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어떤 정보를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주의를 기울이면 그정보는 한시적인 작업기억에서 벗어나 해마로 전달되고 강화 과정을 거쳐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이렇게 우리가 의식적으로 불잡아두는 장기기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이전에 일어난 일에대한 기억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른바 의미기억 semantic memory意味記憶은 학습한 지식, 삶과 세상에 관한 사실들을 저장해둔, 우리 뇌의 백과사전이다.
이런 정보는 학습 당시의 세부기억을 떠올리지 않고도 기억할수 있다. 의미기억은 언제 어디서 그 기억이 생겼는지 등과 같은개인의 경험과는 분리된 지식이다. 살면서 겪은 특정한 경험과도 묶여 있지 않다.
이에 반해 이전에 일어난 일, 특정 장소, 시간과 묶여 있는 정보는 일화기억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런 일화기억episodic memory逸話記憶들을 간직하고 떠올린다. "부다페스트에 갔던 때를 떠올려봐." 반면 의미기억은 그냥 알고 있는 정보의 느낌이 더 강하다.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수도다." 일화기억은 개인적이고 언제나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의미기억은 정보이기 때문에 시간 제약이 없다. 단순사실만 다룬다. - P76

같은 시간을 공부한다면 조금씩 나눠서 외우는 편이 벼락치기보다 유리하다. 기억의 간격효과spacing effect 때문이다. 기억할 정보를 일정 시간에 걸쳐 간격을 두고 외우면 그 내용이 해마에서 완전히 강화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 이렇게 나눠서 외우면 자신이 잘 기억하고 있는지 검증해보기도 쉽기 때문에 암기한내용이 매우 강력한 회로로 자리 잡는다(이제 곧 설명할 내용이기도하다).
그러므로 시험 직전의 밤샘 벼락치기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해마에 잔뜩 욱여넣은 정보를 아침에 토해내는 방식은 당장좋은 점수를 보장해줄지 모르지만 이렇게 공부한 내용을 다음 주혹은 다음 학년에도 기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부할 내용을시간 간격을 두고 조금씩 외우면 더 많이 기억하고 덜 잊어버리게 된다.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기억하려는 정보에 반복적으로 스스로를 노출시키면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초등학교 2,3학년 때, 8곱하기 3이 24라는 사실을 수없이 반복하고 머리에 주입시키다•보니 결국에는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반복에의한 암기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기억은 정보를 뇌에 강하게 심는 과정과 뇌에서 정보를 꺼내오는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학습하고 떠올려야 한다. 새로운 정보를 효과적으로 학습하려면 습득하려는정보에 뇌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은 물론, 학습한 정보를반복해서 꺼내야 한다.
그러려면 스스로 묻고 답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8곱하기 3이 24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되뇌기만 할 것이 아니라 ‘8곱하기 3이 뭐지?‘라고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질문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답을 맞히면 학습한 정보를 인출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신경세포 간에 형성된 경로가 한 번 더 활성화되고 강화되기때문에 기억이 더욱 견고하게 자리 잡는다. 외우려는 내용을 반복해서 읽기만 한다면 정보를 수동적으로 보고 인지하는 행위만반복할 뿐, 정보를 꺼내오지는 못한다. 따라서 기억을 한 번 더 보강하는 추가 혜택은 누릴 수 없다. 반복해서 질문하고 답하는 것이 반복해서 읽기만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 P79

