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째 오후 네시에 그의 단식은 "그들의 입에서 잘못을 시인하는 한마디의말도 끌어내지 못한 완패"로서의 종말을 맞이한다. 그는 매일 당하는 강제급식이라는 ‘융단폭격‘ 앞에 견디지 못하여 ‘무조건 항복의 백기‘를 내걸고 단식을 중단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자위한다.
"짐승과 싸우는 데 단식투쟁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방법이다."
노신(魯迅)이 봉건적 질곡 아래 짓눌린 인간성의 전형으로서 창조한 인물 아큐(JQ)가 명백한 현실적 패배에 부딪힐 때마다 늘상 비방처럼 애용하던 ‘정신적 승리‘를 통한 탈출의 광경이 여기에서 너무나도 흡사한 모습으로 재현되고있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실로 참담한 감회를 가눌 길이 없다. 우리가 과연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거듭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 곳곳의 수감장소에서 밥을 굶으며 차디찬 벽을 향하고 앉아 있는 우리 젊은이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그보다 더 혹심한 예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극악한 인간적 상황에 내몰려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면벽고행도 面苦行圖)는 우리 시대의 가장 깊숙한 어둠, 가장 쓰라린 치욕, 가장 비통한 고뇌를 보여주는 축도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상황인 것이며 더이상 한시라도 방치되거나 외면되어서는 안 될 절박한 문제인 것이다. - P70

근대 이전 이러한 시대에는 국가가 죄수를 장기간 비싼 밥을 먹여주어가며 일정장소에 가두어놓을 필요가 있으리라고는 거의 상상되지 않았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조말까지만 해도 생명형 (死刑), 태장형 (笞杖刑) 및 유형(流刑) 제도가 형벌제도의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며, 옥 (獄) 이란 것은 형의 집행을 위해 죄수를 일시적으로 구금하기 위한 소박한 고전적 수용제도로서밖에 활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근대 인권사상의 대두와 함께 과거의 형벌사상에 근본적 반성이 제기되었다. 죄수의 육신에 직접적으로 겨누어진 잔학행위로서의 체형은 "형집행자를 범죄자와 방불하게, 재판관을 살인자와 방불하게 만드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범인을 동정과 존경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비판에 봉착하였다. 교육형주의의 주창자인 베카리아는 1764년에 간행된 그의 명저 「범죄와 형벌」에서 중세적인 사형제도를 일컬어 "끔찍한 범죄로서 비난한바로 그 살인행위를 (국가가) 냉혈하고 비정한 모습으로 되풀이하는 짓"이라고격렬히 비난하였다.
그리하여 형벌에 있어서의 야만성을 지양하기 위한 새로운 원리가 고안되었다. 레옹 포셰라는 사람은 1765년에 죄수의 교정 · 교화에 역점을 둔 ‘파리 청소년수용소의 규칙‘을 초안하였고, 마블리라는 사람은 새로운 형벌원리로서
"형벌은 .. 죄수의 신체가 아니라 영혼을 타격하여야 한다"라는 명제를 제시하였다. - P71

사상·표현의 자유, 보도의 자유라는 요청과 프라이버시의 보호라는 요청이 서로 충돌할 때 어느 선에서 조화를 모색할 것인가? 이 점에 관하여 판례법은두 가지 원칙을 발전시켜왔는데 이 두 가지 원칙은 왕왕 중복된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
그 하나는 ‘공공의 이익‘의 원칙인데 이것은 어떤 보도 또는 그에 준하는 활동이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인 국민의 ‘알 권리‘에 봉사하는 것일 경우에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면책사유가 될 수 있다는 원칙이다.
또 한 가지는 ‘저명인‘ (public figure, public character or public personage)의 원칙인데 이에 의하면 어떤 기사 또는 묘사에 의하여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 기사 이전에 이미 사회 일반인으로부터 마땅히 주시받고 알려져야 할 ‘저명인‘이었던 경우에는 그 기사 또는 묘사가 면책될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이름없는 한 회사원의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보도는프라이버시 침해가 될 수 있지만 에드워드 케네디와 그 여비서와의 사적 관계에관한 폭로기사는 프라이버시 침해로부터 면책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의 업적, 명성이나 생활방법에 의해 또는 자기의 행위나 성격에 대해 공중의 흥미를 끌기에 마땅한 직업을 선택한 자는 저명인이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자기가 가진 프라이버시의 권리의 일부를 잃는 것이다."
이것은 코헨 대 막스 사건에서 매콤 판사가 내린 유명한 정의이다 - P85

요컨대 구체적인 경우에 과연 어느 정도까지 ‘보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생활의 비밀에 파고드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함에는 매우 복잡다기한 요인들을 비교형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보도는 ‘공공의 이익‘에 합치하는가? 그 대상인물의 사회적 지위는 얼마나 ‘공적‘인가? 그것은 "보도인가 아니면 사생활에의 부당한 침입인가? 대상인물의 생활태도는 윤리적인가? 그와 대비하여 보도하는 측의 행위는 비윤리성을 현저히 띠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관점에서 부천서사건의 피해자인 권양의 이름과 사진을 게재한 일부신문의 보도가 과연 타당한 것이었는지, 손을 내젓는 사람들의 얼굴에 억지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방영을 하는 「추적 60분」등의 TV보도가 과연 온당한 것인지 하는 문제들이 진지하게 재검토되었으면 한다.
(신문과 방송, 1986.9)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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