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대표되는 미국의 과시적 이상을 더 유지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그것은 공통의 국민 정체성을 위해 이민자들에게 본인들의 문화를 감•출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건국 정신인 ‘여럿이 하나 된다.‘가 뜻하는 바에 따르려고 말이다.
1910년대 말과 1920년대 초, 미시건주 디어본의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는 이민 노동자들에게 무료이면서 의무적인 미국화 수업을 했다. 영어 외에도 작업 방식이나 개인위생, 식사 예절에 대한 강의를 했다. 이민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배운 문장은 ‘나는 훌륭한 미국인입니다.‘였다.
졸업식 때 그들은 거대한 나무 솥 앞에 모였고 강사들은 길이가 3미터인 국자로 젓는 시늉을 했다. 학생들은 각각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자기네 말로 노래를 부르며 한쪽 문을 통해 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분 뒤 반대쪽에서 나올 때는 모두 양복과 넥타이 차림으로 미국 국기를 흔들고 미국국가를 불렀다.
포드 자동차 회사의 ‘도가니(melting pot)‘에서 나온 유럽 이민자들이미국에 온 것은 미국의 주류 사회에 동화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족이 미국에 온 것은 19세기 중국을 떠난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즉 동화에 ‘저항‘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인류학자 자크 르모안이 본 바와 같이 "그들이 우리가 사는 여러 나라로 온 것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것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즉 몽족의 민족성을 구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라오스에서 몽족의 정체성을 안전하게 지킬 수있었다면 조상들이 끝까지 중국에서 버티려고 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라오스에 남아 있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주는 언제나 문제 해결의 방편이었지 매이기를 싫어하는 충동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 P304

몽족은 관료를 별로 존경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몽족 속담에 ‘호랑이를 만나면 죽는 법이고, 관료를 만나면 털리는 법이다.란 말이 있을정도다. 인도차이나계 난민들의 적응 문제를 다룬 한 연구에서 몽족 응답자들은 ‘전쟁의 기억‘이나 ‘가족과의 이별‘보다 ‘미국 기관과의 갈등‘을 더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또한 VOLAG 중에는 종교 단체와 관련된 곳이 많아 몽족 난민들은 개신교 목사들과 접할 경우가 많았는데, 목사들은 당연히 무속적 정령신앙을 좋게 보지 않았다. 난민을 지원하는 미네소타의 한 목사는 어느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을 여기로 데려와서 먹이고 입히기만 하고 지옥에 가도록 내버려두는 건 죄악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그들이 개종하길 바라십니다. 교회가 그들에게 주님을 증거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일 것입니다."
개종 작업은 당장 부작용을 일으켰다. 몽족의 정신건강 문제를 다룬한 연구에 따르면 이 목사가 소속된 종교 단체의 지원을 받은 난민들은 다•른 난민들에 비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 P3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