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들의 영성이 꽃처럼 피어나면 그 꽃들이 모여서 문명을이루고 하느님의 나라가 그 위에 세워지는 평화의 구도를 뮈텔은 아직도 이 황잡한 세상에 펼 수가 없었다. 적개심에 가득찬 자에게 평화를 말할 수는 없었다.
총으로 쏘아 죽이는 방식으로 증오를 표출한 천주교인의 죄악에 뮈텔은 상심했다. 백 년이 넘는 박해의 세월을 견디면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는 순교의 피 위에 세속의 거점을 겨우 확보한 조선 교회가 또다시 세속 권력과 충돌한다면 교회의 틀이 위태로워질 것을 뮈텔은 걱정했다. 뮈텔은 자신의 걱정을 신부와 신도들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안중근은 사제를 능멸했고 교회의 가르침을 배반했으며, 교회 밖으로 나가서 살인의 대죄를 저질렀으므로, 그가 비록 영세를 받았다 해도 더이상 교회의 자식이 아니라고 뮈텔은 하느님께 고했다. 하느님은 세속의 일에 관하여 대답하지 않았다. - P185

정대호는 김아려와 두 아이를 어디에 얹혀주어야 할 것인지를생각했다. 난감한 일이었다. 하얼빈에 아이가 둘 딸린 젊은 여자를 의탁시킬 연고처는 없었다. 조선에 있는 안중근의 두 동생들과 편지로 의논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중근이 무슨 생각으로 처자식들을 하얼빈으로 불렀는지 정대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대호는 안중근의 처자식을 데리러 평양에 갔다가 며칠을 주색잡기로 소일하고 10월 23일에야 평양을 떠났는데, 안중근이 총을 쏘기 전에 처자식들을 데려와서 만나게 해주었다면 안중근이 총을 쏠 수 있었을까를 정대호는 생각했다. 안중근을 위해서나 그의 처자식을 위해서나, 총을쏜 후에 그의 처자식들이 하얼빈에 도착해서 안중근이 총을 쏘기 전에 처자식과 만날 수 없었던 것은 잘된 일이지 싶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대호는 마음이 편해졌다. - P199

김아려는 이토가 이미 죽었으므로 남편은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 남편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던 이 년 전에, 남편은 돌아올수 없을 것으로 김아려는 예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결정하자 결정은 사실처럼 굳어졌다. 미조부치는 첫번째 신문을 간단히 끝냈다. 미조부치는 이틀 후에 안중근의 다섯 살 난 장남 분도를총영사관으로 데려와서 진술을 청취하고 기록했다. 총영사관의여직원이 김성백의 집으로 가서 분도를 데려왔다. 김아려는 따라오지 않았다. 미조부치는 청취서에 진술인을 ‘장남 모某,  다섯살‘이라고 썼다.
미조부치는 분도에게 안중근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걸었다.
분도가 안중근의 사진을 보면서
-이것은 나의 아버지다.
라고 말했다고 미조부치는 청취서에 기록했다. 분도가
-어머니가 나를 아버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고 했다.
라고 말했다고 미조부치는 기록했다. - P201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은 사전에 공판 방청권을 발행하고 방청권이 없는 자는 입장을 허가하지 않았다. 방청권을 얻으려면 인적사항을 모두 등록해야 했다. 입장자들은 주소, 성명을 기입한이름표를 달도록 했다. 방청인들은 품위 있는 옷을 입어야 하고, 신발은 구두와 조리草履만을 허용하고, 모자, 외투, 장갑을 착용할 수 없으며 어린이를 데리고 들어올 수 없도록 했다. 복장 불량자는 입장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법원은 거듭 강조했다. 이번사건의 공판에서 문명한 국가의 법정 모습을 세계에 과시하라고 고등법원은 지시했다. 구내식당이 있으나 자리가 모자랄 것이므로 각자 도시락을 지참하라고 법원은 고지했다.
방청객이 몰려서 법원은 1호 법정의 내부를 정리해서 좌석을촘촘히 들여넣었다. 방청객은 법정 복도까지 가득찼고, 방청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건물 밖에서 피의자들을 실은 마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러시아, 일본, 청, 영국의 외교관들과 정부 관리, 법률가들이법정 앞자리에 앉고, 그 뒤로 가슴에 훈장을 단 육군 해군 장교들과 드레스를 차려입은 귀부인들이 앉았다. 요정 마쓰노야의여주인이 연극 구경을 취소하고 하녀들을 데리고 왔다. 여순의이름난 게이샤들이 들어올 때 방청객들의 시선이 몰렸다. 신문기자들은 맨 앞자리 기자석에 모여 있었는데, 가십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은 일반 방청객 속에 섞여 앉았다. - P225

