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햄버거와 사랑에 빠진 소녀

재즐린 브래들리의 삶에 맥도날드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일곱 살 때, 뉴욕 브루클린의 붉은 벽돌로 만든 연립 주택으로 이사를 간 후였다. 집에서 한 블록 반 정도만 가면 맥도날드 매장이 있어서 쉽게 들러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재즐린은 늘 해피밀을 주문했다. 황금색 둥근 손잡이가 달린 상자 안에는 군침을 돋우는 햄버거에 감자튀김, 쿠키, 거기다 장난감까지 들어 있었다. 가끔은 재즐린의 아버지가 퇴근길에 맥도날드 제품들을 한 아름 사서돌아오기도 했는데, 식구가 늘 때마다 아버지 손에 들려 오는 맥도날드 상자와 봉지도 점점 늘어났다. 이렇게 맥도날드 음식으로 잔치라도 벌이는 날이면 재즐린과 동생들(재즐린은 10남매 중 둘째였다.)은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고 마지막 남은 감자튀김을 차지하려고싸우기 일쑤였다. - P9

맥도날드 재판에서 스위트 판사가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맥도날드 제품들을 중독성 있게 만든 요소는 무엇인가? 설탕과 지방의 특정한 조합인가? 아니면 "담배의 니코틴처럼 작용하여 중독을야기하는 다른 첨가물이 있는가? 맥도날드 제품에 중독되려면 얼마나 많은 양을 먹어야 하는가? 중독은 즉시 시작되는가 아니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가? 아이들이 성인보다 취약한가? 기업은 이것을 의도했는가? 스위트 판사는 "맥도날드가 고의적으로 이러한중독성 있는 제품을 제조한 것인지에 대한 혐의는 제기된 바 없다."라고 했다.
스위트 판사는 중독성에 관한 주장을 검토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부분적으로는 허슈가 제기한 다른 주장들이 형편없이 허술한 탓도 있었다. 법리적 관점에서 다른 소인들은 아주 높은 장해물에 맞닥뜨렸다. 스위트 판사는 패스트푸드가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맥도날드고객 중 어느 누구도 그런 음식을 과도하게 먹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아이들의 경우라면 그 부모가 패스트푸드의 위험을 몰랐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힘들었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으리라고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정보를 주지 않았다고 해서 어떻게 기업을 비난할 수 있을까?
반면에 중독성이 있다는 주장은 그런 현실을 교묘히 피해 갈 가능성이 있다는 면에서 설득력이 있었다. 중독성 있는 제품을 판다는것은 소비자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문제에 대해 완전히 다른 해석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허슈의 의뢰인들은 자신이 예상치 못한 힘에 사로잡혔다고 주장하는 데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질 터였다. 스위트 판사는 패스트푸드에 들어간 엄청난 양의 설탕과 지방과는 달리 중독성 있는 음식이 지닌 "위험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을뿐더러 명확히 드러나지도 않아서 맥도날드의 고객들이 그 점을 알았을 것이라 예상할 수 없다."라고썼다. - P22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요소도 작용한다. 나쁜 식단이 야기하는 건강이상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도 발생하지만,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이 가난한 유색 인종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저런 방식으로 음식 앞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이를테면 먹는 것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끼거나먹는 것을 자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식욕이 우리에게 유익하기는커녕 해롭다고 걱정하거나 먹고 싶은 것과 우리 몸에 필요한 것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고가공식품의 편의성과 여러 매력에 완전히홀리면서 과거에 느꼈던 음식의 매력이나 감흥, 식사 예절과 관습도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 P24

우선 인간이 어떤 것에 중독되는 데 약물에서나 발견되는 독한 화합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뇌에는 강박적 행동을유발하도록 정교하게 조직된 자체적인 화학물질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도파민이다. 실제로 이런 물질들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할정도로 강력해서 약물은 뇌가 자체적으로 지닌 이런 물질을 모방하도록 만들어진다. 사실 신경 자극으로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도리토스 잭Doritos Jacked으로는 코카인이 야기하는 정도의 갈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나 중독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물질이 뇌를 자극하는 속도에 있다. 이러한 사실은 패스트푸드라는 용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 준다. 1000분의 1초를 기준으로 중독의 세기를 측정할 때 뇌를 자극하는 데 가공식품보다 빠른 것은 없다. - P28

