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죄책감이 평범하고 오래된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죄책감과 사랑을 본능적으로 하나로 엮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이것이 삶임을 깨닫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모두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더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그리고 이것은 진짜 신화일 뿐이다), 나이 드는 부모의 모습만큼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은 많지 않다. 실제로는 우리가 나이 들수록 잃은 것이 많아진다. 점점 더 크고 버거운 과제가 나타난다. 실수를 되돌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부모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일이 겁나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끝나면, 우리의 순수의 시대 중 후반부의 한 단계도 끝난다. 그분들이 언제까지나 거기 계시진 않을 것이다. 우리 삶이 더 간단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123

그야 정확히 말하자면 다행스럽다기보다는 마음이 좀 가볍다는 기분, 한시름 덜었다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병은 사람을 망가뜨렸고, 잔인했고, 지켜보기 참혹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병으로 죽을 때는 애도 과정의 상당 부분이 기억과 안도라는 기묘한 순환으로 전환되는 듯싶다. 당신이 이따금 그 참혹함을 떠올렸다가는 이내 그 일이 끝난 것이 모두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느끼는 것이다. 꼭 다 끝났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이미지에 몸서리치고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지워버리려고 애쓰는 것이랄 수 있다. - P126

그렇긴 하지만, 상실은 우리에게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지금까지 여덟 달 동안아버지가 여전히 곁에 계시다는 생각을 암암리에 품고 지냈던 것같다. 아버지가 장기 휴가를 가신 거라고, 아니면 어디 멀리 요양하러 가신 거라고 느꼈고, 그런 감정은 지금 황동 상자에 담겨서 아버지 서재에 놓여 있는 아버지 뼛가루에 내가 막연히 집착했다는 사실로 드러났다. 나는 뼛가루를 내 집으로 가져가서 뭐랄까 보살펴드리고 싶었는데, 그 바람은 아버지가 아직 여기 계시고, 아직 나를 지켜보고 계시고, 아직 내 행동을 알고 계시다는 느낌과 관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아버지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갓난이 조카의 기저귀를 가는 언니를 서서 지켜볼 때 나를 휩쓸고 간 감정이 그것이었던 것 같다. 같은 방, 전혀 다른 이야기. 아홉 달 전에는 슬픔의 장소였던 곳이 지금은 기쁨과 새 시작의 장소였다. 그러니 그때 본 아기의 모습은 내게 연속성을 일깨워주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무력함이 아기의 무력함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버지를돌보았고, 우리는 아기를 돌볼 것이다. 아버지는 갔지만, 아기는 여기 있다.
언니는 기저귀를 다 간 뒤 아기를 포대기로 감싸고 울음을 달랬다.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울었다. 앞으로 펼쳐질 생을 눈앞에둔 작은 아기를 위하여, 그리고 그제야 내가 정말로 떠나셨다고 느낀 아버지를 위하여. - P127

애도는 얼마 뒤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정말이다. 내 어머니는 지난 4월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하고 11일 만이었다. 그래서 나는 올여름을 대부분 얼빠진 상태로 보냈다. 멍했다. 얼떨떨했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따금 극심한 공황에빠졌다.
"좀 어때? 좀 괜찮아졌어?" 사람들이 이렇게 물으면, 나는 십중팔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엉망이야."
"끔찍해."
"아니. 더 나빠졌어. 더 안 좋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들이지만, 대개의 사람은 이런 대답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맨처음 알게 되는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다른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는 죽음을 끔찍하게 지독하게잘못 다룬다. 상을 당한 사람에게 주는 휴가는 보통 사흘. 그 후에도 6주쯤은 사람들이 당신을 조심조심 대하고, 너무 많은 걸 바라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대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당신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애도 기간은 끝난다. 이후에는 사무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거나 하루에 세 번씩 빨개진 눈으로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이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다시 정상적으로 행동하고정상적으로 느껴야 할 듯한 압박이 든다.
나는 이게 싫다. 가끔은 길 가는 사람들을 잡아 세우고 말하고싶다. "우리 부모님이 죽었다고요. 부모님이 알겠어요?" 너무 많은걸 억누르고 삼켜야 한다. "정말 우울해요." 몇 주 전에 내가 남자동료에게 이렇게 말하자, 그는 멍청히 나를 보면서 말했다. "왜요?" 그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놀란 기색이 있었다. 우울해요? 왜? 나는그를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 - P130

그럴 줄은 알았지만, 결국 이렇게 집 이야기를 쓰는 날이 오고말았다. 부모님 집에서 세간을 빼내고, 가족의 38년 역사에 다름없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서 추려내고, 그럼으로써 상실의 또 하나의 의례를 마무리하는 날이.
으윽. 나는 줄곧 이 일이 두려웠다. 작업 자체도 두려웠고 그작업에 대해 글을 쓰는 행위도 두려웠다.
지난 3년 동안 내 글을 꼬박꼬박 읽은 독자라면 알 텐데, 나는상실에 대해서 아주 많이 썼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1992년 4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1993년 4월), 오빠와 언니와 내가 부모님 없이 맞은 첫 크리스마스에 대해서(1993년 12월), 아버지의 뼛가루를 묻은 일에 대해서(1994년 5월), 어머니의 뼛가루를 묻은 일에대해서(1994년 5월), 이런 상실을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나가는 길고 구불구불한 과정에 대해서. 치유의 과정에 대해서.
그런 글을 쓰는 것은 그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사건을 기록하는 행위, 내게 벌어진 일과 그에 대한 내 감정을 세부적으로 적어서 활자로 고정해두는 행위가 내게는 늘 유용했다. 그것은 꽃을 책에 끼워서 압화로 간직하는 일, 혹은 추억의 기념품을 특별한상자에 보관하는 일과도 좀 비슷하다. 일단 세부를 보존해두면,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을 덜고서 다른 일로 삶을 채우며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집 전체를 비우는 것은 다른 얘기다. 그것은 세부를 상자에 꽉꽉 담아서 쓰레기장으로 실어 보냄으로써 말 그대로 그것을 없애버리는 일이다. 이 과정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프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이 싫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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