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닌 국경이 이동할 때는 이주민이 아닌 난민이 발생하게 된다. 미국의 작가 대니얼 멘델슨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폴란드에서 학교를 다니고 독일에서 결혼하고 소련에서 자녀를 낳고 우크라이나에서 죽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그는 한번도 자기 마을을 떠난 적이 없었다. 이는 1918년 이전에 현재 우크라이나의 리비우나 그근처에서 태어나 1990년대까지 살았고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 P340

국제연맹은 난민 대상자를 확대하여 튀르키예에서 피신한 아르메니아와 아시리아인들도 지원했지만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발생한 대규모 난민 사태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1950년에 유엔에 의해 난민고등판무관의 역할이 승격되었지만 이들의 업무역시 유럽으로만 한정되어 있었으며 난민으로 보호받을 자격에 대해서도 제한된 규정에 묶여 있었다. 오늘날에도 난민의 정의는 여전히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두려움‘에 근거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가난, 기아, 기후 변화 또는 자연재해 때문에 고국을 떠나는 이주민은 난민으로 간주되지 않으므로 보호를 받기 힘들다. - P341

허가를 받거나 잗지 않거나 유럽인들의 이주가 계속되기는 했지만 북아메리카 내부의 인구 이동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 대규모 이주는 새로운 이민 제한 조처로 인한 노동력 부족에따른 연쇄 반응이었다. 매디슨 그랜트와 앨버트 존슨 같은 백인 (그리고 북유럽인) 우월주의자들이 고안한 반이민법은 뜻하지 않게 새로운 비유럽인의 이주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1920년대에 약 45만 명의 멕시코인들이 노동 시장의 요구에 따라 국경을 넘었고 주로 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의 과일 농장과 통조림 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나가장 중요한 이주는 수백만 명의 미국 흑인들이 과거에 노예제도가있었던 남부 지역을 벗어나 북부의 대도시로 이주하고 그중 소수는 더 멀리까지 여행하게 된 것으로, 이는 흑인 대이동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흑인 대이동이 미국을 재편하는 데 미친 영향의 규모와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에 대해 유명한 역사가인이사벨 윌커슨Isabel Wilkerson의 말을 빌자면 ‘그것이 닿은 모든 도시의사회적·정치적 질서를 개조한 거대하고 주도자 없는 운동‘이었다. 흑인 대이동이 한창이던 1925년 미국 흑인 철학자 알랭 로크 Alain Locke는 흑인 대이동이 ‘시골에서 도시로 그리고 중세 미국에서 현대 미국으로의 계획적 도피‘라고 했다. 또한 그것은 차별과 린치, 빈곤, 아직해결되지 않은 노예제도와 남북전쟁의 유산으로부터의 도피였다. - P365

할렘은 유럽 이민자들의 근거지였지만 그들은 점차 더 시내쪽으로 아니면 아예 뉴욕 시 밖으로 이동했고, 1920년대 즈음 할렘의 중심부에는 흑인들이 살게 되었으며, 흑인 문화를 대표하는 장소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바하마 혈통으로 플로리다에서 이주한역사가 제임스 웰던 존슨 James Weldon Johnson은 할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니그로 관광객, 행락객, 호기심 많은 사람, 모험가, 야망가, 재능 있는사람을 위한 위대한 메카다. 그 매력은 카리브 해의 섬부터 아프리카까지 뚫고 들어갔다.

할렘 르네상스의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남부에서 이주해온 이들이었다. 그러나 존슨이 할렘 문화에 대해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한 말도 옳았다. 시인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와 소설가 넬라 라Nelta Larsen은 미 중서부 출신이었고, 흑인 민족주의자 마커스 가비Marcus Garvey와 작가 클로드 멕케이 Claude McKay는 자메이카 출신이었다.
그리고 할렘 르네상스의 부산물 중 하나는 더 먼 과거, 즉 오래된 고향과 과거의 이주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었다. - P368

제2차 세계대전은 이주 기억상실증이 시작되는 일종의분수령이 되었다. 이는 전쟁 전과 후의 이주가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여졌으며, 전쟁 전과 전쟁 후라는 양 시대 사이의 이주 관련 연속성들이 무시되거나 부인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간단한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주민을 상상해보자.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그들은 백인인가? 그들은유럽인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현대의 이주민은 보통 개발도상국에서 일을 찾거나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온 가난하고 피부색이짙은 사람들로 연상되는 경향이 생겼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 비슷한 실험을 했더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 특히 서구인들은 미국 또는 오스트랄라시아로 이주해간 백인 유럽인들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점은 대체로 백인들이 전쟁 이후에는더 이상 자신들을 이주민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이민 나가는 사람 emigrant 또는 국외 거주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또한 영어에서 이민 들어오는사람mmigrant이라는 단어는 유색인종 이주민들을 분류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것은 현대의 이주 논쟁이 얼마나 인종차별적이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를 깨우쳐준다. 분명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1950년대 이전에는 백인 일색이었고 단일 문화였다는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펼치는 것이다. 프랑스와 영국의 백인 조상이 고대 아테네인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그곳에서 살았다고 주장함으로써 정착주의와 인종적 순수성, 민족국가라는 세 가지를 동시에 미화시키는 것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두 차례의세계대전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 해 사람들이 전장에서 혹은후방에서 전쟁을 치뤄냈던 역사 또한 생략해버린 이야기라 할 수 있다. 1950년대 이전의 유럽 역사가 개작되면서 유색인종을 위한 역사는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은 그냥 삭제되었고 수십 년이 지난 이제서야 점차 복원되고 있다. - P394

대영제국의 쇠퇴는 동시에 특권적인 이주의 쇠퇴를 의미했다. 또한 제국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영국인(대부분 남성이었다)의 수요도 감소했다. 즉, 모험심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영국 청년들은 고향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식민지로 이동하면 경력의 시작 단계부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는데, 그 선택권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대신 모험심 있고 자신감 넘치는 다른 청년 집단이 반대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메이카 시인 루이스 베넷 Louise Bennett이 ‘역 식민화‘라고 표현한 움직임이었다. 이에 대해 스리랑카의 정치 이론가 A. 시바난단Sivananda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들이 거기(스리랑카)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영국)에 있는 것이다." 시차를 둔 이러한 인구 흐름은 대칭으로 일어났고, 영국은 한때 대영제국이었던 지역의 이민자를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 P402

멕시코 젊은이들을 포함한 전 세계 수많은 이주민들에게 이주라는 개념은 또한 독립을 의미했다. 이주를 통해 보수적인 문화와 가족의 통제를 벗어나고, 부모처럼 되지 않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수 있는 것이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이루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기대하는 엄청나게 위험한 행동, 예를 들어 조국을 위해 싸운다든지 하는 것을 기억해보라. 그들이 국가의 이익 대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위험을 통해 그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 중 일부는 실용적인 것들로 좋은 직업, 더 나은 의료 서비스, 자기만의 방, 자녀를 위한 좋은교육 그리고 물론 박해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그러나 고대부터 인간이 이주하는 이유 중에는 실용적이지 않는 것들과 실용적인 것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으며 항상 그래왔다. 국경과 민족국가가 있는 오늘날의 정주주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역사를 너무나 자주 잊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 지루하거나 호기심 혹은 모험심 때문에, 아니면 도전을 즐기거나 꿈을 이루고 싶어서 이주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지구의 거의 모든 곳으로 이주했고,
그것을 막으려는 온갖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이주의 역사야말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촌인 유인원과 인류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것 중 하나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주민과 이주민 후손으로서 우리의 역사가 모두의 공통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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