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제조하는 회사들은 가공식품 업계의 요청에 따라 채식용햄버거를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 고기의 탄 맛을 흉내 내는 냄새를 만들기도 한다. 또 처음에는 무향이었다가 물이 섞이면 냄새가 나기시작하는 향, 가공식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쾌한 냄새를 가리는 향도 만든다. 이러한 묘약들은 부엌 선반에서 몇 달을 묵어도 썩지 않는 현대 포장 가공식품의 탄생에 공헌한 숨은 영웅이면서도 계획적으로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연방 규제 기관들은 식품 제조 업체들의 편의를 위해 펌킨 스파이스와 같은 합성 향료에 쓰이는 화학물질의 제품 성분 표시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그런 화학 성분들은 ‘천연 및 인공 향료‘라는 모호한 항목에 한데 묶여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화학물질이 우리가 먹는 식품에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뇌는 아주 잘 안다. 이런 화합물에서 나오는 휘발성 물질은 오직 식욕을 자극하겠다는 목표로 후각 망울을 강타한다. 그중에서도 천연 바닐라 맛을 내는 인공 향료 바닐린은 구미를 가장 강하게 돋우는 물질이라 할 수있다. 식품 제조 업체들은 1만 8000개가 넘는 제품에 바닐린을 첨가하는데, 이 중에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처럼 자신이 바닐라 향을 좋아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제품들도 있다.(초콜릿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 중 두 번째로 인기가 많은 종류다.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스크림은 플레인 바닐라 맛이다.)향 제조 회사들이 우리의 식습관을 형성하는 데 이런 간계를 쓰기는 하지만, 천연 향료의 맛을 흉내 내는 능력이 이들이 식품 업계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아니다. 식품 기업들이 이런 향 제조 회사들에 도움을 요청할 때는 천연의 맛을 흉내 내는 일보다 더강력한 효과를 기대한다. 식품 기업들이 이런 화학 실험실을 이용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 심리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사람들이 현명한 판단이 아니라 본능이나 습관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 P185

식습관을 형성하고 가공식품 중독을 야기하는 가장 기본적이고강력한 인간의 본능은 가격과 관계가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이 인간의 진화를 에너지 관점에서 설명했던 것을 다시 떠올려 보자. 에너지 관점이란 음식에서 얻는 에너지를 어떻게 소비하며 그 음식을 획득하는 데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소비하는가를 말한다. 후자와 관련하여 우리 조상들이 가장 쉽게 음식을 구하는 길을 택했다는 사실은쉽게 이해가 된다. 그들은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음식을 구하러 다닐 때 힘이 덜 들었고,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익혀 먹음으로써 소화율이 높아졌으며, 신선한 고기를 먹으려 할 때는 영양 대신 나무늘보를 사냥했다. 오늘날 우리가 음식에 관해 내리는 의사결정에도 조상들의 행동 방식이 어느 정도 작용하는 듯하다. 싼 음식을 구매하는 것은 그 음식을 사기 위해 일을 덜 해도 됨을 의미하므로 우리는본능적으로 값싼 식료품과 저렴한 레스토랑에 끌린다. - P187

슈퍼마켓 체인들이 도둑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슈퍼마켓들은화학 회사에 유명 브랜드의 제조법을 훔쳐 오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쉽기도 하거니와 핵심을 벗어나 있다. 슈퍼마켓들은 자체상품을 더 싸게 팔아야 한다. 그러려면 제조 비용이 덜 들어야 하는데 여기가 바로 향 제조 회사들이 식품 업계에 아주 중요한 존재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지점이다. 그들의 임무는 값싼 재료를 사용하여특정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맛을 모방하는 것이다. 향 전문가인샌손의 말처럼 "대형 할인점들은 유명 브랜드의 제품과 유사한 것을바라면서도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천연 바닐라는 자연의 놀라운 작품으로 수많은 천연향 성분이 혼합되어 있어 매우 깊은 맛을 낸다. 그러나 천연 바닐라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자라는 난초에서 얻기에 엄청나게 비싸고 가격 변동 폭도 매우 크다. (일례로 2019년에 바닐라콩은 1파운드약 450그램에 272달러였다.) 따라서 식료품이나 레스토랑 요리에 쓰이는 바닐라향은 대부분 향 전문가들이 만든 가짜다. 가짜 바닐라 향인 바닐린은 천연 바닐라의 향 분자 중 하나로 펄프와 제지 공업의 폐액에서추출하거나 실험실에서 합성한다. 바닐린의 부족한 향은 가격으로 상쇄하고도 남는다. 1파운드에 7달러밖에 하지 않기 때문이다.
펌킨 스파이스를 만드는 시클로텐과 락톤류처럼 향 제조 회사들과 그들의 고객사인 식품 제조 업체들이 가공식품 제조에 사용하는 성분의 더 값싼 공급원을 찾아서 절약하는 생산 원가는 고작 몇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후각 망울을 자극하지 못하면 뇌가 비용절약에서 느끼는 흥분으로도 보완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191

