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병마로 조영래를 잃고 난 후 선후배 동지들과 친구들이 모여 그의 문집 하나 엮어보자는 의논이 있었다. 이제 그를 보낸 지 1주기를맞으며 한권 책으로 펴내게 되었지마는 지금 책을 펼쳐들고 그의 글을 다시 대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작은 성취감이나 보람보다는 다시 한번 가슴속을 찌르르하게 저려오는 분함과 아쉬움이다.
무엇이 그토록 빨리 조영래를 우리에게서 앗아갔는가. 그가 불치의 병으로쓰러졌으니 어떤 이는 그 병마의 안정사정 두지 않는 비정함을 원망하기도 하고또 어떤 이는 그토록 자기 건강을 돌볼 줄 모르고 밤새워 글 쓰며 줄담배를 피워대던 본인의 무심함을 탓하기도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가 그저 병마의 장난으로 쓰러진 것이라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저 멀리 3공하에서 3선개헌 반대, 반유신투쟁의 앞장에 섰던 그에게 가해진 짧지 않은 옥고는 그의 몸에 얼마나 끈끈한 피로의 찌꺼기를 쌓아놓았으며, 장장 5년여에 걸친 도피생활 속에서의 암담한 강박감은 그의 심령에 얼마나 깊은 상흔을 남겨놓았을까. 그리고 우렁찬 민주화의 새날을 눈앞에 두고 야당이 분열함으로써 정권교체 실패의 한을남긴 저 87년 대선 이후의 실의에 빠진 나날들, 그 좌절과 허무의 세월 속에서그가 참아내야 했던 아픔 같은 것들이 모두 모이고 쌓여서 그의 육신을 쓰러뜨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저 5.16 군사쿠데타로부터 시작된 이 땅의 군부독재의 우악스런 박해, 그 독재세력에 빌붙어서 역사를 왜곡시키고 눈앞의 영달만을 탐하던 무리들의 온갖 음모, 그리고 천재일우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정신못 차리고 분열과 파쟁으로 대사를 그르쳐버린 한심한 정치인들의 어리석음 같은 것들이 모두 어우러져서 우리의 희망이었던 청년 조영래를 음해한 것이다. -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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