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그렇지 않다. 진화에는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없다. 먼 미래의 목표, 선택의 기준이 될 궁극적인완벽함 따위는 없다.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 인간이라는 믿음은터무니없는 인간 허영심의 산물에 불과하다. 실제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은 항상 단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개체의 생존이거나 아니면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성공적인 번식이다. 수백만 년이 흐른 뒤에 뒤돌아보았을 때 그 과정이 어떤 머나먼 목표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간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단기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여러 세대에 걸친 우연적인 결과이다. ‘시계‘, 즉 누적적인 자연선택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 P96

 유전자의 성질은 그들이 자리 잡은 신체의 발생 과정에 참여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신체의 성공 여부에 따라 다음 세대로 전해질 가능성이 영향을 받는다. 컴퓨터모델에서 발생과 번식이라는 2개의 과정을 2개의 독립된 프로그램으로작성하는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번식이 발생을 통해서 유전자의 값을 다음 세대로 전하며 또한 발생 과정 동안 성장 규칙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제외하면 두 과정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 발생은 절대로 유전자값을 번식에 되돌려 주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라마르크주의에 해당할 것이다. - P105

2개의 프로그램에 각각의 기준들을 정리하고, 거기에 발생과 번식이라고 표시를 하자. 번식은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과 함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물려준다. 발생은 번식을 통해 주어진 유전자들을 받아서 그림을 그리는 동작으로 번역한 다음 컴퓨터 화면상에 신체의 그림을 나타낸다. 이제 2개의 프로그램을 진화라는 더 큰 프로그램에 합칠 때가되었다.
진화는 기본적으로 번식의 끝없는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세대에서 번식은 앞 세대로부터 유전자들을 받아 무작위적이며 조그만 실수인 돌연변이와 함께 다음 세대로 물려준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하나의 유전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값에 단순히 +1 또는 -1을 더하는 것이다. 이 말은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한 번에 하나씩 작은 변화들이 쌓이게 되고 결국 유전적 변이의 총량이 원래 조상과 비교하여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는 말이다. 비록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축적되는 변화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한 세대의 자손은 무작위적인 방향으로 부모와 달라진다. 그러나 그 자손들 중 어느 것이 선택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인지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다원의 자연선택 이론이 도입될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선택의 기준은 유전자들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들이 발생을 통해 영향을 미친 신체의 형태다.
각각의 세대에서 유전자들은 재생산될 뿐만 아니라 발생으로 넘겨진다. 발생은 고유의 엄격한 규칙에 따라 화면 위에 적절한 신체의 모양을그린다. 매 세대의 ‘자손들‘ (즉 다음 세대의 개체들) 전체가 화면에 나타난다. 자손들 모두는 같은 부모에서 나온 돌연변이들로 부모와 유전자하나가 다르다. 이러한 매우 높은 돌연변이율은 컴퓨터 모델에서나 볼수 있는 것으로 명백히 비생물적인 양상이다. 실제 세계에서 하나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킬 확률은 대개 100만분의 1보다 작다. - P106

컴퓨터를 가지고 재미있게 자연선택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는 로코코 양식 따위나 시각적으로 정의된 다른 모든 성질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려야 한다. 대신 선택적인 죽음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바이오모프들은 컴퓨터 속에 조성된 혹독한 환경 조건과상호 작용을 해야 한다. 그것들이 가진 형태의 어떤 특징이 그 환경 조건에서 그것들의 생과 사를 결정할 것이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그 혹독한 환경 조건에는 다른 바이오모프, 즉 ‘포식자‘, ‘먹이‘, ‘기생체‘, ‘경쟁자‘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먹이가 되는 바이오모프의특정한 모양은 특정한 형태의 포식자 바이오모프에 붙잡힐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한 판단 기준은 프로그래머가 설정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 형태의 바이오모프들이 저절로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판단 기준들도 저절로 생겨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컴퓨터에서 일어나는 진화는 진정으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진화를 닮아 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서 생겨나는 조건들은 결국 먹이와 포식자 모두가 스스로를 강화하는 ‘군비 확장 경쟁에 접근할 것이기 때문이다. - P113

이것이 바이오모프의 나라를 빌려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독자들이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9개의 유전자를 가진 바이오모프가 아닌, 각각 수만 개의 유전자를 가진 세포 수십억 개로 이루어진, 살과 피를 가진 동물들로 가득 찬 수학적인 공간이 있다. 이것은 바이오모프의 공간이 아니라 실제의 유전자공간이다. 지구에서 과거에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동물들은 이론적으로 존재가 가능한 수많은 동물들 중 작은 소집단에 불과하다. 이 실제동물들은 유전자 공간을 통과하는 아주 적은 수의 진화 경로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그 공간에 있는 다른 많은 이론적인 경로를 통하면 상상을초월한 괴물들이 나오게 된다. 실제 동물들은 그 가상의 괴물들 주위 여기저기에 점으로 표시되며, 각각은 이 유전자 초공간에서 고유의 위치를 차지한다. 각각의 실제 동물들은 이웃들이라는 작은 집단으로 둘러싸인다. 그 이웃들의 대부분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지만 몇몇은 그들의조상이거나 자손이거나 사촌이다.
이 거대한 수학적인 공간의 어느 곳에 인간과 하이에나, 아메바와 개미핥기, 편형동물과 오징어, 도도새(인도양 모리셔스 섬에서 살았던 날지못하는 새로 지금은 멸종되었다. 옮긴이)와 공룡이 자리 잡고 있다. 만약 유전공학이 고도로 발달하여 우리가 생물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다룰 수있다면, 이론적으로는 동물 공간의 한 점에서 다른 어떤 점으로든 자유롭게 옮겨 갈 수 있다. 시작하는 점이 어디든 우리는 미로를 찾아 헤매어 도도새, 티라노사우루스, 삼엽충 등을 다시 만들 수 있다. 단지 어떤 유전자를 수선해야 하는지, 그리고 염색체의 어떤 부분을 복제하고 뒤집고 삭제해야 하는지 알기만 한다면 말이다. 인류가 그 정도로 충분히유전공학에 능통하게 될지는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 친애하는 멸종된 동물들은 그 거대한 유전자 초공간 속에 있는 그들만의 고유한 장소에 언제까지나 잠복해 있으면서 (우리가 미로 속에 있는 정확한 경로를 찾아항해할 수 있는 지식을 갖게 되었을 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비둘기를 선택적으로 번식시킴으로써 도도새를 정확하게 재창조하는진화를 이루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실험을 완성하기 위해서는우리 인간이 100만 년 동안 살아남아야 하지만...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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