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기억이 장기기억으로 강화되는 사이 뇌는 손버릇이 나쁘고 성질이 괴팍한 셰프 같다. 특정한 기억에 재료로 들어간 인지정보들이 연결되는 동안 레시피가 변경될 수 있고, 심지어 처음과 아주 달라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상상, 의견, 추측이 개입하면서 없던 재료가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야 할 재료가 빠지기도한다. 꿈, 읽거나 들은 내용, 영화의 장면들, 사진, 연상, 그때그때의 감정 상태, 다른 누군가의 기억이나 단순 암시 같은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들어가기도 한다.
한번 저장된 기억이라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너무 오래 방치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된다. 물리적 신경망이 말 그대로 연결이 끊어졌다가 아예 사라지면서 기억의 일부 혹은 전부가 지워지기도 한다.
또 저장된 일화기억을 인출할 때마다 내용이 달라질 가능성이높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기억의 인출은 녹화된 동영상의 재생이 아니라 이야기의 재구성이다. - P114

못된 언니 효과는 애써 찾을 때는 생각나지 않던 단어가 찾기를 포기하고 나서야 느닷없이 떠오르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사냥을 중단하면 뇌가틀린 목표물로 이끄는 신경경로를 더 이상 쓸데없이 배회하지 않기 때문에 정답으로 향하는 신경세포들이 비로소 활성화될 기회를 얻는다. - P136

일반적으로 우리 뇌는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 취약하다. 나이 들어서가 아니다. 나이가 적든 많든 똑같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일(딸의 비행기 예약)에 대한 기억을미래(취침 전에, 지금부터 12시간 후에 인출해야 한다. 딸의 비행기표 예약은 취침 전에 이를 닦는 것처럼 강하게 각인된, 취침전의 습관적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전에 딸의 비행기표 예약하기‘라는 기억을 촉발할 만한 구체적인 단서를 적어도 하나는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예약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미래기억이 떠오르게 하려면 외부 단서가 있어야 한다. 시간을 기반으로 단서를 만들 수 있다. 즉 정해진 시간이 되거나 일정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을 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들어, ‘2시 50분이 되면 학교에 아이 데리러 가기‘로 저장할 수 있다. 아니면 사건에 기반한 단서도 가능하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다른 일을 하도록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단서가 된다. ‘다이앤을 보면 나 대신 아이를 데리러 가줄 수 있는지 물어보기‘ 같은 것 말이다. - P147

의식적인 망각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는 무엇일까? 정확히는 모른다. 의도적인 망각을 연구하는 신경과학 분야가 여전히걸음마 단계이지만, 적극적인 망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마침내 이해하게 되면 신경장애와 PTSD, 우울증, 자폐증, 조현병, 중독등의 정신질환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증상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기억과 연동된 단서들을잊지 못하는 것은 부적응의 문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뛰어난 기억력을 원하지만 모든 부담과 공로를 온전히 기억에만 돌릴 수는 없다. 기억체계가 최적의 기능을 수행하기위해서는 정보저장과 정보삭제가 균형을 이루도록 섬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기억이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능력은 모든 것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고 유용한 정보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다. 신호를 저장하고 소음은 제거한다. 잊는 능력은 기억하는 능력만큼이나 꼭 필요하다. - P179

또 나이가 들면 한꺼번에 두 가지 이상에 집중하는 것이 점점어려워진다. 두 가지 일이 한꺼번에 발생할 때 두 가지 모두 기억할 가능성은 매우 낮고, 대개는 한 가지도 제대로 기억 못 한다. 게다가 과거에 서로 무관하던 정보 간에 새롭게 생겨난 연관성도 나이를 먹으면 점점 기억하기 힘들다. 따라서 원숭이 하면 바나나라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도 젊은 사람들만큼 쉽게 떠올리지만, 원숭이와 비행기의 연관성을 새로 기억할 가능성은 적다.
나이가 들면 기억에 장밋빛 필터를 씌우기 시작한다. 좋은 일만 떠올리고 나쁜 일은 잊는 경우가 늘어난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연령대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긍정적, 중립적,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그림을 여러 장 보여주고 일정 시간 후에 이미지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예상대로 노년층은 청년층보다 대체로 적은 수의 이미지만을 기억했다. 젊은이들은 감정과 무관한 중립적 그림들보다 감정이 드러난 사진들을 더 잘 기억했고, 긍정적·부정적 감정의 사진들은 거의 동일하게 기억했다. 하지만 노인들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정적인 이미지보다 두 배 더 많이 기억했고, 부정적인 사진과 중립적인 사진들은 비슷하게 기억했다. 또 처음에기억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의 이미지들을 다시 보여주자 쉽게알아보았다. 즉 부정적인 감정의 사진들도 기억에 저장되긴 했지만, 본 것을 떠올려보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이런 이미지들을 의식적으로 꺼내오지는 못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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