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낮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햇빛이 모든 색깔을 퇴색시키며 짓누른다. 밤에 대해서는 잘 기억한다. 밤의 푸른빛은 하늘이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하늘은 세상의 본질을 덮고 있는 모든 불투명함의 저편에, 그 너머에 있었다. 나에게 하늘은 밤의 푸른빛을 가로지르는 순수한 광채와 모든 색깔을 초월한, 차갑게 녹아드는 빛을 떠오르게 한다. 빈롱에서였다. 때때로 슬픔에 잠길 때면 어머니는 이륜마차에 말을 맨 다음 나를 태우고, 건기의 밤하늘을 보러 들판으로 가곤 했다. 그런 밤이면 나는 어머니를 소유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하늘에서는 순수하고 투명한 폭포처럼, 침묵과 부동의 물기둥처럼 빛이 쏟아져 내렸다. 대기는 푸르고, 손에 잡힐 듯했다. 푸른빛, 하늘은 그 반짝이는 빛으로 끊임없이 맥박 치고 있었다. 밤이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고, 눈이 닿는 곳까지 강의 양쪽으로 펼쳐진 들판을 온통 비추고 있었다. 밤은 하루하루 새로웠다. 매 순간마다 새로운 밤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였다. 밤의 소리는 들개들의 소리였다. 그들은 신비를 향해 짖어 대고 있었다. 그들은 밤이 만들어 낸공간과 시간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이 마을과 저 마을에서 서로 화답하며 짖어 댔다. - P98
나는 말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난 아무 때고 결혼할 수 있어요."어머니는 그렇지 않다는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 그녀는 말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다 알려지고 말아. 여기선 절대로 불가능해." 그녀는 나를 보면서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너를 좋아해 줄까?" 나는 대답했다. "그럼요. 여하튼 그들은 나를 좋아해요." 그러자 어머니가 했던 그 말. "네가 그런 아이이기 때문에 너를 좋아하는 거겠지." 그녀는 또 묻는다. "단지 돈 때문에 그 남자를 만나는거니?" 나는 머뭇거리다 오로지 돈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또다시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내 말을 믿지 않는눈치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너 같지는 않았어. 나는 너보다는 열심히 공부했어. 나는 아주 진지한 아이였지. 너무 오랫동안, 너무 나이 들도록 그렇게 살다 보니 즐거움을 느끼는 법을 잊고 말았지만." - P111
그녀가 운 것도 배가 첫 번째 작별의 고동을 올렸을 때였다. 배의 트랩이 올려지고 예인선이 배를 끌어당겨서. 배가 육지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그때였다.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고 울었다. 그가 중국인이기 때문이었고, 또이런 종류의 연인들은 눈물을 흘려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작은오빠의 눈에 띄지 않게 그녀는 괴로워했다. 그들 사이의 습관대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의 큰 승용차가 거기 있었다. 길고 걷은 승용차. 그 앞자리에는 흰옷을 입은 운전기사가 앉아 있었다. 그 승용차는 해운회사의 주차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홀로 서 있었다. 그 모습 때문에 그녀는 그의 승용차를 알아볼 수 있었다. 뒷자리에 보일 듯 말 듯 앉아 있는 게 바로 그였다. 그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풀 죽어 있었다. 그녀는 맨 처음 배에탔을 때처럼 난간에 팔을 괴었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고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도 그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그가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검은 승용차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승용차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항구가 시야에서 사라졌고, 곧이어 육지도 사라졌다. - P131
그녀의 기억 속에서 수많은 밤과 밤 사이에 흐릿해져 버린 그날 밤에 대해, 갑자기 그녀는 확신이 들었다. 한 어린 소녀가 그 배 위에서 밤을보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순간,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아래 쇼팽의 음악이 큰 소리로 울려 퍼졌을 때,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음악은 어두운 여객선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무엇과 관계가 있는지 알 수없는 하늘의 지시처럼, 뜻을 알 수 없는 신의 명령처럼, 그 음악은 울려 퍼졌다. 소녀는 일어섰다. 마치 이번에는 자기가 달려가 자살하려는 것처럼, 바다에 몸을 던지려는것처럼. 그리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콜랑의 그 남자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현듯 예전에 자신이 콜랑의 남자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런 종류의 사랑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제 그는 모래 속에 스며든 물처럼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이제야,쇼팽의 음악이 큰 소리로 퍼지는 지금 이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작은오빠가 죽은 후에야 그의 불멸을 기억해 냈듯이. - P133
전쟁이 끝나고 몇 해가 흘렀다. 몇 번의 결혼과 몇 번의 이혼에서 아이들을 낳고 몇 권의 책을 펴냈을 즈음이었다. 그가 부인과 함께 파리에 왔다.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요. 그녀는 목소리에서 이미 그인 줄 알았다. 그는 말했다. "그냥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었소." 그녀가 말했다. "나예요. 안녕하세요." 그는 겁을 먹고 있었다. 예전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떨리는 음성 속에서 갑자기 그녀는 잊고 있던 중국억양을 기억해 냈다. 그는 그녀가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이공에서 다시 만난 어머니를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오빠에 대해서도 알고있었다. 그는 그녀를 생각하며 슬퍼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했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인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파리 노플르샤토에서1984년 2월~5월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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