한 소치를 저는 엄중하게 질타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1897년에 대한제국이 수립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황제 중심의 입헌군주정부는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우리와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하기 위해 아주 계획적으로 황제의 국가, 제국이라고 부르게 했던 거예요. 우리나라를 일본의 괴뢰국으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중국과의 단절을 꾀했던 거라는 말이지요. 궁성 밖에는일본 군대가 지키고 있고, 낭인이 칼을 차고 왕궁에 들어가서 왕후를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그런 상황에 제대로 대응조차 못한 대한제국이 괴뢰정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제국과 황제라는 이름은 일본 침략자들이 우리에게 아주 그럴싸하게 붙인 거예요. 스스로 나라의 힘을 길러서 독립국을 자처하는 의미의 대한제국이었더라면 모르겠으나, 결국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잖아요. 뜻 있는 사람들이 상해에 임시정부를 세웠습니다만, 그사람들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했으니 그들도 무지한 것은 마찬가지지요. 도대체 왜 ‘대한‘이라는 말을 썼느냐 그 말이에요. 조선이라는 명칭을 선택했다면 멀리 단군조선, 고조선도 있으니 이 국호는 중국까지도 포괄이 됩니다. 그런데 1948년에 마침 북측의 국명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돼버렸으니까 우리가 북쪽 명칭을 선호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당시에 정부를 수립할 때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하면서 대한민국이라고 했던 거예요. 이 ‘민국‘이라는 명칭은 ‘중화민국‘의 명칭에서 따온 것일 터인데, 장개석이라는 자가 중화민국을 망하게 만들어서 이 나라는 흔적도 없어졌잖아요. 그러니까 ‘대한‘이라는 명칭도 그렇고, ‘민국‘이라는 명칭도 저로서는 아주 마음에 안 들고 언짢은 점이 있습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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