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이러한 에너지 흐름의 과정 중에서 생명이 만들어 낸 2차 부산물이다. 둥그런 행성의 모양, 자전축의 기울어짐, 자전과 공전,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는 지역마다 다른 ‘지리‘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지리적 배경은 각기 다른 ‘기후‘를 만든다. 각기 다른 기후는 각기다른 ‘환경적 제약‘을 만든다. 이런 환경의 제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인간 지능의 노력이 ‘건축물‘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난다. 비가와서 지붕을 만들었고, 추우니까 벽으로 방을 만들고 온돌을 만들었다. 건축은 기후가 주는 문제에 대한 인간의 물리적 해결책이다.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더워지면서 건조해졌기 때문에 물을 구하기 힘들어졌다. 물을 구하기 위해서 물가에 모여 살다 보니 인구밀도가 높아져 주변에 있는 사냥감과 열매로는 많은 인구가 살기에 부족했다. 인간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시대가가지고 있던 기술적, 사회적, 경제적 제약 들 속에서 환경적 제약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문화가 되었고 그 문화의 물리적 결정체가 바로 건축물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건축 공간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의 유전적 계보를 살펴보려고 한다. - P7

인간 사회에 계층이 만들어지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다음, 기원전 500년을 전후해서 유라시아 대륙의 오래된 지역인 그리스, 인도, 중국에서위대한 사상가들이 나타났다. 피타고라스, 플라톤, 석가모니, 노자, 공자 등이 그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사람들의 ‘생각의 특성‘이지리와 기후에 의해서 결정됐다는 점이다. 강수량의 조건은 농업의 품종을 결정한다. 세계의 문화 권역은 크게 벼농사 지역과 밀 농사 지역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은 ‘연강수량 1천 밀리미터‘다.
연강수량이 1천 밀리미터 이상이면 벼농사, 1천 밀리미터 이하면 밀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이 두 품종은 농사법이 다르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하는 벼농사는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막기 위해 물을 다스리는치수 사업이 필요했다. 벼농사에는 저수지와 보를 만들거나 물길을 만드는 토목 공사가 필요한 것이다. 반면 밀 농사를 할 때에는 개인이 씨를 뿌리며 다니면 되고 치수를 위한 대형 토목 공사도 필요 없다. 노동방식 면에서 벼농사는 여러 명이 힘을 합쳐서 하는 방식이고, 밀 농사는 개인적으로 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벼농사 지역의 사람들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밀 농사 지역은 개인주의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문화적 특징의 차이는 알파벳과 한자 같은 문자나, 체스와 바둑 같은 게임 문화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강수량이라는 기후적 차이는 건축 디자인의 차이도 만들었다. 강수량은 땅의 단단한 정도를 결정한다. 비가 적게 오는 서양의 땅은 단단하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돌이나 벽돌 같은무겁지만 단단한 건축 재료를 이용해서 벽으로 지붕을 받치는 ‘벽 중심‘의 건축을 했다. 반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인 동양은 장마철에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무거운 재료로 만든 벽은 쓰러진다. 따라서 가벼운 건축 재료인 나무를 사용하였고, 자연스럽게 나무 기둥으로 지붕을 받치는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게 되었다. - P9

잉여 농산물은 사회 계층을 만들었고, 나누어진 사회 계층은 잉여 시간을 만들었으며, 잉여 시간은 문화를 만들었다. 문화는 다시 기후적 제약의 차이에 의해서 서로 다른 유전적 특성을 만들었다. 1차적으로 문명의 생각이 창조되면서 발생한 서로 다른 생각들이 만나고 충돌하고융합하면서 2차적인 창조가 만들어졌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고 융합하려면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여서 살아야 한다. 도시는그런 환경을 제공해 준다. 도시는 문명 발전의 ‘필요조건‘이다. 최초의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는 도시가 형성되면서 생겨났다.
인구 5천~5만 명 정도의 최초 도시 ‘우루크‘부터 인구 100만 명의 도시로마까지 거대한 인구가 모여 있는 도시들은 생각들의 충돌과 융합을만들어 내고 창조의 터전이 되었다. 도시는 창조의 플랫폼이었다.  - P10

교통수단의 발달이 ‘공간의 압축‘을 만든 것이다. 공간이 압축되자 다른 문화간의 융합이 일어나게 되었고 새로운 문화 변종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자의 지역에서 원시적 집단을 형성하고 평화롭게 살았겠지만, ‘말‘이라는 교통수단이 나오면서 공간이 압축되고 국가가 형성되었고 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다. 교통수단 발달에 의한 공간의 압축은 전쟁 같은 물리적인 충돌을 유발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가질 경우 소통을 통한 ‘문화의 융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유전 공학적 관점으로 비유해 본다면 다른 문화 간의 교류와 융합은 다른 품종의 교배로 볼 수 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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