안중근과 우덕순은 법정 안 중앙 통로를 지나갔다. 203고지의 승전 이후에 머리채를 203 고지 모양으로 틀어올려서 뒷목을 드러내는 헤어스타일이 일본 상류 여성들 사이에 유행했다. 203고지 스타일로 머리를 꾸민 남작 부인과 어깨에 숄을 걸친 장군 부인이 목소리를 낮추어서 수군거렸다. - P226

-필요한 몇 가지를 말하겠다. 내가 이토를 죽인 까닭은 이토를 죽인 이유를 발표하기 위해서다. 오늘 기회를 얻었으므로 말하겠다. 나는 한국 독립전쟁의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였다. 그러므로 이 법정에 끌려 나온 것은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객으로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토가 한국 통감이 된 이래 무력으로 한국 황제를 협박하여 을사년 5개 조약, 정미년 7개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싸우고 있고 일본 군대가 진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본과 한국의 전쟁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
-그렇게 깊이 나간다면 공개를 제지할 수밖에 없다. 방청인들은 모두 퇴정••••••  - P238

국선변호인 미즈노는 피고인의 범행은 세계의 대세를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이며, 피고인이 일본 같은 문명국에 태어나서 좋은 교육을 받았다면 이러한 오해를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토 공의 진정이 피고인에게 스며들지 않았고, 의붓어머니가 아무리 자애를 베풀어도 자식이 그 생모를 그리워하는 심정은 인지상정이라고 미즈노는 안중근을 변호했다.
넓은 도량과 깊은 동정심을 가지신 이토 공은 자신을 해친 범인에 대해 극형을 가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며 피고인을 극형에처한다면 이토 공은 지하에서 눈물을 흘리실 것이고, 이것은 돌아가신 이토 공을 경모하는 길이 아니라고 변호인 미즈노는 말했다. 이 같은 취지는 우덕순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미즈노는 변론을 마쳤다.
논고와 변론은 이틀에 걸쳐서 길게 이어졌다. 안중근은 피고인석에 앉아서 잠자코 들었다. 검찰관은 안중근의 범죄가 무지와 오해의 소치이며 이것이 살의의 바탕이라고 말했고, 변호인은 이 무지와 오해는 동정할 만한 것이고 감형의 사유가 된다는취지로 말했다. 검찰관의 논고와 변호인의 변론이 가지런하게 잇닿아서 서로를 꾸며주고 있었다. - P239

황해도 산골 마을에서, 겨울이 오는 소리는 가랑잎이 바람에몰려가는 소리와 밤중에 어둠 속을 울리는 다듬이 소리였다. 차가운 공기가 팽팽해서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 가랑잎은 메마른 소리로 버스럭거렸고, 다듬이 소리는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어져나갔다. 마을 끝에서 잦아들던 다듬이 소리는 어느 집에서인지 다시 살아나서 이웃집의 소리를 끌어가며 마을 안으로 들어왔고, 흘러나갔다. 개들도 소리를 이어나갔다. 덩치 큰 개들의소리가 깊게 울렸고 작은 개들은 높고 가파른 소리로 짖었다. - P242

