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보선 후보는 박정희 후보의 남로당 전력을 폭로하는 색깔론을 들고 나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분패했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 때 남로당 군사총책으로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박정희 씨는 군의 남로당 조직원 정보를 제공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아 6·25가 터지자 현역으로 복귀한 사람이었다. 당시는 좌우의 대립으로 많은 피를 흘리고 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때였다. 다시 상처를 헤집는 것을 두려워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처사였다. 그 후 오로지 반공의 화신처럼 되어 무고한 사람들을공산주의자로 조작한 악행을 서슴지 않게 된 박 대통령이야말로 자신의 전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작용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정설이다. 당시 박정희씨의 반론이다.
"매카시즘이란 프라이팬에 달달 볶아서 새빨간 빨갱이를 만들려는 수법이다."
이렇게 강변했던 그가 유신 통치 이후 수많은 조작 간첩을 양산하고 공산주의자임을 부인하는 무고한 사람들을 관제 용공분자로 만들어 희생시키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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