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으로 하면 다음부터는 한번 권력을 잡은 사람은 절대로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고 들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새 시대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이런 소심한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도리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철저히 파헤쳐놓아야만 다음부터는 권력을 잡은 사람들도 절대로 이런 비리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될 것 아닌가."
그렇다. 권력자들에게 국민을 깔보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화이다. 지금 이 시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구시대의 비리 그중에서도 특히 권력 핵심부에서 저질러진 온갖 엄청난 비리에 대하여 철저히 진상을 밝혀내고 법의 제재를 가하는 일이다.
전경환씨가 불법적인 수단으로 모은 재산의 규모가 79억원뿐이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더욱이 전두환씨의 친인척들 중에서 부정한 수단으로 거액의 치부를 한 사람이 전경환씨 한 사람뿐이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밝혀야 한다. 모든 국민들이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그대로덮어두려고만 한다면 새 정부 또한 구시대를 올바로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는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것은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예우‘ 때문에 법을 굽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전두환씨의 사퇴성명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그 자체로써 평가되어야 할 일이다. 나는 새 정부가 행여라도 전두환씨의 사퇴성명을 받아내는 대가로 그의 일족의 비리를 더이상 추궁하지 않고 눈감아주기로 하는 식의 부도덕한 암거래를 한 일이 없었기를 희망한다. - P187

‘인권‘이라는 일반개념 아래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권리가 유형화되어 제시되고 그 중 특히 어느 것이 강조되는가 하는 것은 당대의 억압의 역사적·사회적 특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권에 관한 각종 선언은 각기 당대의 민중적 고통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컨대 봉건적 신분질서의 질곡에 대응하여 거주. 이전의 자유와 직업선택의 권리가 선포되고 중세교회의 독단이나 전체주의적 교조의 획일적 지배가 인간성의 다양한 요구를 억압하고 사람들의 인격적 통일성을 해체시키는 파괴적 폭력으로 작용하는 곳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사상 . 양심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싹튼다. 근로대중이급격한 산업화과정의 진전을 위한 한낱 소모품으로 희생되고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그들 자신과 그 후손들의 인간적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아니라 타인의 자본축적을 위한 밑거름으로 되고, 말뿐인 곳에서는 그같은 ‘소외된 노동‘의 아픔을 씻어내기 위한 노동운동의 자유와 노동자들의 제반 권리의 확보가 인권문•제의 초점으로 부각되게 마련이고, 소수민족· 소수인종· 소수종교에 대한 차별이 현저한 곳에서는 동등권의 요구가 최대의 인권문제로 등장하게 되기도 한다. - P191

이처럼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의 현실은 구조적으로 우리의 인권에 대한 적대적·파괴적인 현실이었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모든 노력은 온갖 참혹한 인권탄압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북괴위협‘이라는 한마디는 정치적 반대의 자유를 일시에 얼어붙게 하는 마술의 주문(呪文)이었고 ‘고무·찬양‘ 또는 ‘이적행위‘의 서슬 푸른 위협은 학문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언제라도 권력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 묶어둘 수 있는 족쇄가 되기에 충분하였으며, ‘좌경·용공‘이라는 딱지는 노동자들을 비롯한 기층민중들의 자주적 단결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철통같이 봉쇄하는 봉인이되기에 충분하였다. 그 속에서 죽음과 같은 침묵은 계속되었고 이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전태일의 분신, 박종철과 권인숙의 희생, 4.19와 광주시민항쟁의 유혈 등이 상징하는 바와 같은 숱한 비극적 영웅들의 극한적인 헌신과 희생을 앞장세운 우리 국민의 장구하고 끈질긴 노력이 필요했다.
긴급조치와 광주학살의 역사적 반동기에 그 정점에 이르렀던 반인권의 물결은 1987년의 6월혁명을 분수령으로 하여 결정적으로 퇴조했다.
이제 우리는 인권을 위한 ‘전략적 공세‘의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우리들의 시민적·정치적 자유와 사회적·경제적 권리의 모든 영역에 걸쳐 인간다운 존엄에 어울리는 삶의 수준을 확보하기 위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하고도 신속하게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최우선적인 비중을 갖는 전략적 고지는 무엇일까?
‘언론의 자유‘, 그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의 존재야말로 인권의 승리를 약속하는 가장 확실한 담보다.
(한겨레신문, 1988. 5. 15) - P192