처자식을 하얼빈으로 불러들였다면, 안중근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끝내 제 갈 길을 가겠구나, 라고 그때 빌렘은생각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면서 인사를 하러 왔을 때, 무언가 속에 있는 말을 참고 있는 듯하던 안중근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안중근의 젊음은 거칠어 보였다. 안중근은 신심이 깊었으나 그의 심성과 언동은 신앙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았고 교회의 가르침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하느님은 교회를 통해서 섭리하시고, 교회의 울타리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빌렘은 안중근에게 말해줄 수가 없었다. 말을 한다 해도 심어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빌렘도 말을 머뭇거렸다. 안중근의 신심이 더욱 무르익어서 스스로 알게 될 날이 있기를 빌렘은 그날 기도했었다.
이토가 하얼빈역에서 총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빌렘은 그 범인이 안중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안중근은 돌아올수 없고, 불러들일 수 없는 자리까지 간 것이었다.
빌렘은 마을 사람들의 침묵의 밑바닥에 깔린 두려움과 설렘을감지하고 있었다. 초겨울의 빈 들을 산책하는 저녁에 논둑길에서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은 빌렘에게 머리 숙여 인사했으나 말을 섞지 않았다. 범인이 청계동의 안중근이고, 빌렘에게 세례 받은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에 마을의 침묵은 깊어졌다. 마을 사람들의 눈과 귀는 신부의 입으로 쏠려 있었다. - P244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전보를 받고, 뮈텔은 백 년 전에 처형당한 천주교인 황사영의 죽음을 생각했다. 황사영은 박해를 피해 달아나다가 캄캄한 산골의 옹기굴 속으로 숨어들어가서 북경 주교 구베아에게 보내는 문서를 썼다. 황사영은비단 보자기 한 장에 일만 삼천여 자를 썼다. 황사영은 순교와박해의 실상을 소상히 기록하고 서양 나라의 선박 수백 척과 군사와 대포로 조선 조정을 협박해서 천주교인을 죽인 죄를 물어야 한다고 구베아 주교에게 호소했다. 훗날 이 글은 백서 帛書라고 불렸다.
황사영은 토굴에서 체포되었다. 황사영은 몸이 여섯 토막으로잘려서 거리에 버려졌고, 일족은 멸문되었다. 황사영은 스물일곱 살에 죽었다.
뮈텔은 조선 조정의 문서 창고를 뒤져서 황사영의 보자기글원문을 찾아내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본국으로 보냈다. 황사영의글을 번역하면서 뮈텔은 이 천둥벌거숭이의 몽매함에 한숨 쉬었고 순수한 신앙의 열정에 목이 메었다.
안중근은 자신에게 영세를 베푼 사제를 향해서 ‘국가 앞에서는 종교도 없다‘는 황잡한 말을 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 이토를죽였는데, 황사영은 서양 군함을 몰고 와서 국가를 징벌해달라고 북경의 주교에게 빌고 있었다. 두 젊은이는 양극단에서 마주서서, 각자의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황사영은 국가를 제거하려다가 죽임을 당했고 안중근은 국가를 회복하려고 남을 죽이고 저도 죽게 되었는데, 뮈텔은 이 젊은이들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를 가엾이 여겼다. 황사영에서 안중근에 이르는 백 년 동안 두 젊은이의 국가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갔다. 황사영은 서양의 군함을 부르다가 몸이 토막나서죽었는데, 황사영이 죽임을 당한 후에 프랑스 신부 아홉 명이 또죽임을 당했고, 천주교인을 길라잡이로 세운 프랑스 군함이 한강을 거슬러 서강까지 올라와서 국가를 겁박하고 강화도를 약탈했으니,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헤아리기 어려웠다. - P250

-어려운 일이지만 그 길밖에 없다. 길이 빤히 보일 때는 이생각 저 생각 하지 말아라. - P258

안중근과 빌렘의 접견을 허락함으로써 일본은 얻을 것이 크지만 안중근이 명분을 철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부를 보낸다면 교회의 입장이 거북해진다는 것을 뮈텔은 빌렘에게 설명해줄 수없었다. 고위직에게는 아랫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는 고민이 늘있었다. 뮈텔은 빌렘에게 보내는 답장을 속달우편으로 부쳤다.

