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먼 옛날 아일랜드에도 살기 좋은 때가 있었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지만 누군가는 좋았던 시절이.......
- 아일랜드 민담에 흔히 쓰이던 첫머리

1845년 아일랜드에 재앙이 덮쳤다. 까닭 모를 전염병이 돌아 감자농사를 망쳤다. 감자는 아일랜드 농촌 주민에게 사실상 유일한 식량이었다. 그때부터 5년 동안 감자 역병은 연거푸 발생했다. 이때를 가리켜 오늘날에는 ‘아일랜드 대기근‘이라고 부른다. 이 대기근 때 굶주림과 질병으로 100만 명이 죽었다. 대대로 살아온 고국을 등지고 미국, 캐나다, 영국으로 이주한 사람도 200만 명이 넘었다. 대기근피해자는 대부분 아일랜드 인구의 80퍼센트를 차지한 가톨릭교도였다. 그들은 대부분 몹시 가난하게 살았다. 대부분 아일랜드어를 썼는데, 말만 할 줄 알았지 읽고 쓸 줄은 몰랐다. - P7

영국 정부가 굳게 믿은 자유방임주의란 상품을 팔든 무역을 하든. 정부가 자유 시장에 개입해서도 안 되고 경제적 통제력을 행사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이 하는 사업에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끼어드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라는 주의였다. 영국이부강한 나라가 된 것도, 영국 국민이 저마다 부를 쌓은 것도 바로 그냥 내버려 두는‘ 경제 정책 덕분이라는 게 영국 정부의 입장이었다.
영국 정부가 자유방임주의 원칙에서 예외를 허용한 것은 딱 하나, 곡물법Corn Laws으로 통하는 일련의 법률들이었다. 미국에서는콘corn이 옥수수를 가리키지만,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귀리, 밀, 보리, 호밀 등과 같은 곡물을 뜻한다. 영국 정부는 국내산곡물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외국에서 들여오는 곡물에 높은 관세를 매겼다. 이를테면 수입 곡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정책으로 농민층과 상인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었던 것이다.
로버트 필 총리도 초보 정치인 시절에는 곡물법에 찬성했으나세월이 흐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곡물법이 영국 경제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입 곡물에 높은 세금을 매기는 곡물법을 폐기하면, 노동자를 비롯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식량 구하기가 한결 쉬워질 줄로 믿은 것이다. 농촌 인구의상당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노동자가 곡물을 구입하기 쉬워질수록,
영국 경제가 더욱 탄탄하게 성장하리라고 보았다. 경제가 성장하면그만큼 구빈원과 같은 정부 구호 사업에 기대는 빈민이 훨씬 줄어들터였다. - P62

그러나 아일랜드 들판에는 곡식이 가득했다. 밀, 귀리, 보리, 호밀 등 가루를 내어 빵이며 죽이며 케이크로 만들어 먹을 곡식들이 자라고 있었다. 여기에서 대기근의 아주 커다란 모순 한 가지를 깨닫게된다. 아일랜드 백성이 주식으로 삼는 감자 농사를 망쳐 굶주림에 시달리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 노동자들은 입에 댈 수도 없는 곡식들이영글고 있었다. 그것은 지주와 농민 것이었다. 굶주린 노동자들은 그저 곡식을 베고 털고 빻아 수레에 싣고 시장으로 내가는 것만 지켜보았다. 그 곡식은 영국과 다른 나라에 팔 것들이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대기근이 두 해째로 접어든 그해 아일랜드에서 생산된 곡식, 가축, 모직, 아마가 아일랜드인을 먹이고 입힐 만큼 넉넉했다고. 다른 사학자들은 이런 주장에 반박한다. 굶주린 사람이 워낙 많아서 수출하지 않았더라도 그 식량으로는 다 먹여 살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게다가 대기근 시기에 수출한것보다 수입한 곡물이 네 배나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수치까지제시한다.
역사학자들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든 상관없이, 이 진실은 변함없이 남는다. 아일랜드 백성은 굶주리고 있는데, 그땅에서 난 곡식과 가축을 한가득 실은 배가 영국과 다른 나라의 시장으로 떠났다는 사실이다. 윌리엄 파월의 말을 빌리면, 그 사실이 뜻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네, 아일랜드 대기근은 인재였습니다. 우리네 지배자가 이 땅에서 난 식량을 영국으로 싣고 가도록 주선했고, 이 땅 백성은 굶주리도록 내팽개친 겁니다."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나라에서 식량을 수출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가장 가혹한 현실 한 가지는 기근은 식량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근 문제는 식량이용권을 누가 갖느냐에 달려 있다. 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아일랜드인을 굶주리게 한 것은 아니었다. 지주, 농민, 도매상, 소매상의 생업에 간섭할 법률을 제정할 뜻이 없었을 따름이다. 그런 법률을 만든다는 것은 자유방임주의 원칙을 어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지주와 농민도 곡물을 영국과 외국 시장에 수출했다. 자신들이 영리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P79

영양가 높은 감자를 먹지 못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양실조에걸렸다. 따라서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저항력도 떨어졌다. 아일랜드 대기근 시기에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 굶주려서 죽은 사람보다 어림잡아 열 배나 더 많다. 정확한 수치는 영영 알 길이 없다. 일가족전체가 가뭇없이 사라졌는가 하면 이름 없는 무덤에 수천 명씩 무더기로 묻히기도 한 탓이다. 코크 주 서부에 사는 한 농민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묻힌 곳을 들으면, 감히 밤에 문밖을 나설 엄두도 못낼 겁니다."
비위생적인 음식과 오염된 물을 먹고 생활환경마저 불결한 탓에질병은 널리 퍼졌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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