다음 ‘평화적 정부이양을 위한 공로‘를 참작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나는 이것을 전적으로 그르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역사에 가정을 달 수 없다고는하지만, 만약 전씨가 작년 6월에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거부하고 끝내 버티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를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버틸 수 있었는데도 자발적으로 내놓았건, 버틸 수 없어 부득이 내놓았건 간에 6·29선언으로 직선제 개헌과 전씨의 퇴임이 기정사실화되었을 때 많은 국민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은 사실이다. 남의 물건을 강제로 탈취해가서 실컷 써먹을 대로 써먹다가 제자리에 갖다놓은 것이 무엇이 그리 칭찬받을 일이냐고 말할 수도있겠으나, 어쨌건 끝까지 안 돌려주려고 버티다가 쌍방간에 불필요한 희생을•초래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전혀 참작하지 않을 수는 없을지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공로‘라고까지 말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지 않은가. - P196

광주사태 문제의 경우에는 특히 사정이 나쁘다. 이 문제는 성질상 군 내부의일부 인사들이 불가피하게 연루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고, 집권세력은 이 문제를 파헤치는 것이 군을 ‘모욕‘하고 ‘자극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양대 선거를 거치면서 ‘지역감정의 악화‘라는 현상이 초래되는 과정에서 실로 통분스럽게도 광주사태 문제마저도 마치 하나의 ‘지역문제인 것처럼 비쳐지게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고, 집권세력이 이러한 취약점을십분 활용하여 국론을 양분시키려고 할 가능성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평민당과 민주당이 서로 광주사태특위의 위원장을 맡기를 회피하는 지경에 이른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광주문제도 그렇긴 하지만, 제5공화국 비리문제는 구정권의 최고책임자였던 전두환 전대통령의 책임문제로 곧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일촉즉발의 긴박감과같은 것을 자아내고 있다. 전두환씨 개인의 비리는 자연인인 그 한 사람의 문제로 그칠 수 있을지 모르나, 구체제의 권위의 상징인 그를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려세운다는 것은 구체제 가담세력 전체에게 마치 이제껏 그들을 감싸고 있던 보호방벽이 일시에 무너지는 듯한 충격적인 사태로 받아들여지게 될 수 있다. - P207

우리는 이러한 기록을 용납할 수가 없다. 민주화니 새 시대니 하는 거창한구호를 말하기 이전에,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정의감을 짓밟고 최소한의 양식과 이성마저도 여지없이 조롱하는 그같은 범죄적인 역사책에 우리 후손들의 순결한 심성이 더럽혀지는 사태를 결단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광주사태와 제5공화국 비리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정치보복‘을 원하는가? 그렇지 않다. 거듭 밝히거니와 우리가 원하는 것은무엇보다도 ‘참회‘이다. 정치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과 정의를 굽힌다는것과 같은 뜻이 될 수는 없고, 더욱이 ‘참회‘마저도 면제한다는 뜻이 될 수는결코 없다. 만약 모든 진실이 숨김없이 밝혀져 책임소재가 분명히 되고 거기에서 우리가 충분한 역사적 교훈을 얻게 된다면, 누가 되었든 자신의 잘못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고 통렬히 뉘우치는 사람에 대하여는 법과 정의의 질서가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얼마든지 관대한 처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상조사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그저 누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누가 누구에 대하여 유감스럽다는 것인지조차 분명하지 아니한, 어정쩡한 ‘유감의 표시‘만으로 사태가 마무리될 수는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철저한 진상조사‘는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요구이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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