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르트는 리스베트의 병실 앞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돌렸다. 문고리는 무언가에 걸려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주 짧은 순간, 그는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엉거주춤 문앞에 서 있었다. 방안에 안니카 잔니니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만일 그녀의 서류가방에 군나르의 보고서 사본이 들어 있다면 •••••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걸 부술 힘이 그에겐 없었다.
어차피 그의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안니카는 프레드리크가 맡아서 처리할 것이다. 자신은 실라첸코만 끝내면 그만이었다.
에베르트는 복도를 둘러보았다. 스무 명쯤 되는 간호사에 환자와면회객들이 문을 빼꼼히 연 틈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권총을 치켜들어 복도 끝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 대고 한 방 쏘았다. 마치 요술 지팡이라도 휘두른 듯 구경꾼들이 일시에 자취를 감췄다.
그는 꽉 닫혀 있는 문에 다시 한번 눈길을 던진 뒤 결연한 걸음으로 살라첸코의 병실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런 다음 면회객용 의자에 앉아 오랜 세월 그의 삶에서 내밀한 부분이었던 소련 망명자의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꼼짝 않고 앉아 있은 지 십 분이나 되었을까, 복도에서 들려오는 웅성대는 소리로 그는 경찰이 도착했음을 알았다. 그 순간, 특별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권총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어진 일들은 살그렌스카 병원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신중치 못한 선택이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에베르트는 급히 외상 전문 응급실로 옮겨졌고, 안데르스 요나손은 곧바로 필수적인 생체 기능을 유지시키기 위한 응급조치를 취했다. - P206

프레드리크가 말을 끊었다.
"그는 암에 걸렸어. 위와 대장, 그리고 방광에 벌써 여러 달 전에사망선고를 받았고, 살날은 두 달밖에 안 남아 있었지."
"암?"
"그는 여섯 달 전부터 그 권총을 가지고 다녔네. 더이상 고통을 견딜 수 없는 정도가 되면, 자신이 중환자실에 누운 고깃덩어리가 되면 사용하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하지만 섹션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해야 했지. 참으로 위대한 마지막 출정이었어."
비리에르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당신은 알고 있었던 겁니까? 그가 살라첸코를 죽일 생각이었다는 걸?"
"물론이지. 살라첸코가 입을 열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는 것, 이게바로 그의 임무였어. 자네도 잘 알잖나. 우린 그자를 위협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었다는 걸."
"이 일로 어떤 스캔들이 일어나게 될지 몰라요? 당신도 에베르트만큼이나 돈 거예요?"
프레드리크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비리에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팩스로 받은 종이 한 뭉치를 건넸다.
"그건 작전상 내린 결정이었어. 난 지금 내 친구를 애도하고 있고, 얼마 후엔 나도 그의 뒤를 따르게 될 거야. 그리고 스캔들은...... 어느 전직 세무 변호사가 편집광 증세가 명백히 드러나는 편지들을 써서 신문사, 경찰, 그리고 법무부 장관에게 보냈네. 그중 하나를 봐. 여기서 에베르트는 살라첸코에게 갖가지 혐의를 씌우고 있어. 팔메 수상을 암살하고, 스웨덴 국민을 염소로 전부 독살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이 편지들을 살펴보면 정신질환자의 작품이라는 걸 명백히 알 수있지. 제대로 읽히지도 않는 데가 한두 곳이 아니고, 툭 하면 나타나는 대문자와 밑줄과 느낌표, 그리고 이렇게 여백에다 깨알같이 적어높은 방식이 특히 마음에 들어."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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