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2018년 12명의 태국 소년이 물이 찬 동굴에 갇히고 그들의 구조가전 세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을 때 구원의 마스터플롯은 좋은 효력을 발휘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소년들을 응원했다.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는 그들 모두가 생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반면같은 해 예멘 내전 중 굶주림으로 사망한 5세 미만의 어린이 85,000명에 대해서는 훨씬 적게 보도되었다. 이례적 사건이 지속적인 위기상황에 비해 뉴스 가치가 높다는 명백한 요인 외에도 예멘 어린이의 운명이 서사적 측면에서 너무 추상적이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말하자면 예멘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연출할 수 있을 만큼 상징적인 개별적 사건이 없었고 위기 상황이 너무 애매모호했다. 예멘 어린이 이야기로는 태국 소년들을 동굴에서 구출하는 것과 같은 해피엔딩을 기대하면서 확실한 저널리즘 연출을 전개하기가 불가능했다. - P61

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의 저서 「신화 작업 Arbeit am Mythos』에 따르면 "스토리는 무언가를 몰아내기 위해 이야기된다. 그 무언가란 가장 무해하지만 가장 중요한 경우에는 시간, 그 외의 중대한 경우에는 공포를 말한다." 동굴 벽화와 함께 구술이 정보를 전달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던 시대에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것이었다. 또는 발터벤야민 Walter Benjamin 이 더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이야기는 "소진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자신의 힘을 모아서 간직하고 있으며 오랜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 펼쳐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모든 존재에게는 자기보존이라는 가장 강한 욕구가 존재한다. 우리 인간 또한 죽지 않고 가능한 한 오래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의 유한함을 알아야 죽음을 가급적 성공적으로 막기 위한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은 가능한 한 좋은 삶, 길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기위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도전과제를 극복할 때마다 자신의 유한성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다. 이로써 우리는 성공적인 노력을 성찰하며 그로부터 배우고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 P78

이야기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실질적 지침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이야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해결을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에게 배움을 가르쳐준다. 모든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명백한 적응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게 습관화된 문제해결 능력 덕분에 자신의 현실을, 나아가 끊임없는 적응을 통해 개선한 자신의 삶을 직접 구성하는 존재로 발전했다. 이 모든 것은 왜 스토리텔링이 불, 바퀴, 무기보다 훨씬 앞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었는지, 미국의 서사구조 연구가이자 전문적인 이야기꾼인 켄들 헤븐 Kendall Haven이 말한것처럼 왜 우리가 최소 10만 년 전부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 즉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불리는사실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말하자면 우리는 아주 가끔씩만 슬기로울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이야기 행위를 한다. 그러니 우리에게더 나은 이름이 주어졌어야 했을 것이다. - P91

 오늘날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은 일련의 점진적 발달 단계의 맨 끝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영국의 사회철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창안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의미에서 볼 때 진화의 성공 스토리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이 두뇌와 더 높은 지능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다른 유인원보다 더 똑똑해졌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원숭이 소리는 서서히 단어가 되었고 이 단어들은 언제부터인가 종교적 신화, 군사명령, 광고 슬로건이 되었다. 이와 같은 발전은 병행하며 이루어졌을 수도 있고 상호 의존적으로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결정적인 사실은 진화의 마지막에 호모나랜스Homo Narrans가 있다는 것이다. 호모나랜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언어 장치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생명체와 구분된다. 하지만 한 가지 심층적인 질문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즉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말하기가 사용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인류가 언제 허구를 발명했는지 추적할 수 있을까? - P94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보편문법 이론은 언어 연구의 훌륭한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에게 언어습득 능력이 있다는 점, 모든 언어가 문법 형식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재귀성과 같은 통사적 특징뿐만 아니라 문장 구조가 보편적으로우리 뇌에 내재하여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전 세계의 언어는 문화와 관계없이 공통된 기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언어는 통사론을 통해 순차적인 시간감각, 즉 인과적 맥락에서 시간 순서에 따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표현한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우리 인간은 타임라인이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 좌표, 타임라인상의 ‘언제‘라는 개념, 전후의 감각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의사소통은 대부분 언제 일이 일어났는지 혹은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진술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을 계획하고 조정하고 준비하고 협력할 수 있다. 이것은 생존에 아주 유리한 능력이다. - P95

미국 작가 리차일드Lee Child는 자신의 에세이 「영웅 The Hero」에서 실제 사건을 말하기 위해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추론한다. 그의 고찰에 따르면 말하기가 처음에는 생존을 돕고 비축품을 조직하고 사냥을 계획하는 데 효율적이고 합목적적으로 사용되었다. 처음에 말한 내용이사실이어야 효과적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매일 벌어지는 생존투쟁에서 ‘조심해! 저 밖에 검치호랑이가 있어!‘와 같은 말은 실제로 그곳에 검치호랑이가 없고 모든 부족 구성원이 동굴에 안전하게 있었다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은 쓸모없고 비생산적이었다. 모든 사람을 이유 없이 놀라게 하고 불안감을 퍼뜨릴 이유가 있겠는가? 지금도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거짓말이 들통나면 귀가 빨개지고 사회적 죽음을 맞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거짓말이 부족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기 때문에 가혹한 제재를 가해야 했다. 이는 시대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화자에게 의사소통을 창의적으로 구성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언어는 순전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언어의 기능이 언제부터인가 매우 실용적으로 바뀌었다. 차일드는 우리 조상 일부의 생명을 앗아간 갑작스러운 혹한기와 관련하여 이를 설명한다.

강자만이 이 끔찍한 인구 감소에서 살아남았다. 말하자면 사색을 하고 전략을 펼치고 조정하고 토론하고 예측하고 적시에 플랜 B - 상황에 따라 플랜 C나 플랜 D- 를 세우는 일을 가장 능숙하게 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진실한 객관성이 승리했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성은 점점 새롭고 이질적인어떤 것과 섞이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에게 일어났다고 하는 일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는 언어의 진화적 가치를 위태롭게 하는 의미의거짓말이 아니었다. 이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한 한 번도시도한 적 없는 과격한 정신적 도약이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경험에 바탕을 두었지만 사실의 제약을 받지 않는 평행우주 혹은 이론적 우주를 상상하는 것이었다. 

b‘있는 일을 이야기하기‘가 갑자기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있을 수있는 일을 이야기하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동굴 안이나 앞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곳에 있지도 않았던 검치호랑이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이는 언젠가 정말로 검치호랑이를마주칠 때를 대비하여 정신적으로 무장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 P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