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의 소련 공산당 제22차 대회가 1980년까지 "••• 전국민에게 남아돌아갈 만큼의 재화가 보장되는 •••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시킨다는 야심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였던 것을 상기해보면, 오늘에 와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소련 사회의 위기징후로서 "경제성장의 둔화, 생산의 정체, 품질의 저하, 과학기술의 낙후, 주택·식료품·교통·보건의료·교육 등 점증하는 생활수요 해결의 실패" 등등을 열거하면서 "사태가 더이상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다"는 고백을 하기에 이른 것은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변화라고할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주된 원인 중의 하나가 ‘민주주의의 결여‘에 있다는 사실, 즉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의 필연적인 귀결인 관료적 부패와 비능률의 폐해에 있다고 하는 사실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것이 개혁 (주로 경제개혁)과 더불어 개방 (주로정치적 민주화)이 함께 주창되고 있는 이유다. 필자는 달포 전에 소련을 다녀온 일이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많은 시민들이 스딸린 이래의 자의적인 공권력행사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면서 이른바 ‘사회주의적 법치주의‘와 인권보장제도의 확립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 P246

그러나 기존체제의 상층부로부터 추진되는 ‘개혁 개방‘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밑으로부터의 점증하는 요구와 관련하여 체제동요의 불안과 긴장을 조성하게 된다는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소련의 경우에도 예컨대 완전한 자유경선이나 복수정당제의 실현과 같은 것은 아직 일정에 올라 있지않다. 복수정당제로의 첫발걸음을 내디딘 폴란드의 이번 선거결과가 공산당의 참패로 나타난 것은 지금까지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 통용되어온 ‘공산당=무산계급의 의지를 대변하는 전위당‘이라는 등식과 이 등식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정당화 논리를 여지없이 뒤흔들고 있다. 바로 이같은 체제위기사태에대한 우려가 아직까지 중국의 최고권력층에 남아 있는 ‘혁명 1세대‘의 원로들로하여금 ‘개혁‘은 추진하면서도 ‘개방‘만은 한사코 저지하려고 드는 역설의 함정에 빠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문화대혁명 당시 주자파(走資派)로 낙인찍혔던 등소평 (鄧小平)이 오늘날 자유와 민주를 요구하는 젊은 세대를 향하여 ‘체제를 전복하고 부르조아공화국을 수립하려는 폭도들" 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은 역사의 희롱치고도 너무 짓궂다. - P247

그런데도 ‘불고지죄‘라는 이름의 서슬 푸른 ‘실정법‘은 우리에게 이 ‘차마 할수 없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실정법에 위배된다면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김수환 추기경의 담화는 우리를 참으로 착잡하게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격적 고백에 대하여 처벌이두려워 밀고를 할 수는 없었다"고 하는 그분의 술회를 듣고 그르다고 탓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더러 말하라고 한다면, 거꾸로 추기경이 신도를 밀고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라의 바탕을 뒤흔드는 큰 변고라고 하고 싶다. 아무도 그르다고 생각지 않는 일이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그 ‘실정법‘이 잘못되었거나 최소한 그 해석. 적용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P249

어떤 경우에라도 친절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도록. 어떤 경우에도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진 자의 우월감을 나타내거나 상대방을 위축시키거나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다른 것은 다 못하더라도 이것만 해낼 수 있다면 더이상 좋을 수가 없겠다.
만약 친절히 해서 일이 안 된다는 것을 내가 마침내 승인하게 되는 일이 만의일이라도 생긴다면 그것은 나에게 더할 수 없는 심대한 패배가 될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면, 혹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인간성에 거는 우리의 모든 신뢰와 희망은 대체 어떻게될 것인가. - P267

정상적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좀 고생한 편‘이라는 조변호사는 "찍소리도 못하고 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세상에서" 노동자나 징역 사는 사람 등 고통겪는 사람들 근처에 가서 시대적 고통에 대해서 냄새라도 맡은 것이 다행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끝냈다.
"일종의 허영심일지 모르겠지만, 그 시대에 지금도 계속되는데 아주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덤벙덤벙하며 살지 않았다는 데 대해서 위안을 느낍니다."
3명의 변호사와 함께 쓰는 그의 사무소 입구에는 ‘시민공익법률사무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지만 명함에는 그 이름이 빠져 있다. 그 간판에 대해서, 돈 없이오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부담 없이 오라고 붙여놓았다고 밝히는  - P312

"일제 때부터 지금까지 법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의구심을 주고, 사람들이 법에 가까이 가는 것을 꺼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실정법은 일제 때에 들어오게됐는데 그때에 법이 국민에 봉사하는 도구로 비친 것이 아니고 통치하고 억압하고 길들이는 도구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법조문을 비롯하여 법과관계된 글들이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도록 씌어 있는 것도 사람들이 법을 멀리하고 싶어하고 두려운 존재로 여기도록 하는 이유입니다."
예컨대 판결문에다가 "오른손 주먹으로 얼굴을 한 대 때리고 왼쪽 발로 한번 걷어차서 땅에 넘어지게 했다"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한자로 어렵게 "우수로 면상을 일회 가격한 후 좌족으로 일축하여 지상에 전도케 했다"는 식으로썼고 지금도 종종 그렇게 쓰고 있음이 그의 말을 증명한다. 문자의 권위주의와문자의 특권의식이 아직 법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잘못된 생각을 고치고 다듬어서 많은 사람들을 법에 가까이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조영래씨는 하고있다.
그래서 그는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부대끼며 느꼈던 가장 절실한 문제로 ‘법의 생활화‘를 든다. 말하자면 전문가가 독점하고 있는 법률에 관한 지식이좀더 보편화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길을 가는 데 지도가 필요한 것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데서도 법이 뭐라는것은 대충 알고 있어야지요. 그런 인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준법‘만 강요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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