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고통을 치유하는 일은 사람을 치유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다. 그 해결을 위한 시작은 각자가 타인에 의해 이끌리지 않는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깨닫는 것이다." - P10

 몸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와 내 주변 세계를 연결한다. 먼저 몸은 주변 세계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통로‘로서 그 역할을 한다. 사람은 눈과 코, 입과 귀, 그리고 손과 피부를 통해 주변 세계를 감지하고 인식한다. 비가 오는지, 날씨가맑은지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는 사람인지 처음 본 사람인지, 지금 먹는 음식이 무슨 재료로 만든 것인지, 각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통해 세계를 인지한다. 우리는 몸을 매개하지 않고 결코 바깥의 세계를 경험할 수 없다.
반대로, 몸은 우리가 세계를 향해 반응할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반짝거리는 눈빛이라든지,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입꼬리가 빙긋이 올라가는 것은 세상이 내게 던져준 자극에 대한 몸의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만일 입이 없다면 내 생각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할 것인가? 타인에게 반가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는 행위도 몸을 통해서 가능하다. 사회를 변혁하고자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거나 동작을 행하는 일 역시 몸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는 주변 세계에 반응한다. - P20

 근대성의 대표적 특징으로는 종교적 영향력의 쇠퇴와 전문가들이 시민들의 몸에 행사하는통제력이 증가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중세 시대에만 해도인간의 몸은 물론이거니와 삶 전반을 신의 의지를 대변하는 성직자의 가르침에 따라서 진행하면 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한 종교적 공동체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확인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세의 몰락과 함께 기존의 종교 공동체가 가진힘이 쇠퇴하면서 시민들의 몸과 정신은 이제 각자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각종 상품이 즐비한 소비문화의 성장이 나타났고, 다른 한편으로 다양한 의료·심리·교육 전문가들이 등장하였다. 몸에 관한 관심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확대되면서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오래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몸을 만들 것인가‘ 등이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후기 근대성은 이와 같은 근대성의 경향이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급진화되는 것을 일컫는다. 후기 근대성을 명명하는 방식은 학자에 따라 다른데, ‘위험사회‘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독일의 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이를 ‘제2근대성‘이라고 하고, 사회구조화 이론을 구축한 영국의 학자앤서니 기든스 Anthony Giddens는 이를 ‘고도 근대성‘이라고 일컫는다. 또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으로 현대 서구 사회의 불안정한 삶을 설명한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은 이를 ‘액체 근대‘라고 명명한다. 어떻게명명하든지 간에,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시민들은 근대성이 지니는 긍정적 측면뿐 아니라 부정적 측면을 인식하게되었다. 또한 점점 의지할 대상이 없고 혼란스러운 자아를 평온하고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 자신과 몸에 관한 질문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 P27

후기 근대에는 몸에 대한 태도도 급진화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건강하고 오래 생존하며, 노동시장에서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데 관심사가 있었다.
반면 이제는 플라스틱처럼 각자의 욕망에 따라 몸의 변화가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환상과 가능성의 영역에서 몸이 언급되고 있다. 생물학적 복제, 유전공학, 성형수술 등과 같이 더 이상 몸은 신이 부여해준 고정불변의 형체가 아니며, 개인이 개조하거나 얼마든지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러한 선택을 내리는것은 아니다. 백만장자와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이 자신의몸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자본은 같을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오늘날 한 개인이 몸의 한계를 통제하고 변화시킬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상황 속에서 이른바 ‘몸 프로젝트‘가 범람하고 있다.
이제 몸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자 자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재료로서, 어떻게 몸을 가꾸고 관리하느냐가그 사람의 가치와 지위, 성향 등을 표현해주는 상징이 되고있다. 이제 건강의 문제는 질병이 닥쳤을 때 다루어야 할것이 아니다. 젊었을 때부터 노화의 속도를 조정하기 위해성인병을 사전에 관리하고, 몸매를 가꾸고, 노후 건강을 위한 영양식품 섭취 등이 삶의 주된 관심사이자 자아를 드러내는 지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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