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이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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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을 해온 편집자에게 이미 밝힌 바대로, 나는 이 글의 필자로적합하지 않다. 나더러 박부길 씨를 이야기하라니•••••. 솔직히 나는 많이 망설였다. 이유는 명확하다. 나는 그를 잘 모른다.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그럴 경우 불가피하게 끼어들 수밖에 없는 뜬구름 잡는 식의 변죽이나 애매모호한 수사들은 대개의 경우 진실을 왜곡하게 마련이다. 그런 일은 작가를 위해서나 그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해서나 해서는 안 될 일이다. - P13

그 호기심은 거의 직업적인 관심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말하자면 어느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박부길 씨를 소설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다시덧붙이자면, 한 작가의 성장 배경을 꼼꼼하게 살피는 일이 그의 문학과 삶에 대해 깊은 이해를 확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썩 유익한 일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읽은 그의 소설들과 그에 대한 기사들과 두 번의 인터뷰 내용을 두루 섭렵해 가면서, 가장 자유로운 방식으로 우선 그의 유년기를 재구성해 볼 생각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며, 충실한 연대기를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의식 안쪽에 단단하게 붙어 그의 삶과 문학을 지배해 온 질기고 억센 몇 개의 큰 흉터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들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어차피 지금의 그는 자신이 살아 낸 이제까지의 삶의 흔적들을 피상적으로 끌어안고 있는 하나의 표정이다. 표정에 층은 있지만, 흔적들은 질서를 알지 못한다. 그것들은 서로 몸을 섞고 있다. - P18

 그 책들을 어린 박부길은 뜻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무작정읽어 치운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무의지적인 것이었고, 책을 읽는다는 분명한 자각도 없는 상태에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한 번도 어린아이다운 적이 없었던 그는 자신의지긋지긋한 그는 내게 그 표현을 썼다. 그 나이에 벌써 현실에 대해 엄청나게 비극적인 상상을 하곤 했노라는 것이다) 현실을 자신의 것으로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그리하여 상처받은 그의 자존심은 현실로부터 자신을 유폐시키기를 꿈꿨다. 요컨대 그의 독서에 몰두는, 책속에서 낙원을 발견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현실에 눈감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책들은 일찍부터 마취제였다. 그러므로 성인이 되어 책을 쓰고 있는 지금은 자신의 글 만들기가 마취제인 셈이라고, 그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띠며 나지막하게고백했다. - P22

모든 금령이 신성한 것은, 그것들이 징벌의 공포로 포장되어 있기때문이다. 두려움을 유발하지 않는 법은 신성으로부터 멀다. 신성은어디 있는가. 두려움 속에 있다. 아니, 두려움에 대한 예감 속에 있다. 그런데 그것은 왜 두려운가. 금지된 것은 사람을 끈다. 그것이 이유이다. 금령은 권고가 아니라 유혹이다.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금령이 생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금령이 있기 때문에범죄를 저지른다. 사람이 에덴의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야훼가금령을 준 것이 아니다. 야훼가 금령을 주었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을 따먹었다. 금령이 없으면 범함도 없다.
큰아버지가 뒤채의 ‘차꼬를 찬 남자‘ 대신 ‘감나무‘를 금기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런 성찰 때문은 물론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금령은 포괄적인 것이었다. 감을 따먹지 말라는 명령은, 감나무가 서 있는 곳에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제 분명해진셈인데, 금지된 것은 감나무가 아니라 감나무가 서 있는 땅이었다. 감나무는 단지 하나의 표지에 불과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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