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대한 붉은 여왕식 설명의 역사는 한 문제에 대해 다양한 접근 방식을 종합하는 과학의 방법에 관한 아주 좋은 예이다. 해밀턴과 다른 사람들의 기생생물과 성에 대한 생각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야 나타나기 시작한 독립된 세 연구의 수혜자들이다. 첫째는 기생생물들이 개체군을 조절하고 개체군의 주기를 설정할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이것은 1920년대에 알프레드 로트Alfred Lotka 와 비토 볼테라 Vito Volterra가 제시하였고, 1970년대에 런던에서 로버트 메이 Robert May와 로이 앤더슨 RoyAnderson이 다시 언급하였다. 둘째는 1940년대에 홀데인 등에 의한 풍부한 다형 현상의 발견이었다. 이것은 대부분의 유전자는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한 형태가 다른 형태를 제거하지 못하게 작용한다는흥미로운 현상이었다. 셋째는 월터 보드머 Walter Bodmer와 다른 의학자들이 발견한 기생생물에 대한 방어 방식이었다. 그것은 방어 유전자가 자물쇠 열쇠 체계 같은 것을 제공해준다는 생각이었다. 해밀턴은 이 세 가지 물음을 합쳐, 기생생물은 저항 유전자를 계속 바꿔나가는 숙주와 꾸준히 싸우는데, 이때 유전자의 형태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 P139

성과 질병은 깊은 연관이 있다. 기생생물의 위협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성이 필요하다. 기생생물보다 자신들의 유전자가 한 걸음 앞서가게 하기 위해 생명체에게는 성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수컷은 쓸모없는 잉여가 아니다. 그들은 독감이나 홍역 등으로 자손이 몰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암컷의 보험 증서이다(이것으로 위안이 된다면), 암컷은 자신의 난자에 정자를 추가시키는데, 만약 이런 행위를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로 생기는 자손들은 그들의 유전적 자물쇠를열려고 오는 첫 기생생물의 공격에 모두 똑같이 취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성들이 자신들의 새 역할을 축복하기 전에, 모닥불가에 둘러앉아 북을 치며 병원체에 대한 노래를 부르기 전에, 그들 존재의 목적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겠다. 곰팡이를 고려해보도록 하자. 많은 곰팡이들이 유성이지만 웅성을 띠고있지는 않다. 곰팡이들은 수만 개의 다른 성을 지니고 있으며, 구조적으로 동일하고 동등한 조건으로 번식할 수는 있지만 자가교배는못한다. 심지어는 동물 가운데에도 지렁이같이 자웅동체인 동물들이 많다. 유성이 다양한 성별의 필요성, 단 두 성별의 필요성 또는그 두 성별이 암수처럼 동떨어져 있을 필요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로 처음 본 순간에 가장 멍청하게 보이는 것이 양성 체계이다. 만나는 사람 중 족히 50퍼센트는 배우자로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웅동체라면 모든 사람이 배우자의 가능성을 지닐 것이다. 우리가 수천 종류의 성별을 갖는다면, 보통 독버섯처럼 만나는 사람의 99퍼센트가 배우자의 가능성을 지닌다. 만약 세 종류의 성별을 갖는다면 3분의 2가 가능성을 가진 배우자가 된다. 왜 사람들이 성을갖는가에 대한 붉은 여왕의 풀이는 단지 길고 긴 이야기의 시작임이 밝혀지고 있다. - P143

 유전자는 의식이 없고, 서로 협동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화학적 신호에 의해 켜지거나 꺼지는 생명력이없는 분자이다. 그들을 올바른 순서로 작동하게 해서 인간의 육체를만들도록 하는 것은 신비스러운 생화학적 계획이지 민주주의적인 결정이 아니다. 그렇지만 지난 수년간 윌리엄스, 해밀턴 등에 의해 시작된 혁명으로 점점 더 많은 생물학자들이 유전자를 활발하고 약삭빠른 개체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유전자가 의식이 있거나어떤 목적을 향해 작용한다는 것은 아니다. 진지한 생물학자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뚜렷한 목적론적인 사실은 진화가 자연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자연선택은 자신의 생존 능력을 높여주는 유전자의 강화된 생존이라는 것이다. 즉,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잘 전달되는 유전자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목적론적으로 말한다면, 자신의 생존을 향상시키는 작용을 수행하는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기회를 높여주기 때문에 그 일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협동하여 촌락을 형성하는 것이 효과적인 사회 전략이듯이, 유전자에게는 협동하여 신체를 만드는 것이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다.
그렇지만 사회가 모두 협동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쟁적인 자유기업도 반드시 필요하다.  - P148

