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일은 위로 더 올라가보고 싶어했는데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억새를 바라보며 서성이기만 했다. 김원상이 이순일에게 등을 내밀었고 이순일이 그 등에 업혔다. 그 순간을 한영진은 보았다.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고 조금만 더 늦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면 보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저 사람은 참 크고, 우리 엄마는 참 작구나. 작은 충격 속에서 그들을 보며 한영진은 생각했다. 김원상이 이순일을 업은 채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김원상은 그런 걸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의식하지도 과시하지도 않은 채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
실망스럽고 두려운 순간도 더러 있었지만 한영진은 김원상에게 특별한 악의가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는 그냥••••••  그 사람은 그냥, 생각을 덜 하는 것뿐이라고 한영진은 믿었다. 한영진이 생각하기에 생각이란 안간힘같은 것이었다. 어떤 생각이 든다고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버텨보는 것. 말하고 싶고 하고 싶다고 바로 말하거나 하지 않고 버텨보는 것. 그는 그것을 덜 할 뿐이었고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 P70

새벽에 간호사가 혼곤히 잠든한영진을 깨워 수유실로 들여보낸 뒤 가슴에 아기를 안길 때마다 모멸감을 느꼈다. 한영진은 그 아기가 낯설었다. 바뀐 것 아니냐고 다른 사람의 아기가 아니냐고 간호사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아기가 젖꼭지를 제대로 물지 못해 빨갛게 질려 울어대고 그게 산모의 문제인 것처럼 간호사들이 한마디씩 충고할 때마다 한영진은 좌절했고 다시 분노했으며 죄책감을 느꼈다. 모든게 끔찍했는데 그중에 아기가, 품에 안은 아기가 가장 끔찍했다. 그 맹목성, 연약함, 끈질김 같은 것들이 내 삶을 독차지하려고 나타나 당장 다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타인. 한영진은 자기가 그렇게 느낀다는 걸,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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