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도 규모도 알 수 없는 노커들이 염병처럼 그 수를 늘려가며 창궐하는 동안, 오랜 방어와 긴장에 피로를 호소하다 더이상은 참을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들 또한 생겨나기 마련이기에, 폭행 시비를 가리려다가 말을 잃는 증상을 보이게 된 피해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만다. 수많은 사람들이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일자리를 잃고 사업체들도 인력난에 시달린다. 산업의 유지 근간이 흔들리는 건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그런데 말이 언제 소통의 도구이긴 했던가? 우리는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없으며 말은 이해보다는 오히려 오해의 도구가 아니었나? 아무에게 돌을 던지거나 아무의 목을 매달아 까마귀밥으로 걸어놓는 무기의 일종이며, 특히 현란한 말이야말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입속의 혀처럼 부리다 그 가치와 흥미를 상실했다고 판단하는 즉시 도륙내기를 일삼던 독재자들의 필수 재능 아닌가? 이제 와서 소박하게 소통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같은 자막을 내보내며 구독자에게 흥분한 모습을 보인 유튜버는 그 이후 신규 콘텐츠를 올리지않았고, 동영상에 댓글을 남긴 여러 명의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역시 문 닫기 직전의 감성포차에서 술값 결제 도중 노커에게 당했다고 한다. 그는 술에 약간 취해 있었고,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자를 참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 P88

진짜 노커와 가짜 노커의 구별이 무의미해진다. 어차피 모두가 노커가 되어버리거나 될 잠재력을 갖고 있는 거라면, 인내심과 포용력 따위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이 사람들사이로 퍼져나간다. 그와 함께 서로를 지칭할 수 있고 서로를 잇는 명사, 대명사, 돈독한 관계나 적절한 거리와 위치를 규정할 수있는 조사, 행동을 그나마 규정하고 제어할 수 있던 형용사와 동사들의 체계가 무너진다. - P90

 손님은 즉흥적인 기분으로 몇 자 끼적일 수 있다 치고, 키퍼는 업무 지침상 답장을 해선 안 될 터다. 객실 바닥에 흔적을 남기지 않음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지우도록 요구받는 이들. 누구나 그들이 보이지만 안 보이는 척하며, 그들은 거울에 튄 한 점의 물때나 타일에 떨어진 한 올의 머리카락과 다르지 않은 범주로 취급된다. 심지어 청소 카트를 밀고 있지 않을 때에도 화물용 엘리베이터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고객과 밀착 접촉하지 않더라도 그의 몸 어딘가에 남아 있을 세균이고객에게 전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을, 그런 규정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영혼을 걸고 완벽하게 오염을 제거하는 행위의 반복도 모자라 그 스스로의 기척까지 감추어야 하는 이가, 객실 화장대에 자필 메모 같은 큰 흔적을 남겨둔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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