중독은 기억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가 음식에 관해 생성해내는 기억은 일반적으로 다른 어떤 물질보다 강력하고 오래 지속된다. 음식에 관한 어릴 적 기억은 평생 동안의 식습관에 신기할 정도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유명한 요리사이자 음식 전문 작가였던 사람이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기 시작하자 음식에 대한 감각이 퇴화하고 음식을 향한 열정도 사그라진 것이 좋은 예다. 이런 점에서 기억은 중독을 부르는 식습관을 형성하는데 음식 그 자체만큼이나 강력한 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은 코부터 장, 체지방에 이르기까지 몸 전체가 단순히음식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더 많은 음식을 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선사시대의 인류 화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인간은 놀랍게도 달고 열량이 높은 음식만이 아니라 편리하고 다양하며 생산하는데 비용(노력)이 적게 드는 음식을 찾아 나서도록 진화되었다. 언젠가 나는 어느 가공식품 업계 임원으로부터 인간은 값싼(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에 중독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중독의 이러한 측면이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상 노력이 적게 든다는 것은그만큼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는 뜻이었다. - P29

 결국 세계보건기구는 중독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완전히 중단하고 대신 의존성 dependency 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가 촉발된 것은 사람들이 기분 전환을 위해 사용하거나 남용하는 마약과 기타 약물에 대한 이해가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약물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만큼 효과가 강력하지 않았다. 더구나그 강도가 모두 동일하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코카인은 대개 사용을 그만두었을 때 육체적 고통이 유발되지 않는다. 우울증이나 견디기힘든 식욕과 같은 심리적 고통이 심할 수 있지만, 신경안정제 금단현상과 같은 참을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은 없다. 하지만 코카인은 내성을 유발해서 일부 사용자들은 같은 효과를 보려고 점점 더 많은 양을복용한다. 반면 대마는 내성을 크게 유발하지 않지만, 극단적인 경우 사용을 중지하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초조함을 느낀다.
약물이 고통은 사용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중독 개념에 혼란을 초래한 이유는 또 있다. 니코틴과 마찬가지로 약물에 반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처음 사용했을 때, 오랫동안 사용했을 때 모두 마찬가지다. 같은 약물에도 어떤 사람은 자제력을잃는 반면, 다른 사람은 아주 가벼운 영향만 받는다. 두 사람이 함께 술자리에 간 경우를 생각해 보라.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한 사람은 탁자 위에서 춤을 추고 다른 한 사람은 뒷정리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보지 않는가. 약물의 효과에는 성, 민족, 체중, 신체 조건이 모두 동시에 작용한다. 이는 전문가들을 당황스럽게 할 뿐 아니라 온전히 물질 그 자체를 탓할 수 없게 한다. 중독되는 약물addictive drug 이라는 용어가 중독성이 있는 약물drug with addictive qualities로 바뀐 것도 그래서다. - P50

"중독은 매우 복잡한 행위로 한 가지 요소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글레이저가 내게 말했다. "약물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체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며 그 사람이 속한 사회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처한 경제적 현실로 인해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중독은 이 모든 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 결정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큰 영향을 발휘합니다." - P55

나중에 밝혀진 것처럼 이런 음식은 피험자들이 아주 좋아하는것이어서 실제로 먹을 필요도 없었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냄새를 맡고, 혀로 조금 맛보는 것만으로도 쾌락과 관련 있다고 밝혀진 뇌의 특정 부분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음식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생성된 이미지들은 다른 측면에서도 아주 놀라웠다. 코카인을투여한 뇌의 사진과 거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뇌의 같은 부분에서 선명한 빨간색과 노란색 불이 켜졌다. 먹고 있는것이 각성제인지 치즈버거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두 경우 모두 뇌는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고 더 많이 달라는같은 반응을 보였다. - P69

메릴랜드주 베세즈다에 있는 약물남용연구소에서 만난 볼코는이런 약물들이 뇌를 아주 강력하게 자극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약물은 남용하면 굉장히 위험하다는 내면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뇌를 극도로 흥분시킬 필요가 있다. 약물을 불법적으로 입수하여 체포당할 위험 또는 너무 강하게 농축되었거나 오염된 것을 먹고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적지 않은 위험을 극복하려면, 약물은 초기 단계에서 느끼는 갈망을극대화하고 사용에 따른 보상으로 엄청나게 큰 쾌락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약물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가공식품은 열광하기에 아주 쉬운 물질이다. 가공식품은 값싸고 빠르며 구매하기 쉽고, 적어도 건강이나 사회적 안녕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고려하면 대체로 안전하다. 우리는 가공식품의 장기적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음식을 먹게 하는 데는 뇌에 충격을 가할 필요도 없다. 적당한 순간에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음식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반복의 힘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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