앞서 소개한 것들만큼 엄두도 못 낼 수준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방법인 동시에 좀 더 평범한 대상을 기억하는 데 써먹을 수 있는 기법이 있다. 바로 장소기억법 혹은 기억의 궁전mind palace 이라는방식이다. 어디에 먹을 것이 있고, 어디가 숨기에 좋고, 안전한 보금자리로 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은 선사시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였을 것이다. 어린아이건 팔순 노인이건, 공부와 담을 쌓은 학생이건 천체물리학자건, 인간의 뇌=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지화하고 기억하도록 진화했다.
기억의 궁전을 이용하면 시각과 공간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우리의 타고난 초능력을 발휘해 기억해야 할 대상을 물리적 장소들과 연상으로 묶을 수 있다. 물리적 장소들이 반드시 궁전에 있을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장소여야 한다.
가령 집이 기억의 궁전이라면, 집 안의 동선을 따라 여섯 개의장소, 즉 기억 보관 지점을 정해 시각적으로 떠올린다. 내 동선은우편함, 현관 앞, 현관 벤치, 부엌 조리대, 오븐, 싱크대의 순서다. 어떤 장소를 선택해도 상관없지만, 평소 실제 이동 순서와 동일한 순서로 배치되어 있고 쉽게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전화, 메모지, 필기구 없이 장을 본다고 가정해보자. 외부장치의 도움 없이 달걀, 바나나, 아보카도, 베이글, 치약, 화장지등 여섯 가지 물건을 기억했다가 사 와야 한다. 마음속으로 달걀은 우편함에, 바나나는 현관 앞에, 아보카도는 현관 벤치 위에, 베이글은 부엌 조리대 위 (아까부터 앉아 있는 오프라의 손 위)에, 치약은 오븐에, 화장지는 싱크대 안에 둔다. 오후에 마트에 간 나는 마음속으로 기억의 궁전 안을 걷는다. 머릿속으로 내 집 내부를 떠올리며 물건을 놓아둔 장소를 차례로 방문한다. 우편함을 열면 그 안에는 달걀이, 현관 앞에는 바나나가 차례차례 마음의 눈에보인다. - P86

예를 들어, 남편이 매일 저녁 6시에 은색 도요타 캠리를 몰고 귀가한다고 하자. 일주일에 다섯 번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것도매주 남편의 차가 들어오는 모습이 매일 저녁 6시에 부엌 창문을 통해 보인다. 아마 아내가 보기에 남편이 귀가하는 모습은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그제 같을 것이다. 매일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이제 남편이 오늘 저녁 5시에 빨간색 페라리를 몰고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남편은 여장을 했고 조수석에는조지 클루니가 앉아 있다. ‘우와! 이런 일은 처음이야!‘ 이날의 경험은 모든 점이 그저 놀랍다. 놀랍다는 요소 하나만으로도 이날 저녁을 평생 기억할 사건으로 저장하기에 충분하지만, 아마 아내는 한술 더 떠서 주변 모든 지인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세상에, 그 사람 차가 들어오는데, 넌 얘기해줘도 못 믿을 거야!" 매번 다시 이야기할 때마다 아내의 두뇌는 기억을 재활성화하고 하나하나의 경험이 부호화되어 저장된 신경경로를 다시 강화하기 때문에 그 기억은 강력하게 자리잡는다. - P93

감정과 의외성이 편도체 amygdala 라는 뇌 부위를 활성화하고, 자극을 받은 편도체는 해마에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단순화하면 이런 식이다. "이봐, 지금 진짜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이거꼭 기억해야 돼. 단단히 저장해둬!" 그러면 뇌는 우리의 경험과연관해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누구와 있었고, 언제였고, 그때 기분은 어땠는지 등의 세부적인 맥락을 포착해서 한데 묶는다. 감정과 의외성은 뇌 속을 요란스럽게 행진하는 대규모 취주악대처럼 신경회로를 자극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알아차리게 한다. 반복되는 일상에는 감정적 요소도 의외성도 없다.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가진 경험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기억을 곱씹는경향이 있다. 감정과 결부된,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되돌아보고, 다시 말함으로써 이 기억들을 더 강하게 만든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극히 감정적인 어떤 일을 경험한다면 소위 섬광기억 flashbulb memory閃光記憶이라는 것이 생성될 수도 있다. - P94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리고 있던 짙은 안개가 걷히는 때는 6세 혹은 7세 정도다. 이제부터의 기억은 나를 중심으로 한 서사에 곁들여진 일화들이다. 7세 무렵의 기억이 내 인생기억을 엮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첫 시즌 첫 회를 보는 느낌이라면, 4세 무렵의 기억은 나와 상관없는 드라마를 아무 시즌이나 골라 중간부터보는 느낌일 수 있다.
왜 우리는 아주 어릴 때의 일을 조금밖에 기억하지 못할까? 뇌에서 언어의 발달은 일화기억을 강화·저장·인출하는 능력과 상응하여 일어난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세부적인 경험을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언어와 연관된 해부학적 구조와 회로가 갖추어져야 한다. 따라서 성인이 되어 접근할 수 있는 기억은 경험을 말로 옮길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갖춘 이후에 일어난 일들에 관한 기억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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