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건축의 주요 기본 요소들은 기둥, 지붕, 낮은 담장이라는 세 가지로 규정할 수 있다. 동양의 건축 공간은 이 세 가지가 구획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요소들의 가치는 바둑판 위의 돌처럼 상대적인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마치 중국 한자에서 기본 글자들의 상호 위치에 의해서 그 의미가 새롭게 창조되듯이 위의 세 가지 건축 요소는 주어진 자연 조건 안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동양 건축에서는 건축물들이 대지 위에 구축되어 가면서 다양한 형태의 정원들이 만들어지는데, 빈 공간을 많이 만들어 내는 편이 이기는 바둑의 규칙과 노자의 ‘비움의 사상‘을 염두에 두고 건축물을 바라본다면 동양 건축에서의 정원과 마당이 어떻게, 왜 만들어지는지 이해될 것이다. - P141
동양의 산수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원경遠景과 근경近景 사이에 중경中景을 그려 넣는 대신 여백으로 처리한다. 그림에 따라서 안개가 낀 모습으로 중경을 지우기도 한다. 이 같은 방식은 건축에서도 나타나는데, 동양 건축에서 자주 사용되는 낮은 높이의 담장이 그 역할을 한다. 낮은 담장은 내 대지 바로 앞에 있는 중간의 경치를 지워 버리고 가까이에 있는 정원과 멀리 있는 풍경인 산만 보이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건물 내부에 위치한 관찰자의 투시도상에서 시각적인 여백을 가져오게하는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도가 사상을 반영한 ‘선의 정원‘에서는 나무를 심은 정원 대신 땅을 비우고 모래만 깐 정원을 도입해서 더 많은 빈 공간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리고 동양의 이러한 디자인은 수학적 황금 분할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된다. 서양 건축과 미술에서는 황금 분할의 역할이 큰 반면, 동양 건축과 미술에서는 만들어진 구조물보다 빈공간 혹은 여백이 더 중요하게 취급되어 왔다. - P147
극동아시아 문화는 유교가 지배적이었다. 사후 세계보다는 현생을 더중요하게 생각하고 땅 위에서의 현실 삶에서 충忠이나 효孝 같은 관계를 중요시했다. 기둥 구조를 써서 기둥과 기둥 사이로 주변 환경이 잘보이는 동양의 건축은 땅과 연결되어서 집을 짓는 개미처럼 주변 환경과의 관계성이 중요시되는 건축의 성격을 띤다. 반면에 유럽은 이집트, 그리스, 기독교에서 공통적으로 사후 세계, 이데아의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위로부터 오는 형이상학적 원칙을 중요시했다. 이들은 땅과는 관련 없이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관념적으로 무에서 새로운 법칙을 만든다. 이러한 문화적인 특징은 주변의 아무런 영향 없이내재된 법칙에 의해서 허공에 집을 짓는 벌과 비슷하다. 서양의 공간은 주변과의 관계를 맺지 않고 자족적이고 자기 완결적이기 때문에 벌집처럼 기하학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피라미드‘나 ‘판테온‘도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자족적인 법칙에 의해서 디자인되었다. 그리고 그 법칙은 수학적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렇게 서양의 종교적공간은 기하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 P153
‘판테온‘과 ‘석굴암‘은 유사하기도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첫째 ‘판테온‘은 비워진 공간에 위로부터 빛이 떨어지는 공간이다. ‘판테온‘은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인 ‘만신전‘이어야 했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신의 조각상을 둘 수 없었다. 그래서 공간을 비우고 빛으로 채웠다. 반면에 불교사찰인 ‘석굴암‘은 불상을 가운데에 두었다. 이보다 더 큰 차이점은 ‘판테온‘은 밖에서 보면 건축물로 보이지만, ‘석굴암‘은 건축을 마친 다음에 흙을 쌓아 덮어서 건물을 지워 버렸다는 점이다. 이것이 석굴암‘ 이 특별한 가장 큰 이유다. 건축에서 공간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벽이나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어서 공간을 구획하는구축을 통해서 만드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땅이나 바위 같은 덩어리를 파내어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한 세트로되어 있는데, 건축 설계를 한 김대성은 ‘불국사‘를 만들 때는 첫 번째 방식인 구축의 방식으로 만든 반면, ‘석굴암‘은 굴을 파내는 방식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석굴암‘도 석재로 구축하면서 만들었지만,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건축물을 흙으로 다시 덮어서 굴처럼 만들었다. 김대성은 ‘석굴암‘이 땅을 파내어 만든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것 같다. 이 같은 디자인은 ‘석굴암‘을 ‘음‘의 공간인 빈 공간으로만 만들려 한 김대성의 의도가 보인다. 건물의 외양이 보이게 되면 ‘양‘의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양의 공간은 이미 서측에 있는 ‘불국사‘에 완성되어 있다. - P160
