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물리학은 훌륭했지만, 그의 계산 능력은 형편없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한 가지 문제를 오랫동안 파고들 만한 참을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 결과 그가 새로운 분야의 문을 열어젖히면 다른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 중요한 발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 P150
9개월 후인 1939년 9월 1일에 오펜하이머는 또 다른 학생인 하틀랜드 스나이더(Hartland Snyder)와 「연속적 중력 수축에 관해 (On ContinuedGravitational Contraction)」를 발표했다. 역사적으로 이 날은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날로 훨씬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논문이 발표된 것 역시 중요한 사건이었다. 물리학자이자 과학사가인 제러미 번스타인(Jeremy Bernstein)은 그것을 "20세기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논문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물리학자들은 오펜하이머와 스나이더가 1939년에 20세기 물리학으로 진입할 수있는 중요한 문 하나를 활짝 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펜하이머와 스나이더의 논문은 거대한 별에서 연료가 다 타 버리면 어떻게 될지를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이별은 백색 왜성(어느 질량 이상의 중핵을 가진 별)으로 붕괴해 버리는 것이•아니라, 스스로의 중력 때문에 수축을 계속할 것이었다. 그들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이용해, 별이 극도로 수축한 결과 생겨나는무한한 중력 때문에 광파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멀리서 관측한다면 그와 같은 별은 말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이었다. 오펜하이머와 스나이더는 "오직 중력장만이 남게 된다."라고 썼다. 그들은 블랙홀이 생겨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었다. 이것은 흥미롭지만 기묘한 개념이었다. 이 논문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무시당했고, 그들의 계산 결과는 오랫동안 수학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치부되었다. - P151
수년 후 오펜하이머의 친구들과 물리학계의 동료들은 그토록 명석했던 그가 왜 노벨상을 받지 못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는 했다. 레오네델스키는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에 매우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파울리 정도나 되어야 오펜하이머보다 물리학에 대해 더많은 그리고 더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 하지만 노벨상을 타기 위해서는 인생의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능력뿐만 아니라 현신성이나 전략도 있어야 하고, 타이밍도 맞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운이따라야 하는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관심을 끄는 최첨단 물리학연구를 할 헌신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확실히 능력도 갖추었다. 하지만 그는 올바른 전략을 구사하지 못했을 뿐더러, 타이밍도 맞지않았다. 마지막으로, 노벨상은 대개 무언가 구체적인 성과를 낸 과학자들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반면 오펜하이머의 천재성은 물리학계 전반의 성과들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에 있었다. 1934~1936년에 그의 지도로 박사 후 과정 연구원으로 활동했던 에드윈 울링(Edwin Uehling)은 "오펜하이머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그의 물리학 지식은 대단히 포괄적이었습니다. 그가 노벨상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대개 노벨상 위원회의 관심을 끌 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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