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르크는 좀 달랐다. 리스베트를 보자마자 얼굴이 환해지면서 벌떡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했다.
"오, 리스베트! 이렇게 보게 되어 정말 반갑네. 그렇잖아도 신세를지고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해 마음이 안 좋았는데. 지난번 겨울에도 그랬고, 이번 일도 그렇고......"
리스베트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전단지 보수를 받고 일했을 뿐인데요."
"아, 그런 말이 아니야! 처음 봤을 때 자네를 잘못 판단했었다고. 그걸 사과하고 싶은 거라네."
디르크는 문신과 피어싱을 잔뜩 한 스물다섯 살짜리 젊은 친구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일로 매우 정중하게 사과하고 있었다. 미카엘은 사뭇 놀랐다. 갑자기 그가 훨씬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 P498

다시 페이지를 넘긴 순간, 미카엘은 또 한번 목덜미 털이 쭈뼛 일어섰다.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한줄기 바람이 방안으로 들어온 듯했다.
하리에트에 대한 수색 작업이 시작된 그다음날의 사진들이었다. 젊은 형사 구스타프 모렐은 제복을 입은 경찰관 두 명과 수색을 돕기 위해 장화 차림으로 집합한 십여 명의 남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있었다. 헨리크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레인코트에 챙이 넓은 영국식 모자를 썼다.
그리고 사진 왼쪽 끝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약간 통통한 체격에 더부룩한 금발머리였고 어깨 부분에 붉은 색이 들어간 어두운 퀼트재킷을 입고 있었다. 사진은 지극히 선명했으며 미카엘은 그를 즉시 알아보았다. 하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사진을 꺼내 아래층으로 내려가 안나에게 이 사람을 알아보겠느냐고 물었다.
"알다마다요! 마르틴 회장님 아니에요? 이때가 아마 열여덟 살쯤이겠죠" - P504

협곡을 빠져나오니 보다 완만한 구릉지대가 펼쳐졌다. 갑자기 어디선가 총성이 들렸다. 이어 곳곳에 뒹구는 양들의 시체와 커다란 화톳불들과 목장 일꾼으로 보이는 사내 여남은 명이 보였다. 모두 손에엽총을 들고 있었다. 아마도 양들을 도축하는 모양이었다.
미카엘은 자신도 모르게 희생번제를 위해 도살당하는 성경 속 양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 여인을 보았다. 청바지에 흰색과 빨간색이 들어간 체크무늬 셔츠를 걸쳤고 머리는 짧은 금발이었다. 제프는 그녀에게서 몇걸음 떨어진 곳에 지프를 세웠다.
"하이, 보스! 관광객이 한 명 찾아왔어요."
미카엘이 지프에서 내려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는 의혹에 찬 눈으로 미카엘을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하리에트! 정말 오랜만이군요." 미카엘이 스웨덴어로인사했다. - P569

미카엘은 일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하리에트를 찾으러 갔다. 그런데 순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전날 아를란다 공항에서 헤어지고 난 후 그녀가 머리색을 원래대로 되돌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은 바지에 하얀 블라우스, 우아한 회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미카엘은 몸을 굽혀 그녀의 볼에격려의 키스를 남겼다.
미카엘이 그녀를 들여보내려고 병실 문을 열자 헨리크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리에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안녕, 헨리크 할아버지!" 그녀가 들어가며 인사했다.
노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녀를 살폈다. 미카엘이 디르크에게 고갯짓으로 신호를 보내 두 사람만 남겨놓고 나와 문을 닫았다. - P587

"좋아, 그만두자고 그런데 왜 돌아왔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내가 실수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리스베트, 넌 ‘우정‘이란 말을 어떻게 생각해?"
"누군가를 좋아하는 걸 말하겠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뭘 의미할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이렇게 정의했어. 우정의 토대를 이루는 건 두 가지, 존경과신뢰라고 생각해. 이 두 요소는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해. 누군가를 존경한다 해도 신뢰가 없다면 우정은 갈수록 약해질 뿐이야."
그녀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내가 생각하기엔 넌 스스로에 대해 나와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없어. 하지만 언젠가는 결정해야 할 순간이 올 거야. 나를 신뢰해야할지 말지.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만 나 혼자서는 친구가 될수 없는 노릇이야."
"당신과 같이 자는 게 좋을 뿐이에요."
"섹스는 우정과 아무 상관이 없어. 물론 친구 사이에도 잠은 잘 수있지. 하지만 리스베트, 만일 너를 두고 우정과 섹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난 뭘 선택해야 할지 잘 알고 있어." - P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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