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의 일생, 그의 경력, 그의 명성, 심지어 자존심까지 갑자기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게된 것은 1953년 크리스마스 나흘 전의 일이었다. 그는 워싱턴 D.C.의 조지타운 지역에 위치한 자신의 변호사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그는 운명적인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정부 자문 위원회로부터 사직해야만 할까? 아니면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 의장 루이스 스트라우스(Lewis Strauss)가 그날 오후 느닷없이 전해 준 편지에 담긴 혐의들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편이 좋을까? 스트라우스의편지는 오펜하이머의 배경과 그동안의 정책 제안들을 검토해 본 결과,
그가 보안 위험 인물로 지정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편지는 또한 34건의 협의 사항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말도 안 되는 소문에 근거한 것으로부터("당신이 1940년에 중국 인민 우호회(Friends of the ChinesePeople)의 후원자 명단에 올라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정치적인 공격에 이르기까지 ("1949년 가을부터 당신은 수소 폭탄의 개발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다양한 혐의 사항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 P11

깜짝 놀란 상원 의원이 "도시 어딘가에 숨겨진 원자 폭탄을 탐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구를 사용하지요?"라고 묻자, 오펜하이머는 "드라이버."(모든 상자와 서류 가방을 열어 보기 위한 도구)라고 짧게 대답했다. 핵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어책은 핵무기 자체를 없애는 것이었다.
오펜하이머의 경고는 무시되었고, 궁극적으로 그는 침묵할 수밖에없었다. 반항적인 그리스의 신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류에게 주었듯이, 오펜하이머는 우리에게 핵이라는 불을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통제하려고 했을 때, 그가 그것의 끔찍한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려고 했을 때, 권력자들은 제우스처럼 분노에 차서 그에게 벌을 내렸다.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의 청문회 위원회에서 반대 의견을 피력했던 워드 에번스(Ward Evans)가 썼듯이, 오펜하이머에게서 비밀 취급 인가를 빼앗은 것은 "이 나라의 오명"이 아닐 수 없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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