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덕순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물어볼 것이 있다.
-말해라.
-자네 처자식이 하얼빈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 정말인가?
며칠 전에 평양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도 지금쯤 장춘을 지나고 있지 싶다.
-부인이 애들 셋을 데리고 오는가?
-둘이다. 큰애는 수녀원에 맡겼다고 한다. 내가 이토를 쏘고나면 처자식들이 조선 땅에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불러들였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나?
-그것은 확실치 않다.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 자리잡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오래된 것 같기도 하다.
-자네가 이토를 쏘고 나면 처자식들이 하얼빈에서도 살기가어려울 것 아닌가.
-그렇다. 그렇지만 조선 땅에 둘 수는 없었다. 내 처자식들은 처한 형편 속에서 살게 된다. 어렵지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게 궁금했냐?
-처자식 얘기를 꺼내서 미안하다. 그만 자자. - P157

안중근은 총을 쥔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다. 아직은 나타나지않은 표적을 향해서 안중근은 조준선을 정렬했다. 눈동자, 가늠자. 가늠쇠로 이어지는 일직선 위에서 시선이 떨렸다.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가늠쇠 너머에 표적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표적으로 시력을 집중할수록 표적은 희미해졌다. 표적에 닿지 못하는 한줄기 시선이 가늠쇠 너머에서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보이는 조준선과 보이지 않는 표적 사이에서 총구는 늘 흔들렸고,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방아쇠를 거머쥐고 머뭇거렸다.
방아쇠를 당기고 나면 실탄이 총구를 떠나는 순간 조준선은지워졌고 총의 반동이 손바닥과 어깨에 걸렸다. 비틀린 조준을다시 회복하고 나면 표적은 다시 안개 속에 묻혔다.
방아쇠를 당길 때,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몸의 일부가 아니라 홀로 독립된 생명체였다. 둘째 마디는 언제 당겼는지도 알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스스로 직후방으로 작동해서 총알을내보냈다. 그러므로 이토를 조준해서 쏠 때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절망감과 복받침, 그리고 표적 너머에서 어른거리는 전쟁과 침탈과 학살과 기만의 그림자까지도 끊어버리고 둘째 마디의 적막과 평온을 허용해야 할 것이었다. - P159

저것이 이토로구나•••••• 저 작고 괴죄죄한 늙은이가•••••• 저오종종한 것이••••••
안중근은 러시아 군인들 틈새로 조준선을 열었다. 이토의 주변에서 키 큰 러시아인들이 서성거려서 표적은 가려졌다. 러시아인과 일본인들 틈에 섞여서 이토는 이동하고 있었다. 이토는 가물거렸다.
안중근의 귀에는 더이상 주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러시아인들 틈새로 이토가 보였다. 이토는 조준선 위에 올라와 있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가 방아쇠를 직후방으로 당겼다. 손가락은 저절로 움직였다.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쏠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가늠쇠 너머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이토의 모습이 꿈속처럼 보였다. 하얼빈역은 적막했다.
탄창에 네 발이 남았을 때, 안중근은 적막에서 깨어났다.
••••••나는 이토를 본 적이 없다•••••• 저것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다••••••
안중근은 다시 조준했다. 안중근은 고요히 집중했다. 손바닥에 총의 반동이 가득찰 때 안중근은 총알이 총구를 떠난 것을알았다. 이토 주변에 서 있던 일본인 세 명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을 몸으로 덮쳤다. 안중근은 외쳤다.
-코레아 후라
안중근은 쓰러지면서 총을 떨어뜨렸다. 탄창 안에 쏘지 못한한 발이 남아 있었다.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의 몸을 무릎으로눌렀다. 안중근은 하얼빈역 철도 가에서 묶였다. - P166

이은은 얼굴이 하얘졌다. 이은이 소리쳤다.
-아니, 뭐라고?
시종이 이은을 부축해서 의자에 앉혔다.
-왜 그랬다더냐?
-자세한 것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이은은 정신을 수습해서 서울의 황제에게 전문을 보냈다.
-이토 태사가 오늘 아침 아홉시에 하얼빈역에서 조선인의 손에 피살되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아직 공식 발표는 없지만, 폐하께서 일본 황실에 직접 위문하시기 바랍니다.
이은은 깊이 상심했다. 강하고 또 너그러운 스승 이토가 왜 조선인의 손에 죽어야 하는지, 조선은 무엇이고 일본은 무엇이고, 어째서 조선이 따로 있고 일본이 따로 있으며, 조선과 일본 사이에 어떤 일이 있는 것인지 이은은 생각할 수 없었다. 이토의 부재는 조선과 일본 전체의 부재처럼 느껴졌다.
이은은 군복을 벗고 누웠다. 그네타기도 당구치기도 요지경놀이도 하지 않았다. 시종이 슬퍼하는 이은의 양태를 메이지에게 고했다. 메이지가 궁인을 보내서 이은을 위로했다.
-전하의 슬픔은 인륜에 따른 것이로되 지금은 학업에 전념할 때다. 슬픔을 과도히 하지 마라. - P169

조선 팔도는 고요했다. 순종은 그 고요의 바닥이 두려웠는데.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순종은 살길을 생각했다. 조선의 살길과황실의 살길과 백성의 살길은 겹치고 또 부딪치면서 복잡하게얽혀 있었다.
살길은 슬픔에 있었다. 이토를 죽인 조선인의 범행은 황실과아무런 관련이 없으나, 황실의 지주이며 황태자의 스승인 이토공작이 서거한 지극한 슬픔과 그 범인이 극악한 인간말종이라할지라도 한국 황제의 신민이라는 참담한 두려움을 속히 내외에공포하고 조선의 슬픔으로 일본의 분노를 위로하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살길은 저절로 떠올랐다.
순종은 메이지에게 위로의 전문을 보냈다.
-오늘 이토 공작이 하얼빈에서 흉악한 역도에게 화를 당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통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삼가 위로를 보냅니다.
순종은 전문에서 한국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차마 한국인이라고 쓰지 못하는 심정을 메이지가 헤아려주기를 순종은바랐다. 순종은 가나가와현 오이소에 살고 있는 이토의 정실 우메코에게도 별도의 전문을 보냈다. 순종은 황실의 모든 잔치를 폐했고, 서울에 사흘 동안 가무음곡을 금했다. 순종은 도쿄에서 이토의 영결식이 열리는 시간에 서울 장충단에서 거국적 관민추도회를 열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순종은 이토에게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순종은 대신과 관리들과 민간인 대표들을 거느리고 통감부로 가서 이토의 빈소에 조문하고 조위금 십만원을 전했다. 문은 덕을 널리 펼침이고 충은 국가에 헌신한다는 뜻이라고 순종은 이토에게 내린 시호의 뜻을 한국 통감 소네에게 설명했다. 소네는 듣고, 말하지 않았다.
순종의 슬픔의 의전은 화려하고 엄숙했다. 그 슬픔이 위기를모면하려는 가식이라 하더라도 가식이 자극하면 진짜 슬픔과 구말하기 어려웠고 구별하기가 어려워지니 마음이 편안했다. 메이지는 감사한다는 진보를 보내왔다. 메이지의 답신은 짧았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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