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마침 근래에 읽다 덮어 둔 보르헤스의 단편 가운데 한 구절이 머릿속을 뱅뱅 돌기 시작했다. 그 한 구절은 어쩐 일인지 선명하지가 않았다. 대강의 분위기가 떠오르고 윤곽도 그려지는데 정확한문장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무시해도 될 일이라고 할 테지만, 그리고 사실 그래도 될 정도로 대단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온 신경이 보르헤스에게 쏠렸다. 보르헤스의 문장을 찾아내기까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사태를 어쩔 것인가. 나는 갑자기 중요한 과제를 대하는 심정이되어 그 책을 찾았다. 읽던 페이지를 책상에 박은 채 ‘보르헤스‘는 내오른쪽 손이 닿는 곳에 꾸부정하게 누워 있었다. 나는 급히 책장을넘겨 문제의 구절을 찾았다. 단편의 제목은 <독일 진혼곡>이었는데, 거기에 이런 글이 씌어져 있었다.
‘우리가 우리의 불행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생각만큼 교묘한 위안은 없다‘
그 구절은 화살처럼 날아와서 내 가슴에 박혔다. 보르헤스가 그순간의 내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박부길씨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그것도 매우 독창적이고 현저하게 남다른동기에 의해 선택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소설 속에서나마) 교묘하게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에게는 위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위로하지 않는다. 그를 위로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것을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안다. 그래서 박부길은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한다. 그런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 P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