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클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만약 생태계 전체가 다 같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그것도 그리 나쁘진 않겠죠." 그러나 좋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반응한다. 서로 다른 속도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아예 이동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 바람에 상황이 뒤죽박죽되거나, 또는 페클의 표현대로라면 "생태학 규정집을 내다 버려야 할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는 이동이 가능한 종이 자신이 선호하는 기후를 애써 찾아가더라도 새로운 땅에서 자리 잡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라는 뜻이다. 낯선 음식과 질병, 새로운 포식자와 경쟁자에 적응해야 한다. 그것도 끊임없이 구성원이 들어오고 나가며 영향을 주고받는 군집 안에서 말이다. ‘뜻밖의 동거인‘이 불러온 피할수 없는 난제다. "현재 우리는 개별 종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까지는 상당히 잘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의문이 남았다. "그것이생태계에는 어떤 의미일까요?" 페클이 물었다. "전체 생물다양성의 20퍼센트 내지 30퍼센트가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처음으로 풀죽은 말투인가 싶더니 이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저 정리나 하고 있을 뿐이에요" - P139

앞으로 알아야 할 것은 아직 많지만 이미 이 책에서도 두 가지 경향을 일관되게 언급했다. 첫째, 기온 상승은 생물을 극지로 몰아간다. 그들은 적도를 중심으로 북반구에서는 북쪽으로(로비의 펠리컨과 린그렌의 나무좀), 남반구에서는 남쪽으로(페클의 퉁돔과 성게) 이동한다. 둘째, 생물은 산이나 능선 등 사면을 따라 점점 높은 고도로 올라간다(프리먼의 새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패턴에서 벗어난 놀라운 예외가 있다." 이런 사례는 생물의 이동 뒤에는 아주 다양한 원인이있으며 생물이 항상 온도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 P140

"다른 연구에서 보고된 것처럼 나무가 북쪽으로 이동할 걸로 예상했습니다." 실제로도 많은 나무의 지리적 중심지가 북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나무가 서쪽을 향했다. 결과를 확인한 연구팀은 당장 두 가지로 대응했다. 먼저 결과의 타당성을 확인하기•위해 분석 과정을 전체적으로 재검토했으며(검토 결과 분석은 타당했다), 다음으로 그런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온 원인을 파헤쳤다. 답은 강우와 가뭄의 패턴에 있었다. 페이는 "습기가 결정적인 역할을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아이오와주나 여타 미국 중서부 지방처럼연간 강수량이 15밀리미터 이상 증가한 지역에서 나무 개체군이 가장 멀리 그리고 가장 빨리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결과는 캘리포니아주에서 보고된 경향과도 유사하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식물은 기온이 아닌 강수량의 변화를 따라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런 결과는 종이 다양한 변수에 반응하며, 기후변화는 단순히 어떤 날에 얼마나 날씨가 더울지 따위보다 더 많은 요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더워진 공기는 습기를 더 많이 머금을 가능성과 함께 비와 눈, 가뭄과 폭풍, 바람 등 모든 기상 현상의타이밍과 강도를 바꾸어 평소와 다르게 나타나도록 한다. 그중 일부, 또는 전체가 한 종이 서식할 장소의 적합성을 결정하는 중요한요인이 될 수 있다.  - P146

디키 연구팀이 이처럼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은 기후변화로경기장의 상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른 봄의 온기와 더 뜨거워진 여름이 엘더베리에 생물계절학적 변화를 강요해 개화와 결실기가 2주 이상 당겨졌다. 낚시 철이 한창일 때 열매가 익다 보니 곰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말았다. 원래 일정대로 연어를 잡아먹으며제일 좋아하는 열매를 포기할 것인가, 행동을 바꾸어 시대에 발맞출것인가.
"곰들에게는 오히려 바람직한 움직임입니다." 디키가 설명을 이어갔다. 동면 전까지 계속해서 먹이를 찾을 수만 있다면 연어를 엘더베리로 바꾼다고 해서 해가 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코디액섬의 회색곰은 이미 큰 몸집으로 유명하지만, 이 조정된 식단으로 크기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게 디키의 견해였다. "문제는 이런 행동 변화가 다른 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냐는 것이죠." 디키가 기후변화 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한 가지를 강조하면서 말했다. 한 관계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다른 관계에 미치는 연쇄효과 말이다. 곰이 연어를 덜 먹게 되자 계곡 주변에서 연어 사체가 줄어들고, 그것을먹고 살던 다양한 청소동물이 덩달아 줄어들면서 결과적으로 바다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중요한 에너지 흐름이 제한되었다. (썩은 연어는 흙을 비옥하게 해 식물의 생장을 촉진하고 질소와 인을 비롯한 각종 영양이 먹이그물 전체를 따라 순환하는 데 이바지한다. 연어가 올라오는 계곡 근처의 새나 거미의 몸에서는 연어에게서 섭취한 영양소가 검출된다.) 디키는코디액섬의 개울 및 강 주변 식생과 생물다양성이 50년, 또는 100년이 지나면 크게 달라질 거로 예상했다. 모두 곰의 입맛과 적응력이주도한 변화다. - P158

가소성의 명백한 이점을 생각한다면, 왜 어떤 좋은 가소성이 낮아지는 쪽으로 진화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답은 현재와 상충하는 과거의 안정된 기후에 있다. 지역에 따라 수천 년 이상까지도 지속되는 이 비교적 평온한 시기에는 대개 진화의 압력이 종의 전문화로 이어진다. 즉 경쟁 결과 일부 종은 효율성을 추구하도록 진화한다. 특정한 자원과 생활양식을 우점, 활용해 남보다 우위에 설 수있는 작지만 중요한 이점을 얻는 것이다. 그러자면 보통 유연성을희생해야 하는데, 마치 한 악기의 명연주가가 되면 오케스트라의 모든 파트를 다 맡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결과는 전문화(안정된 상황에서 유용하다)와 가소성(변화하는 상황에서 유용하다) 사이의 진화적줄타기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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