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즉심과 보안처분
사법부와 독립성

문둥이 시인 한하운(韓何雲)의 시는 우리에게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의 쓰라린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게 하는 아픔을 준다. "성한 사람들인 우리는 그동안 우리와 "다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 버림받은 천형 (天刑)의 사람들의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저 우리가 그같은 부류에 속하지 아니한다는 사실에만 안도한 채 "성한 사람들 저희들끼리의" 일에만 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입술로는 기억하나 가슴으로는 잊어버리는 「성서」의 숱한 구절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예는 아마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모든 것을 남김없이 수량화 • 추상화하려 드는 오늘날의 세태에서는 더욱그러하다. 그 한 마리의 양은 잊혀지고 무시되어도 좋은 것인가. 한 인간의 자유와 생명의 값어치는 다른 99명의 인간의 그것의 99분의 1로 계산되어야 하는가. 그것을 인정하지 아니한다면, 지극히 작은 한 인간의 생명이 우주 전체와도 맞바꿀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잊혀진사람들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몽키차‘라고 불리는 호송차에 실려즉결심판소로 끌려가는 사람들, 한번 찍히면 다시는 지워지지 않는 반국가사범이라는 낙인 때문에 언제라도 영장 없이 구속되어 재판 없이 무한정 수감될 수있는 거의 완벽한 무(無) 권리상태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불우했던 과거의 범죄생활 경력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범법행위로도 본형 (本刑)에덧붙여 10년 또는 7년의 보호감호처분을 덤으로 선고받게 될 위험에 놓인 사람들. 우리가 늘상 우리와 무연(無)한 타인이라는 착각 때문에 외면하고 있는, 그들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관심이 현저하게 결핍되어 있는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22

즉결심판제도의 존재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어차피 경미하게 처벌될 사건에 대하여서라면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한 절차적 엄격성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간이. 신속한 처리를 도모하여 재판절차 자체에서 오는 번잡과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국가는 물론이요 피고인 본인을 위하여서도 도리어 이익이 된다고 하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편의주의에 일면의 진실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겠으나, 바로 그 편의가 피고인의 권리에 대한 소홀한 취급이라는 희생을 대가로 하여 추구되어야한다는 게 문제다. 뿐만 아니라 이 제도의 운용 여하에 따라서는 이같은 인권의 희생이 절차적 편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값비싸고 심각한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유의, 이같은 함정에 대하여 특별한 주목과 경계가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현행 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에 규정된 즉결심판절차가 정식재판절차와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보자. 우선 재판청구권자가 검사가 아닌 경찰서장인데, 이것은 수사절차에 있어서의 적법성의 보장이 그만큼 약화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 피고인의 진술서와 기타 경찰서장이 제출하는 서류나 증거물만 있으면 개정(開廷) 없이도 심판할 수 있으며, 벌금 또는 과료를 선고하는 경우에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는 때에는 피고인의 진술을 듣지 아니하고 형을 선고할 수 있게되어 있다. 이같은 경우에는 피고인의 유·무죄와 그 정상(情狀)에 관한 판단이 사실상 경찰 조사과정에서 끝나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 꼴이 된다고 해도과언이 아닐 것이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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