수십억 년 전에 생명체가 원시 대양에서 나온 이후 다른 분자를 사용하여 자신을 복제하는 분자의 수는 증가했다. 그러다 그 몇몇분자들은 협동과 분화의 이점을 알게 되었고, 염색체라는 그룹을 만들었으며 세포라는 기계를 작동하여 효과적으로 염색체를 복제할수 있었다. 마치 작은 농부 집단이 목수와 대장장이를 만나 촌락이라는 작은 협동 조직을 형성하듯이. 그리고 촌락 부족을 이룬 것처럼, 염색체는 몇몇 세포를 합쳐서 초세포Super cell를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세포는 이렇게 여러 종류의 박테리아가 모여서 형성되었다. 부족에서 국가로, 그리고 제국이 되어가듯이, 세포들은 뭉쳐서 유전자 집합체의 거대한 집합체인 동식물과 균류를 만들었다.
인간 사회에서 이러한 과정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 앞서 사회적 이익을 강요하는 법이 시행되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전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후세들이 유전자를 평가하는데는 한 가지 기준만이 있다. 바로 다른 유전자들의 조상이 되는가이다. 대체로 다른 유전자의 희생을 통해서만 이것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부를 축적할 때 합법적이건 불법적이건 타인을 설득해 그의 부를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전자가 독립하면 그때는 다른 모든 유전자는 적이 되어 모두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게 된다.
만약 유전자가 연합체의 일부라면 경쟁 연합을 패배시키는 데 똑같은 관심을 보일 것이다. 마치 보잉사의 직원들이 에어버스사의 희생속에서 성공하는 데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 P150

개개의 유전자 차원에서 보면, 유전자는 성을 통해 수직적으로뿐아니라 수평적으로도 퍼져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유전자가 자신이 거주하는 전달체에 성을 갖도록 했다면, 설령 개체에게 불이익이 가더라도 유전자의 이익을 위해 뭔가를 하도록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가능하다면 후손을 남길 수 있는 쪽으로). 광견병 바이러스가 다른 개로 퍼지기 위해 개를 조종하여 무엇이든 물게 하듯이, 유전자는 다른 가계를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의 숙주가 성교하도록 만든다. - P152

히키와 로즈는 특히 한 염색체에서 자신을 분리시켜 다른 염색체로 옮겨가는 전이인자 transposon 혹은 도약 유전자라는 유전자에 홍미를 느꼈다. 1980년 같은 시기에 두 그룹의 과학자들은 전이인자가 다른 유전자의 희생을 통해서 자신의 복제만을 퍼뜨리는 ‘이기적인‘ 기생 DNA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과거의 과학자들처럼 전이인자가 개체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이유를 찾기보다는, 전이인자가 개체에게는 나쁘지만 전이인자 자신에게는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강도와 무법자는 사회에 이익을 주기보다는 손해를 끼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아마도 전이인자는 ‘무법자 유전자‘ 이리라. 또한 히키는 전이인자가 근친교배나 무성교배하는 생물보다는 이계교배하는 유성생식 생물에서 더 흔하게 발견되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는수학적 모델을 이용하여 기생적인 유전자가 숙주에 악영향을 주더라도 잘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였다. 그리고 히키는 유성생식 중에서는 빠르게 퍼지지만 무성생식 종에서는 느리게 퍼지는 효모의 기생성 유전자를 찾았다. 그러한 유전자는 ‘플라스미드plasmid‘ 혹은독립된 작은 DNA 고리에 위치하며, 박테리아에서는 이런 플라스미드가 유전자들이 퍼지는 수단인 접합을 유도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은 개들이 서로를 물어뜯게 하는 광견병 바이러스와 같다. 나쁜유전자와 전염성 바이러스의 경계선은 모호하다. - P153

