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지가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라는 가설이 상당한 지지를 받게 된 계기는 인류학자 리베카 칸Rebecca Cann과 동료들이 내놓은 1987년의 논문입니다. 이 논문에서 현생인류 147명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아프리카 사람들의 유전적 다양성이 가장 컸고 다른 대륙 사람들의 유전적 다양성은 아프리카 사람들에 비해 작았습니다. 유전적 다양성은 유전적 변이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선택의 영향을 받지 않는 중립적인 유전자 변이는 무작위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계통이 오래될수록 유전적 변이가 많이 쌓이면서 유전적 다양성이 증가합니다. 이렇게 유전자 변이를 통해 시간을 유추하는 방법은 분자시계라고 불립니다. 유전적 다양성이 크다는 이야기는 오래되었다는뜻입니다. 따라서 현생 인류의 기원점은 유전적 다양성이 가장 큰 아프리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현생인류의 다양성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그다지 오래된 계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가 짧고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결론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 기원 논쟁의 중심이 네안데르탈인의 유럽에서 아직 화석 자료가 많지 않은 아프리카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고인류학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이 논문을 계기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분석을 이용한 시간 여행은 1990년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고인류 화석 외에 유전자가 고인류학의 주요 자료로 대두되었습니다. - P168

그런데 현생인류가 복수의 기원점과 복수의 조상 집단을 가지고 있다는 가설을 의외로 많은 자료가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20만 년 전 남아프리카 오카방고에 살던 고인류가 우리의 조상이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의 조상입니다. 30만 년 전 서아프리카에 살던 고인류도 그리고10만 년 전 북아프리카에 살던 고인류도 우리의 조상입니다. 40만 년전 유럽에서 살던 네안데르탈인 역시 우리의 조상입니다. 우리의 기원은 하나가 아닙니다.
유전자 계통수를 통해 추정되는 유전자의 기원점은 개체가 이루는 집단의 조상과 같지 않습니다.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기원은 16만 년 전이지만 핵 DNA 유전자의 기원점은 100만 년 전에서 500만년 전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30억 개의 염기서열로 이루어진 유전체 중에서 일부를 분석하는 방법은 전장 유전체(게놈)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혁명적인 전환을 이루었습니다. 부분적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전체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유전자에 따라 기원점이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173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현생인류가 호모 사피엔스라는로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종으로 기원하여 전세계로 확산했다면, 전세계에서 살고 있던 기존의 고인류 집단과는 서로 다른 종이기 때문에 유전자를 교환할 수 없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서로 다른 종인지의 여부는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과 상관해서 중요한 화두였으며, 둘 사이에 유전적인 교환이 가능했느냐의 여부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10년에 발표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 판독 연구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소량이나마 현생인류의 유전자에 포함되었다는 주장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이후 새로운 개념이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혼종의 개념입니다. 서로 다른 종끼리 유전자를 교환할 뿐 아니라 그 사이에서 나온 후손은 생식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혼종이 처음 대두되었을 때만해도 고인류학계에서는 혼종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했습니다. ‘식물에서는 흔한 현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양서류에서는 흔한 현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고등동물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연구가 거듭되면서 점차 혼종이 ‘가축화과정에서 흔한 현상‘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급기야는 야생 영장류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임이 밝혀졌습니다.
혼종의 개념이 부각되면서 이제 좀 단위의 연구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왔습니다. 두 집단 사이에서 유전자를 교환했다면 서로 같은 종이기 때문인지, 서로 다른 종이지만 혼종에 의해서인지 그 둘을 구별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고인류에게 몇 개의 화석종이 있었는지, 대답할 수 없는 이 문제보다 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 끌어야 하는 것은 과거에 살았던 고인류종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의 문제여야할지도 모릅니다.
데니소바인이 호모 알타이엔시스라는 화석종인지,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라는 화석종인지의 문제는 차라리 21세기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17세기부터 동의한 종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다양한 종이 섞여 하나의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는 관점은 하나의 종에서 두 종으로 분화해야만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에 전면적으로 도전합니다. 20세기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던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이 21세기에서는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 P176

500만 년 전에 시작하여 근 300만 년을 아프리카라는 엄청나게 큰 대륙에서만 살아온 고인류는 200만 년 전 유라시아라는 새로운 대륙으로확산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살기 시작했습니다. 적응해 온 환경과 매우 다른 환경에 들어간 동물은 멸종하거나 종 분화를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인류는 멸종도 종 분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이미 200만 년 전에 북위 40도보다 더 북쪽으로 진출했습니다. 4만 년 전에는 티베트 고지대까지 진출했습니다. 깊은 바다에서 어로를 할 수도 있고, 황제 다이어트처럼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에 의존한 식생활도 가능합니다.
특정한 환경에 적응하여 특정한 생김새를 가지게 되는 동식물과는달리 사람은 계속 하나의 종에 속한 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인류는 지구의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요? 화성이나 금성으로 이주해서 다른 행성의 환경에 ‘적응‘하는 것 또한 황당무계한 공상은 아닐 것입니다. - P200