그렇게 유럽인들은 동양을 동경하게 되었고, 중국과 일본은 그 대표적인 대상 국가가 되었다. 지금도 해외에서 바라보는 두 나라에 대한 시각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수준이다. 그 이유는 중국과 일본은 도자기를 수출한 나라였고, 우리나라는 높은 수준의 도자기를 만들었지만 수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출은 그렇게 중요하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1970년대 이후 수출 주도형 산업을 육성했기에 지금의 한류가 가능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류가 성공적인 것은 삼성 핸드폰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1999년 미국NBC 방송의 인기 아침 프로그램에서 삼성 핸드폰은 물에 넣었다가 꺼내도 작동한다는 시연을 하고 나서부터 한국은 첨단 기술의 이미지를갖게 되었다. 문화를 팔기 위해서는 첨단 제품이 필요하다. 1970년대 우리가 <6백만 달러의 사나이> 같은 미국 드라마에 심취했던 것은 제2차세계 대전의 원자폭탄과 1969년의 아폴로 우주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21세기의 첨단 제품이 스마트폰이라면 수백 년 전에는 도자기가 그 역할을 했다. - P173
도자기를 통해서 중국식 문화가 서양에 전파되었다. 유럽은 계속해서 중국으로부터 도자기를 수입해서 사용했는데, 당시 중국 왕조는 이를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척했고 도자기 대금으로 받은 멕시코산 은으로 현재의 우리가 볼 수 있는 만리장성을 복원했다. 당시 도자기 생산은 황실에서 독점하고 있었다. 이는 마치 청와대가 삼성 반도체 공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징더전景德鎭이라는 중국의 도자기 생산 주요 기지가 있었는데 가마가 1천 개 있었고, 연간 400만 개의 도자기를 생산할 정도였다. 하지만 1601년 징더전 도기공들의 노사 분규를 시작으로 1675년 만주 반란군에 의한 파괴 등 17세기 들어서 여러 차례의 민란으로 징더전의 도자기 공장은 점차 파괴되었다. 서양의 도자기 수입 회사는 중국을 대체할 도자기 공급선이 필요했고, 그 기회를 틈타서일본이 도자기 수출의 교두보를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이 이렇게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은 상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조선보다 상업이발달한 데는 건축적인 이유가 있다. 전작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설명했듯이 일본은 지진 때문에 온돌이라는 난방 시스템을 쓰지 못했고, 덕분에 목조 건축이지만 2층 이상의 주거를 지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고밀화된 도시를 만들 수 있었고, 덕분에 주변에 물건을 사 줄 사람이 많아서 상인들이 돈을 벌수 있었으며 이들은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한계층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온돌 때문에 단층짜리 집만 짓고 살았던 조선은 고밀화된 도시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주변에 물건을 사줄 사람이적었기에 상업이 발달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저 닷새에 한 번씩 열리는 5일장을 통해서만 상업 행위가 이루어졌다. 매일 시장이 열리는 사회와 닷새에 한 번 시장이 열리는 사회는 화폐 통화량에서 5배의 차이가 난다. 화폐 통화량이 5분의 1이 되면 상업으로 새롭게 돈을 벌 기회도 5분의 1이 된다. 5일장의 사회에서는 상인이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회 계층의 순서는 ‘사농공상‘으로, 상인이 가장 대우를 못 받았다. 조선은 국운을 바꿀 만한 엄청난 도자기 수출의 기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높은 인구밀도의 도시가 없었고 그에 따라서 제대로 된 상인이없었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일본에게 빼앗기게 된 것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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