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는 이상스럽게 관대했고, 다른 식구들 역시 그러했다. 그는 종일 모래밭에서 뒹구느라 옷을 다 버렸지만, 큰어머니는 두말하지 않고 새옷을 갈아입혀서 다시 모래밭으로 내몰았다. 사촌 형은 그런 그의 손에 감과 대추를 들려 주었다.
그런 순간에 그에게 쏟아지던 주변 사람들의 특별한 눈빛에 대해서 그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다만 이례적으로 자신에게 우호적인 집안의 분위기에 만족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맨 처음 그 죽음의 현장을 목격한 장본인이었는데도 그랬다. 그는 너무쉽게 그 현장으로부터 벗어났다. 한 사람의 죽음의 충격조차 어린아이의 감정을 오래 장악하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라고 해야 할지.
상여가 산으로 나가기 전날 저녁, 담장 아래에서 구슬을 만지고 있던 박부길의 모습을 한동안이나 쳐다보고 있던 친척 어른이 (부음을듣고 외지에서 온 사람으로, 그에게는 고모가 된다고 했다) 갑자기 그에게 달려들더니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다. 당연히 그는 어쩐일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마구 쓰다듬으면서 눈물에 젖어 훌쩍이는 음성으로 말했는데, 그녀의 태도가 너무도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박부길은 잠깐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부길아, 죽은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그는 물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그는 틀리게 알고 있었다. 어렴풋한 깨우침이 그의 입을 막았다.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불쌍한 것, 그것도 모르고, 그것도 모르고..... - P70

큰아버지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잠시 동안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다 위로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파도가 밀려와 발 밑을 때렸다. 시간도 파도를 따라 그들의 발 밑을 때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큰아버지의 계산된 것 같은 침묵에 불안을 느꼈다. 그는엉덩이를 들썩이며 큰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는 어디 있느냐?
여전히 시선을 바다로 둔 채 큰아버지가 그에게 물었다. 엉뚱하기짝이 없는 물음이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큰아버지가 직접 대답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너의 가슴속에 있다. 아버지는 너의 정신 속에 있다. 너는 아버지의 일을 함으로써 아버지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네 속에 있는 아버지가 너에게 힘을 줄 것이다. 너에 의해서, 아버지는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그는 큰아버지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순간, 그는 막연하게 슬펐다. 무언지 분명하게 알 수 없으면서도 아득한 낙망의 정서가 울타리를 만들어 그를 감쌌다. 그는 자신이 이큰 우주 속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큰아버지는 시선을 바다에서 거두지 않았다. 햇살을 반사한 바다의 푸른 광채가눈부셨다. - P71

큰아버지가 그의 손에 삽을 쥐여 주었다. 그는 처음 당하는 일이었고,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흙을 퍼서 관 위에 뿌리라는 주문을 받고 나서 그는 조금 멈칫거렸다. 사람들은 삥 둘러서서 그가 행동하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야릇한 눈길들 속에서 그는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적어도 그 순간, 거기 모인 사람들에의해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구별되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들과 달랐다. 그들은 그와 달랐다. 적어도 그들의 표정은 그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너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네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그가 종종 경험하곤 했던, 세계로부터 이탈되어 나가는듯한 걷잡을 길 없는 소외감이 그때 처음으로 그를 찾아왔다.
그는 온몸을 빠르게 관통해 가는 전율에 사로잡혀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는데, 그것은 세계를 상대로 맞서 있는 한 왜소한 개체의 외로움이 그를 덮쳤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 그의 눈에서 눈물이한 방울 뚝 떨어졌다. 그 한 방울의 눈물을 타고 몸속의 기가 모조리,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렸다. 그는 맥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필시 사람들은 오해했다.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고, 코를 훌쩍이는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또 애써 소리 죽인 이런 말도 들렸다.
「불쌍한 것•••••. 알긴 다 알고 있었던가 보지•••••.」「그러게나. 이제 저 아이를 어쩔꼬•••••.」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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