편의성에 주목하도록 한 식품 업계의 전략은 아주 순조로우면서도 철저하게 실행되어서 우리는 설탕 전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업계에서 편의성이라는이름으로 달게 만든 것은 시리얼만이 아니었다. 기업들은 옥수수 시럽부터 농축 과즙에 이르기까지 60가지가 넘는 당을 무기로 마트에서 파는 거의 모든 제품, 과거에은 단맛이 나지 않았던 제품에까지 설탕을 첨가했다. 한편으로 그들의 목적은 일명 설탕에 대한 지복점(blisss point. 최고의 만족도를 제공하는 지점), 즉 뇌의 추동하는 영역이 매우 자극되어 억제하는 뇌 영역이 제동을 걸 기회조차 없는 설탕의 양을정확히 찾아내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빵에도, 요거트에도, 토마토 주스에도 지복점을 자극할 만큼의 설탕을 넣었다. 그러나 편의적 측면도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단맛이 첨가되었다는 특징은 음료수는 물론이고 디저트류, 유제품, 시리얼, 크래커까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기대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면서 제품의 포장 전면에 표기되는 매력 요소가 되었다. 이런 전략 때문에 이제 마트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무려 4분의 3가량에 감미료가 함유되어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모든 음식이 달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아이들에게 달지 않은 것, 특히 채소 같은 것을 먹으라고 할 때인상을 쓰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가 먹는 시간을 아끼려 하자 식품기업들은 우리를 설탕에 중독시켰다. 또 제품 자체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소금과 지방도 첨가했다. 우리는 소금, 설탕, 지방 섭취의 주도권을 식품 기업들에게 통째로 넘겨주었고, 이로써 우리의 음식 문화는 기업들이 만든 식습관으로 변하고 말았다. - P195

우리의 문화적 규범에서 이러한 거대한 변화가 언제 일어났는지, 언제부터 우리가 식품 기업의 손에 놀아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짚어 내기는 어렵다. 강박적인 식습관을 해결하기 위해 섭식 행위를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이런 변화가 1980년대 초반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것으로 본다. 과거에는 식사 전에 입맛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 무렵부터 무엇이든 어디서든 아무 때나 먹는일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이전과 달리 군것질을 하기 시작했다.
식품 기업들이 군것질을 네 번째 식사로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기업의 수익과 함께 사람들의 허리둘레도 늘어났다. 현대인은 군것질로 하루 평균 580칼로리를 섭취한다.‘ 하루 먹는 양의 대략 4분의1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 군것질은 값싸고 편리하게끔 만들어진 가공식품과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마트에서 사서 집에 가져와 세척하고 껍질을 벗겨 잘게 썰어 보관해야 하는 당근을 군것질거리로 먹지 않는다. 식품 회사들은 군것질거리로 작은 셀로판 봉지에든 사탕, 포장된 초콜릿바, 빨대를 꽂아 먹을 수 있는 음료, 전자레인지용 봉지에 담긴 음식, 튜브 형태로 쉽게 짜 먹을 수 있는 요거트나과일 퓌레 같은 것을 내놓았다. 대부분 별 고민 없이 즉석에서 구입할 수 있는 식품이다.
여기에서 식품 기업들은 한 가지 작은 문제에 봉착했다. 그들은 연구를 통해 인간이 한 가지 음식을 계속 먹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 뇌가 다른 음식을 찾도록 명령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간은 맛이든 촉감이든 색이든 한 가지 감각 요소에 너무 많이 노출되면 싫증을 느낀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포만감을 느낀 우리조상들이 다른 음식을 찾아다니면서 필요한 다른 영양분을 섭취했다고 볼 수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잘된 일이었다. 아르디가 나뭇잎외에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서 더 튼튼해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가지에 쉽게 질리는 인간의 특성은 자연선택을 통해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런 생물학적 특성은 식품 제조 기업들에게 또 하나의기회가 되었다. 식품 기업들은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여 포만감을 느껴 그만 먹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고 또다시 먹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답을 찾아냈다. 제품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조금만 다르게 해도, 심지어 달라 보이게만 해도 더 오랫동안 먹을 수 있었다. 그들은이 전략을 다양성(Variety 이라고 불렀다. - P197

