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살면서 느끼는 황홀함은 모두 내면에서 나올 거란다." 발레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에 오기 전까지는. 마그다 언니는 엄마가 들어간 건물 꼭대기에 있는 굴뚝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영혼은 절대 죽지 않는다." 마그다 언니가 말한다. 마그다 언니는 위로의 말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무 감각이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이미 벌어진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가 없다. 엄마가 화염 속에서 불타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유를 물을 수도 없다. 심지어 슬퍼할 수도 없다. 지금은 아직 안 된다. 다음 순간, 다음 호흡을 위해 온 신경을기울여야 한다. 나는 언니가 여기에 있는 한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그림자처럼 언니 옆에 찰싹 붙어서 기필코 살아남을 것이다. - P77

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을 언니에게 말한다.
"언니의 눈, 눈이 매우 아름다워. 머리카락이 가리고 있을 땐 미처알지 못했어." 내가 언니에게 말한다. 이 순간,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된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잃은 것에 관심을 기울일지 아니면 아직 가지고 있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지. - P80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첫 몇 주 동안 나는 생존의 규칙들을 배운다. 만약 당신이 보초병으로부터 빵 한 조각을 훔칠 수 있다면 당신은 영웅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수감자로부터 빵을 훔친다면 당신은 망신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에서는 경쟁과 지배가 아무 소용이 없다.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욕구를 초월한 후 자신의 외부에 있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에 헌신해야한다. 내게 그 어떤 사람은 마그다 언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은 미래에 자유롭게 됐을 때 에릭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살아남기위해서 우리는 내면의 세계, 즉 안식처를 구축해야 한다. 잠을 자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말이다. 나는 강제수용되기 전의 자기 사진을 어렵게 숨겨서 들여온 한 동료 수감자를 기억한다. 사진 속에서 그녀는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사진을 보면서 그녀는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그리고 그 사람이 여전히 죽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을스스로 상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의식적 사고는 그녀에게 삶의 의지를 지킬 수 있는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 P85

나는 갑자기 ‘치명적인 Deadly‘과 ‘죽이고 있는Deadening, 두 표현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 생각해본다. 아우슈비츠는 둘 모두에 해당한다. 굴뚝들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또 피어오른다. 어떠한 순간도 마지막 순간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신경 쓸 이유가 뭐란 말인가?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리고 만약에 이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 지구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이라 하더라도, 그 마지막 순간을 체념과 패배에낭비해야만 할까? 이미 죽은 사람처럼 마지막 순간을 보내야 할까?
"이 줄이 무슨 줄인지는 절대 알 수 없어." 내가 앞에 있는 여자아이에게 말한다. 미지의 상황이 우리의 내면을 공포로 파괴하는 대신 우리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고나서 나는 마그다 언니를 쳐다본다. 언니는 다른 줄에 서도록 선별되었다. 죽으러 보내지더라도, 일을 하러 보내지더라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하기 시작한 것처럼 나를 다른 수용소로 보낸다 하더라도.. 내가 마그다 언니와 함께 계속 있고, 마그다 언니가 나와 함께 계속 있는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일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원래의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운이 좋은 몇 안 되는 수감자들이다. 내가마다 언니를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마그다 언니가 나를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수용소의 운동장은 온통 혼란에 휩싸여 있다. 나는 이 줄들이 무엇을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거라곤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놓여있든, 반드시 ‘마그다 언니와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우리 앞ㅔ 놓인 것이 죽음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 P96

"가스실에서 탈출했더니, 감자껍질 먹다가 죽게 생겼네." 누군가가툭 내뱉고 우리 모두 내면의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깔깔깔 뱉는다. 우리는 내면의 그곳이 아직 존재하는지 미처 몰랐다. 우리는 크게 웃는다. 부상을 입은 독일 군인들에게 수혈하기 위해 강제로 헌혈해야 했을 때 내가 크게 웃었던 것처럼. 나는 팔에 바늘을 꽂고 앉아서 속으로 농담을 던지곤 했다. ‘평화주의자 댄서의 피를 받아서 전쟁에서 꼭 승리하시기를!‘ 나는 생각했다. 나는 팔을 홱 잡아당길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총살을 당할 것이다. 나는 총이나 주먹을 들고 압제자들에게 반항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나만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의 웃음안에 그 힘이 있다. 우리의 동지애, 우리의 명랑함은 아우슈비츠에서 열었던 가슴 대회에서 우승했던 밤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의 수다는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 P100

이제 4월이다. 언덕이 풀로 온통 초록빛이다. 하루하루 해가 길어•진다. 우리가 마을의 외곽을 통과할 때마다 어린아이들이 우리에게 침을 뱉는다. 얼마나 슬픈 일인지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이 우리를 증오하도록 세뇌를 당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내가 어떻게 복수할 건지 알아? 나는 독일인 아이 엄마를 죽일거야. 독일인은 우리 엄마를 죽였어. 그러니까 나는 독일인 아이 엄마를죽일 거야." 마그다 언니가 말한다.
나는 다른 소망이 있다. 나는 우리에게 침을 뱉는 남자아이가 언젠가 자신이 타인을 증오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더러운 유대인들! 벌레들!"이라고 외치는 남자아이•가 나의 복수 판타지 안에서는 장미 꽃다발을 내민다. 남자아이가 말한다. "이제 알아요. 당신을 증오할 이유가 없다는 걸요. 단 하나도요."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며 껴안는다. 하지만 나는 마그다 언니에게 나의 판타지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는다.
- P108

"너" 그가 말한다. 역겨워하는 듯한 목소리다. 나는 두 눈을 감는다. 그가 나를 발로 걷어차기를 기다린다. 나는 그가 나를 총으로 쏘기를 기다린다.
무거운 무언가가 내 발 근처에 떨어진다. 돌인가? 설마 돌로 쳐서죽일 생각인가? 총보다 느린 방식으로?
아니다. 그것은 빵이다. 작은 덩어리의 호밀 흑빵.
"그렇게까지 한걸 보니 배가 몹시 고팠나 보군." 그가 말한다. 나는70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는히틀러가 지배한 12년이라는 시간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선의를 송두리째 없앨 만큼 증오를 충분히 심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의 눈을 쳐다보니 아빠의 눈을 닮았다. 녹색이다. 위안을 주는 눈빛이다.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