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주자의 노트에서
독일의 좋은 것들 No.1 Hansaplast

한자플라스트 Hansaplast는 1922년에 나온 반창고 브랜드다. 여섯 살 때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났을 때 엄마가 한자플라스트를 붙여줬다. 한자플라스트는 엄마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 피부가 두껍건 얇건, 매끈하건 주름투성이건, 건조하건 촉촉하건, 한자플라스트는 딱 달라붙어서 상처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최고 고집센 반창고여서 상처를 보려고 떼어내면 아프다.

강제수용소를 의미하는 콘첸트라치온스라거 Konzentrations-lager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이 언제였는지는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홀로코스트에 대해 배우기도 훨씬 전부터 나는 어렴풋이 그것에 대해 짐작하고있었다. 강제수용소는 뭔가 불길한 장소처럼 여겨졌고, 나의 상상 속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몸이 고통스러울정도로 한데 쑤셔 넣어져 있었다. 하지만 차마 겁이나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뭔가 꺼내선 안되는 이야기 같았다. 그것은 어른들도 소리 죽여 얘기하는 일이었고, 앞마당에서 오빠랑 나만 놀고 있을 때 가끔씩 사탕과 풍선을 건네던 남자에게서느껴지던 불안감을불러일으켰다.

우리 부모님은 종교는 없었지만, 어린 시절 일요일이면 가끔 오빠와 나를 데리고 성당에 가곤 했다. 우리가 뭔가를 믿으면서 자랄 수 있게 해주기위해서였다. 고해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고백할 정도로 죄지은 일이 뭐가 있었지 하며 머리를 쥐어짜던 기억이 난다.
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셨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물려받은 죄‘ -독일인들이 ‘원죄‘를칭하는 말-라거나 다른 세대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념은 익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예수님에게 그걸 받아들이겠다고 맹세했다.

나와 반 친구들은 베르사유 조약에서부터 파리강화회의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살폈다. 두운, 동어반복, 신조어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히틀러의 연설들을 분석했다. 나치 대원들이 유대인 가게와 사원을 약탈하고 방화한 라이히스크리스탈나흐트 Reichskristallnacht,
‘수정의 밤‘ 혹은 ‘깨진 유리의 밤‘ 기념일에는 아방가르드 공연도 올렸다.
수용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미국에서 온 할머니들에게 드릴 질문들도준비했다. 그러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에 대해 물어볼 생각은 절대하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 언어가 한때는 시적이었지만 이제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언어라고 배웠다. 실러를 읽긴 했지만 셰익스피어를 사랑하듯이 그를 사랑하도록 배우지는 못했다. 우리가 쓰는 어휘에서 ‘영웅‘ ‘승리‘ ‘전투‘ ‘금지‘라는 독일어 단어들을 지웠고 최상급을 피했다.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신보다 더 큰 어떤 이념을 믿는 것을 뜻하는 단어인 추자멘게회리히카이츠게LZusammengehörigkeitsgefühl은 미국의 문화정체성을 정의할 때는 사용했지만 우리 이야기를 할 때는 사용하지 않았다. "너무도 전형적인 독일식"이라는 표현은 불친절하거나 편협한 행동을 묘사할 때 썼다.

한때는 부엌 창문 너머로 저녁 먹으라고 부르던 이름들, 크리스마스 선물과 학교공책에 쓰여 있던 이름들, 교실에서 엄한 목소리로 불리던 이름들, 입대 날 소령들이 격식을 차려 호명하던 이름들, 떠나기 전날 밤 부인들과 아가씨들이 속삭여 부르던 이름들, 대답이 없을 줄 알면서도 전쟁터에서 목 놓아 부르던 이름들, 상관에게 보고되던 이름들, 대령 비서들이 사무실 타자기로 타닥타닥 치던 이름들, 축축한 군사 편지지에서읽히고, 다시 읽히고, 또다시 읽히던 이름들, 돌에 새겨진 이름들,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기 전 조용히 떠올리던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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