사람들이 다양성에 열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식품 기업들은 음식을 달게 만들었을 때처럼 단순히 스낵류를 다양화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마트에서 파는 거의 모든 식품에 다양성을 입히기 시작했다. 1980년에 대형 마트에는 약 6000개의 제품이 있었는데 1990년에는 1만 2000개로 증가했고 현재는 평균 3만 3000개에 달하는 제품이 있다. 이 중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 경우는 거의 없다. 기존 제품에 새로운 색을 입히거나 포장을 달리하거나 맛을 추가하는 편이 기업에게는 더 쉽고 안전했다. - P199

섭식 장애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이런 사실이 사람들의 행동에 미친 영향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연구를 통해 다양성이 자제력을 잃게 하는 강력한 요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식품이 다양할수록 더 많이 먹는다는 사실, 인간이 다양성에 대단히 민감하고 그것이 대개는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연구가 많습니다." 드렉셀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마이클 로가 내게 말했다. "한 연구자는 사람들에게 열 가지 색상의 엠앤엠 초콜릿을 주면 여섯 가지 색상을 줄 때보다 상당히 더많이 먹는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심지어 맛이 다 똑같은데도 말이죠. 또 어떤 연구는 사람들에게 스파게티 한 접시를 주면 일정량을먹고 그만 먹었는데 양은 더 많지만 이후 모양이 다른 토르텔리니 한 접시를 주면 그냥 다른 파스타일 뿐인데도 또 먹는다는 사실을밝혀냈습니다. 슈퍼마켓만 보더라도 식품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집에서든 식당에서든 음식 종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질릴 때까지 더 많은 양을 먹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취약성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측면은 또 있다. 다양성을 좋아하는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판매량을 늘리려는 식품기업들은 실제로 제품을 바꿀 필요도 없다. 연구에 따르면 음식을 먹는 동안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사용하는 등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리면 음식에 집중할 때보다 더 많이 먹는다고 한다. 음식 대신 전자기기처럼 눈을 뗄 수 없는 것에 집중하고 있으면 정신이 팔린 사이에 뇌가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그러다 다시 음식에 집중하면 마치 음식이 달라진 것처럼 느껴지고 새롭게 보인다. 그 결과 우리는 과식을 자제할 수 없게 된다. - P203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대체로 곡식, 채소, 고기와 같은 자연식품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편의성과 군것질에열광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패턴이 바뀌었고, 그 결과 오늘날에는 식품 제조 기업들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완전히 지배하게되었다. 2015년에 이런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최초의 설문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그 수치는 실로 놀라웠다. 열량으로 따졌을 때오늘날 우리가 구매하는 식료품의 4분의 3이 가공식품이며 심지어대부분이 초가공식품으로 분류된다. 28 이런 식품은 식물이나 동물에서 얻은 원재료를 더 이상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형시킨 성분을 혼합하고 조제하여 만든 것이다. 또 편의성이 아주 높아서 대부분 즉석에서 섭취할 수 있거나(68퍼센트) 데우기만 하면 되고(15퍼센트) 소금, 설탕, 지방도 우리가 직접 요리할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이 들어간다. - P207

FDA가 영양 성분 표기를 실제로 의무화한 것은 그로부터 20년후였다. 하지만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1990년대에 들어설 무렵식품 기업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대부분의 포장식품에 제품의 영양성분 정보를 자세히 표기했기 때문이다. 1990년에 대형 스낵 기업인 프리토레이는 FDA에 전달하는 의견서에 식품 업계가 해당 정책을 크게 환영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사는 언제나 소비자의 요구와 우려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으며, 영양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 및 요구와 관련하여 식품에 정확하고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라벨을 부착하는 일에 직접적인 관심과 책임을 느낀다. 우리는 미국의 일반 대중에게 영양 성분에 관한 확실한 정보를 제공하는이 정책을 지지한다."
그들은 업계의 기밀을 밝히는 일을 왜 이렇게 즐거워했을까? 먼저 가공식품 업계가 연방 정부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 냈다는 점을들 수 있다. 새로운 라벨 정책에 협조하는 대가로 FDA는 제품 포장 전면에 모조 식품임을 표기해야 하는 규정을 폐지하는 데 동의했다. 기업들로서는 그동안 판매에 엄청난 타격을 입혀 온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었다. FDA가 이 규정을 둔 이유는 소비자들이 가짜 식품에 속아 돈을 헛되이 소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포화지방함량을 줄이기 위해 식물성 기름을 사용한 유제품이 이 규정으로 타격을 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비자에 대한 기만행위를 우려하여 시•행한 정책이 가공식품 전반에 적용되면 그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지누가 알겠는가?
원료를 열거하는 영양 성분 표기의 특성으로 인해 식품 업계는또 다른 유예를 받았다. 표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향을 내는 데 사용한 화합물(이를테면 펌킨 스파이스에 쓴 80가지성분)과 음식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주로 보조물로 쓰였으나 최종 제품에는 전혀 보이지 않거나 아주 극소량만 남은 다양한 물질은 영양성분 표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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