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초기 백인으로 이루어진 영국인 이민자들에게는 중요한 기술도 응집력도 공동의 목적도 없었다. 여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가정도 일구지 못해 뉴잉글랜드의 상황과는 대조적이었다. 제임스타운은 식량도 부족했고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지휘 체계 또한 엉망이었다.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정착민들이 서로 다투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를 알 수 있다. 일부 젊은 이주민들은 제임스타운에서 달아나 인근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을 찾아갔다. 이는 버지니아 이주초기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는데, 뉴잉글랜드 정착민 사이에서는 없었던 일이었다. 이탈자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원주민 부족의 환영을 받았으며, 특히 무기를가지고 가는 이들을 반겼다고 한다. 대부분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새 유럽인 식구들이 부족에 통합되기만 하면 인종에 대해서는 거의 상관하지 않았던 듯하다.
반면에 아메리카 원주민이 점점 커지고 있는 영국인 정착지에자의로 합류하는 일은 드물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글을 통해 그때의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인디언 아이가 우리들 사이에서 자라며 우리의 언어를 배우고 우리의관습에 길들여진다 해도, 그가 친척들을 만나러 가서 그들과 함께 인디언식 산책을 한 번이라도 하고 나면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인은 남녀 불문하고 어린 나이에 인디언들에게 포로로 잡혀 한동안 그들과 함께 살고 나면, 친구들이 몸값을 지불하고 다시 영국인들사이에 머물도록 만들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애정을 베풀어도그들은 어느새 우리의 삶의 방식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걱정과 수고에 혐오감을 느끼고,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바로 숲속으로 탈출하며, 다시는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제임스타운에는 ‘숲속으로‘ 탈출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영국 이주민들의 사례가 많이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예는 하나뿐이다. 바로 포타혼타스다. - P242

1924년에 버지니아에서는 타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이 다시 도입되었다. 그 법에 따르면 백인이 아닌 조상이 있는 사람은 백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는 버지니아 명문가들을 장악하고 있던 수천 명의 포카혼타스 후손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인디언혈통이 1/16 이하인 사람들은 법적으로 백인으로 간주되는 이른바 포카혼타스 조항이 이 법에 추가되었다. - P246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시간의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는 문제도 이 논쟁에 끼어든다. 우리가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조사하려고 하는 순간, 현재는 어느 틈에 지나가버리고 우리가 온전히 체협하기도 전에 과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노예제도나 제국주의 같은 역사적 불의에 대해 거론할 때 과거에 선을 긋는다거나, 모든 것을 백지로 돌리고 새로 시작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마치현재가 과거와 깨끗이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것이 현실적이라거나 또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는 우리의 살아 있는 일부이며, 학교나 박물관에서 배울 수있는 것을 훨씬 넘어선다. 역사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근원이기때문에 묻어버려서는 안 된다. 이주, 노예제도, 인종차별, 불의 또는 민족주의에 관한 모든 토론에도 우리의 역사는 등장한다. 나는 과거의 역사에 의문을 표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찾고 그것들에 대해 말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시작으로 그 역사들이 일부 누락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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