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는 입구 근처에 있는 화장실로 향하던 미카엘이 삼십대 중반의 어떤 남자와 부딪힐 뻔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에리카가 보기에 그 낯선 사내는 깜짝 놀란눈으로 미카엘을 응시하는 듯했다. 혹시 미카엘을 아는 사람인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다음 순간, 그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에리카는 처음에 자신이 본 광경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내그가 미카엘을 향해 총을 겨눴을 때 그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미카엘은 생각할 겨를 없이 반응했다. 왼손을 불쑥 내밀어 총부리를 붙잡아 천장을 향해 올렸다. 찰나의 순간, 시커먼 총구가 그의 얼굴 앞을 홱 지나갔다.
이어 기관단총 소리가 좁은 식당 안을 가득 채우며 귀를 먹먹하게만들었다. 미로 니콜리치가 총알을 열 발 넘게 갈겨대는 사이에 박살난 천장에서 석회와 유럿조각이 머리 위로 비처럼 떨어져내렸다. 그짧은 순간에 미카엘은 자신을 죽이려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내 미로 니콜리치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미카엘의 손에서총을 빼냈다. 순간적으로 당한 미카엘은 총부리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위험에 처했다는 걸 깨달았다. 본능적으로 곧장 괴한을 향해 돌진했다. 만일 이때 몸을 숙였거나 뒷걸음쳤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미카엘은 다시 한번 총부리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그는 온몸에 체중을 실어 괴한을 벽으로밀어붙였다. 다시 총알 예닐곱 발이 발사되는 소리를 들으며 총부리를 바닥으로 돌리기 위해 죽기 살기로 잡아내렸다. - P694

이내 미카엘은 깨달았다. 지금 리스베트는 분장을 하고 나온 것이있다. 평상시 그녀는 옷을 대충 입었고 별다른 취향도 없어 보였다. 미카엘은 그녀가 괴상한 옷차림을 하는 건 유행을 따르기 위해서가아니라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자신의 개인적 영역이 하나의 적대적 지대라는 걸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미카엘에겐 그녀의 가죽재킷에 박힌 뾰족한 징들이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일종의 방어기제로 느껴졌었다. 그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보내는신호였다. 날 만지려고 하지 마. 아플 테니까. 그런데 지금 그녀는 법정에 등장하면서 그런 옷차림을 한층 더 강조했다. 얼마나 강렬한지 과장된 패러디로 보일 정도였다.
미카엘은 불현듯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안니카가 세운 변호 전략의 일부였다.
만일 리스베트가 단정히 빗은 머리에 얌전한 블라우스와 깔끔한 단화 차림으로 나타났다면 어땠을까? 분명 법정에 거짓말을 팔러 나온 속 보이는 사기꾼으로 비춰질 것이다. 이건 신뢰성의 문제였다. 지금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심지어는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려고 과장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아닌누군가인 척하려 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부끄러워할 생각도, 어떤쇼를 할 생각도 없어, 이것이 그녀가 법정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법정이 이런 모습을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상관할바가 아니었다. 사회는 여러 가지로 그녀를 비난하고 있었고, 검사는결국 그녀를 이곳까지 끌고 들어왔다. 리스베트는 이런 모습으로 등장함으로써 자신은 검사가 기소한 내용들을 모두 엿 같은 소리로 여기고 있다는 걸 처음부터 분명히 보여준 셈이었다. - P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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