‘출장 불가‘를 알리는 뮈텔의 답장을 받은 다음날 빌렘은 여순으로 떠났다. 여순으로 가는 기선은 닷새에 한 번씩 진남포에서출항했다. 운항 날짜가 맞았다. 진남포 부두에서 빌렘은 명동대성당의 뮈텔에게 전보를 쳤다.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저는 여순으로 갑니다. 빌렘 - P264

-도마야, 네가 나를 부른 마음과 내가 너에게 온 마음이다.
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조선에서 출발할 때부터 그것을 알고있었다. 너의 마음을 말해라. 옥리들이 있으니, 작은 소리로 말해라.
안중근은 입을 열지 않았다. 빌렘이 재촉했다.
-말해라, 도마야. 내가 먼저 말하는 것보다 네가 먼저 말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겠느냐.
안중근이 메모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제가 이토의 목숨을 없앤 것은 죄일 수 있겠지만, 이토의 작용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재판에서 이토를 죽인 까닭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복이고, 이토가 살아 있을때 이토에게 말하지 못한 것은 저의 불운입니다. 신부님.
빌렘이 말했다.
-너의 말은 다만 말일 뿐이다. 인간의 행위는 몸과 마음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너의 말은 뉘우치는 자의 마음이 아니다. 너는 너의 마음의 진실을 말하라. 뉘우침의 힘으로 새로워져라.
안중근이 메모를 들여다보지 않고 말했다.
-제가 이토를 죽인 일을 뉘우친다면, 제가 이토를 죽이는 사업에 성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만일 이 사업에 실패해서이토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저는 이토를 죽이려는 저의 마음을 뉘우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부님.
-그것은 세속의 마음이다. 뉘우침이 아니다.
-그것이 저의 진심입니다.
-너의 마음의 깊은 곳에 또다른 마음이 있을 것이다. 말하기힘들어도 그것을 말해라.
안중근은 눈을 감고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안중근이 말했다.
-이토를 쏠 때, 이토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조준했습니다. 쓰러뜨리고 나서, 신부님께 세례 받던 날의 빛과 평화가 떠올랐습니다.
-그 평화가 너에게 다가오고 있다. 계속 말해라. 도마야. 너는 1907년에 조선을 떠나서 대륙으로 갔다. 그후에 네가 한 일을 다 말해라. 옥리들이 입회해 있으니 작은 소리로 말해라. 다말해라. 모두 다 말해라.
안중근이 몸을 앞으로 굽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빌렘이몸을 앞으로 굽히고 들었다. 안중근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사형수의 머리와 사제의 머리가 가까워졌다. 안중근의 목소리는 숨소리처럼 들렸다. 옥리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목소리가 끊기고,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빌렘은 침묵 속에서 안중근에게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전옥이 면회 시간 종료를 알렸다. 옥리가 안중근을 다시 포승으로 묶어서 감방으로 데려갔다.
- P272

안중근에게 고해성사를 해주고 나서 빌렘은 황해도 신천으로돌아와 있었다. 3월 26일 저녁에 빌렘은 안중근의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7일 아침에 빌렘이 신자들을 소집했다. 안중근의 문중 사람들과 마을의 신자들이 청계동성당에 모였다.
빌렘은 여순감옥에서 안중근을 만나 고해성사를 베푼 일을마을 신자들에게 말했다. 빌렘은 ‘나의 시체를 하얼빈에 묻으라‘는 안중근의 유언을 신자들에게 전했다. 안중근의 시체는 하얼빈으로 가지 못하고 여순감옥의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빌렘은전했다.
빌렘은 신자들과 함께 기도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망자에게 평안을 주소서 - P280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筆生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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