교과서에도 등장하고 박물관에서 자주 전시되어 잘 알려진 한국의고인류 ‘흥수 아이‘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남쪽에 위치한 두루봉 동굴의일부인 흥수 동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흥수 아이는 4만 년 전 고인류화석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 보기 드물게 오래된 매장 유구입니다. 하지만 흥수 아이가 구석기 시대의 유골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해 줄 증거 자료는 희박합니다. 흥수 아이의 뼈는 오래된 화석이라고 보기에는 전반적으로 화석화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으며 4만년 전이라는 연대를 분명하게 뒷받침해 줄 절대연대 자료가 없습니다.
흥수 아이의 연대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대부분 실패하고 17~19세기(1630~1893)라는 방사성 탄소 연대가 유일하게 발표되었습니다. 17~19세기라면 조선 시대의 인골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흥수 아이는 많은 충치를 가지고 있는데 구석기 시대 고인류에게 충치는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드뭅니다. 충치는 농경이 정착된 이후에 급격히 늘어납니다. 흥수 아이가 4만 년 전까지도 올라갈 수 있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시대의 고인류 화석이라는 주장은 아직 학계의 검증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여러 정황상으로 볼 때 흥수 아이는 구석기 시대에 매장된 고인류 화석이라기보다는 농경이 자리를 잡은 이후인 홀로세의 인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P210

2015년에는 타이완근해 수십 60~120미터 지점에서 건져 올린 고인류의 턱뼈가 발표되어 학계가 떠들썩했습니다. 지금은 바닷물 밑에 잠겨 있지만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육지였던 서해 바닥에 묻혀 있던 고인류화석을 건져 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를 찾아갔을 때 목포 앞바다에서 발견될 고인류 머리뼈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한국의 해양 고고학이 크게 발전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데니소바인은 작은 새끼손가락을 이루는 뼈 중에서도 손톱만 한 뼛조각에서 추출한 유전자에서 처음 발견되어 2010년에 논문으로 발표되었습니다. 화석 없이 고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는 흙에서 채취한 유전자로 고인류의 진화를 분석하는 기술도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화석 한 점 없이 동굴 바닥에서 채취한 흙에서 추출한 유전자로고인류 십수 개체분에 해당하는 전장유전체를 수집·분석한 놀라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계속 발견되는 동굴 유적에서 화석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토양 분석을 통해 충분히 고인류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요? - P218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담론은 한 민족이라는 개념이 역사적으로 가장 필요했을 때 때마침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우리가 단군의 피를 이어받은 단일민족이라는 믿음, ‘민족‘이라는 개념이 시작된 것은 1920년대였습니다. 그 전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손Benedict Anderson이 상상의 공동체 Imagined Communities」(1983)라는라는 저서에서 제시한 ‘상상의 공동체‘라는 표현처럼, 민족이라는 개념은 1920년대 당시 식민지 시대를 살고 있던 사람들이 갈구하여 탄생했습니다.
국가가 건설될 때 정치 지도 계층에서는 자민족의 유구성, 독자성, 우수성을 내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민족의 우수성 담론을 통해 민족적 통합을 이룸으로써 근대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한국 근대적인 국민 국가로 건설되던 당시 불행히도 한국은 식민제국주의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제국주의의 대안은 민족 논리였습니다. 민족 논리는 사회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전개되었으며, 제국주의 치하에서 단결을 유지하기 위해 활용되었습니다. 만주의 우랄-알타이 Ural-Altai산맥에서 기원한 민족이 한반도로 와서 한족이 되었다는 내용의 민족기원론에 등장하는 민족은 살아서 이동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민족을 ‘핏줄‘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민족에게는 객관적으로 검증되어야 하는 별도의 구성 요건이 필요 없습니다. 단지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가리켜 하나의 ‘민족‘으로 지칭하면 됩니다. 민족정체성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 P224

‘한민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민족‘은 생물학적인 실체가 아닙니다. 누가 한민족에 속하는지는 생물학으로 연결된 조상과 자손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물학적 조상 중 특정한 사람을조상으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은 조상에서 제외하는 사회적 관계에서결정됩니다. 우리는 과학이 실생활과 동떨어진, 객관적인 분야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특히 고인류학과 고고학은 정치 체제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학문입니다. 북한이 ‘한민족의 조상인 단군‘의 존재를 발표한 시점인 1990년대는 체제를 공고히 하고 내부 단결을 도모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조상‘이나 ‘민족‘이라는 개념은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인 구분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그것은 사실 허상일 뿐입니다. 생물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문화적 개념입니다.
한반도의 고인류를 찾고 연구하는 일은 단일 민족의 기원을 찾는 일이라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경이 없던 시절, 바다가 땅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한반도에서 살고 있던 고인류는 한민족이 아니라 인류였다는 사실을 다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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