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낭독을 이어가며 RBG의 목소리는 점점 더 갈라지고 희미해졌다. 하지만 열정만큼은 낭랑하게 빛났다. 굳은 얼굴로 옆에 앉아 있던 얼리토는 주먹을 말아 쥐어 뺨에 괴고 있었다. RBG는 투표권법의 고귀한 목적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취지는 점점 더 교묘해져가는 유권자 탄압에 맞서 싸우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고는 보수 대법관들이 규제를 좋아하고 의회의 결정을 존중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건만, 이번에는 선을 넘고야 말았다고 덧붙였다. RBG는 소수의견에서 "오늘날 투표권법 파괴에 앞장서는 자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는 오만"이라고 썼다. 투표권법이 훌륭하게 작동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폐기하는 행위는 "이 정도 비에는 옷이 젖을 것 같지 않다고 우산을 내동댕이치는 격이라면서 " RBG는 이 자리에서 "한때 꿈으로만 여겼던 미국 내 모든 구성원의 평등・시민적 지위, 인종을 빌미로 희석되지 않는 민주주의 체제, 그 안에서 모든 유권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발언권이 위기에 처했다고 일갈했다. 이표현은 마틴 루서 킹의 저 유명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참고한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평등한 시민적 지위는 RBG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대목이었다. RBG는 40년 전 대법관들 앞에 서서 여성도 헌법상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 따라서 남성과 마찬가지로 평등한 시민적 지위를 누려 마땅하다는 사실, 나아가 시민으로서 권리는 물론 의무까지도 당당하게 진다는 사실을 재확인시킨 사람이다. 그는 킹 목사가 주도한 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세상에 눈을 떴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하던 처지에서 제힘으로 벗어났으며, 여성의 권리에 관한 여러 사건을 대법원으로 가져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 누구도 특히 아이 딸린 젊은 여성이라며 손사래를 쳤던 로펌과 판사들, 임신했다는 이유로 조직에서 내쫓거나 여성이라고 급여를 깎은 상사들은 긴즈버그가 대법관이라는 그 높은 자리에 올라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 P17
딸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겼다. 루스는 숙녀다운 태도를 한시도 잃지 않았다. RBG는 훗날 이렇게 설명했다. "숙녀다운 행실이란 늘 예의바르게 행동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분노나 질투 같은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는 뜻이었지요.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념과 자존감을 확고하게 지킬 줄 알아야 했습니다. 분노에 차서 펄펄 뛰는 건 절대 금물이었고, 노여움과 분노에 휩싸이거나 충동적으로 맞대응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요, 기력 낭비라고 배웠죠. 하지만 그 시절 셀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딸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준 어머니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독립적으로 살라는 가르침이었다. 그 말은 철학적이면서도 실질적인 경고였다. 셀리아는 어렵사리 모은8000달러 정도의 학자금을 딸의 앞으로 남겼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키키 역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셀리아는 외상으로 물건을 구입하면 큰일 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대공황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모은 돈을 2000달러 안으로 쪼개어 다섯 군데 은행에 분할 예치했다. RBG는 이렇게 회상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내게 바랐던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 말이다. 나는 그분의 뜻을 그대로 따랐다. " - P44
그래서 그는 공무원 시험을 치렀다." 연방정부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일반직 분류표를기준으로 업무와 급여가 결정되었는데, 당시 RBG는 5급에 해당되어 민원심사관 자격을 획득했다. RBG는 순진하게도 자신이 취직한 사회보장사무소에 임신 3개월째임을 털어놓고 말았다. 그러자 볼티모어에 가서 연수를 받기 어렵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급수도 최하 등급인 2급으로 떨어졌다. 급여도, 업무 중요도도 낮아진다는 뜻이었다. 같은 사무소에서 일하던 또 다른군인 아내도 5급을 받았지만, 임신 사실을 숨긴 덕분에 볼티모어로 갈 수 있었다. 루스는 이런 이야기를 귀띔 받은 일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는 출산 전에 퇴직하라는 압력까지 받아야 했다. RBG는 사회보장사무소에서 특정 계층 사람들이 좀스러운 관료주의의 부조리 탓에 고통받는 모습을 몇 주에 걸쳐 목격했다. 온갖 풍파에 찌든, 비슷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무소를 찾아와 사회보장 혜택을 받기 위해 대상자로 등록하려 했지만 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곤했다. 출생증명서가 없었던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아기를 낳았을 때, 그들을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여긴 공무원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RBG는 잘못된 관행을 조금씩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65세정도로 보이는 방문자에게 사냥. 낚시 면허를 말없이 발급해주기도 했다. 오클라호마에서 그렇게 2년을 보낸 뒤, RBG는 하버드대 재입학 허가를받아냈다. 사실 군사기지에서 젊은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안락했다. 장교들을 위한 보육시설은 생후 두 달부터 원생을 받았고, 자정까지 운영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여건이 좋다고 해도 어떻게 젖먹이를 둔 엄마가 로스쿨을 소화할 수 있겠는가? 시어머니는 수시로 루스를 안심시켰다. 시아버지도 걱정하지 말라며 한마디 거들었다. "루스, 네가 로스쿨에 못 간다고 해도 너를 나무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정말 로스쿨에 가고 싶다면 더 이상 스스로의 처지를 한탄하지 말거라. 분명 방도가 있을 거다." 루스는 진심으로 로스쿨에 가고 싶었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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