 여성이 임신하면 배아는 어머니가 지닌 유전자의 반만을 받는다. 이 유전자들은 운이 좋은 것이다. 운이 없는 다른 반쪽은 다음기회를 기다린다. 요점을 말하자면 사람은 23쌍의 유전자를 지니는데, 23개는 어머니의 것이고 23개는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난자나 정자를 만들 때 각 쌍으로부터 하나씩 채택해서 최종적으로 23개의 염색체를 갖게 된다. 어머니에게 받은 것만을 그대로주거나 아버지의 것만을 주거나, 아니면 두 가지가 혼합된 상태로줄 수 있다. 이때 확률을 조작해서 배아에 들어갈 확률을 50퍼센트이상으로 증가시킨 이기적인 유전자는 훨씬 유리해질 것이다. 이 유전자가 단순히 배아의 다른 쪽 조부모에서 온 유전자를 제거한다고가정해보자.
실제로 그런 유전자가 있다. 어떤 초파리의 2번 염색체에는 ‘분리교란자 segregation distorter‘ 라는 유전자가 존재한다. 이 유전자는 단순히 다른 2번 염색체를 지닌 모든 정자만을 제거한다. 그래서 이 초파리는 정상 개체의 절반 분량의 정자만을 생산한다. 그렇지만 모든 정자는 분리 교란자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 초파리의후손에 대해 독점을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유전자를 카인이라고 하자. 그런데 카인은 아벨의 일란성쌍둥이이므로 자신을 죽이지 않고는 그의 형제를 죽일 수 없다. 아벨에게 사용할 무기가 세포 내로 방출되는 파괴 효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화학 무기와 같다. 이때 카인의 방어책은 자신을 보호해주는방독면 같은 기구에 의존하는 것뿐이다(이것은 파괴 효소를 물리치는유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카인의 방독면‘은 카인이 아벨에게 사용하는 가스로부터 카인 자신을 보호해준다. 카인은 인류의 조상이 되고아벨은 죽는다. 이렇게 해서 형제 살인을 행하는 유전자는 살인자가 대지를 상속하듯 자손을 퍼뜨릴 것이다. 분리 교란자와 형제를 죽이는 유전자들을 속칭해서 ‘감수분열 추진자meiotic drive‘ 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이들이 동반관계가 깨지는 감수분열 과정에서 편협한 결과가 나오도록 추진하기 때문이다. - P155

생쥐와 초파리의 경우, 카인 유전자는 자신의 방독면을 꼭 껴안음로써 교차가 일어날 때 떨어지지 않아 살아남는다. 그렇지만 특별히 카인 유전자의 침입을 많이 받는 염색체 한 쌍이 있는데, 이는 교차가 일어나지 않는 ‘성염색체‘ 이다. 사람을 비롯해 다른 많은 동물에서 성별은 유전자 추첨으로 결정된다. 부모로부터 한 쌍의 X염색체를 물려받으면 여성이 되고, 하나의 X와 하나의 Y를 받으면 남성이 된다(새, 나비, 또는 거미의 경우에는 반대이다), Y염색체에는남성의 특성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있으므로, Y는 X와 양립하지 않고 서로 교차되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X염색체의 카인 유전자는 자살의 위험 부담 없이 Y염색체를 소멸시킬 수 있다. 이 유전자는다음 세대에서 성비性比를 여성 쪽으로 기울게 하여 전체 인구가 대가를 치르도록 유도하지만, 후손을 독점하는 이익은 자신이 얻는다. 마치 불로소득자가 공유지의 비극을 유발하는 경우와 같다. - P157

옥스퍼드대학의 로렌스 허스트는 이 논점을 이용하여 성별은 융합성교fusion sex의 결과라고 예측했다. 즉, 클라미도모나스와 대부분의 동식물에서처럼 성교가 두 세포의 융합 형태로 일어나는 경우에 두 종류의 성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세포 사이에 관이 형성되어 핵 유전자가 이것을 통해 전달되는 접합의 형태에서는 세포의 융합이 없고 그래서 분쟁이 없으므로 살인자와 피해자의 성별은 필요 없다. 섬모성 원생동물과 버섯같이 접합성교 conjugation sex를 하는 종들에게는 수십 종류의 성별이 있다. 융합성교를 하는 종들에게는 대체로 두 종류의 성별이 나타난다. 특히 두 방식 모두로 성교를 하는 ‘하모‘섬모충은 좋은 예이다. 하모류가 융합성교를 할 때에는 두 종류의 성별이 보이고, 접합성교를 할 때에는 많은 성별이 나타난다. - P161

경쟁자가 나타났을 때 끝장을 보는 것이 기생생물에게 이롭다면, 숙주로서는 두 형질의 기생생물들에 의한 교차감염을 방지하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그리고 성교보다 교차 감염의 위험률이 높은 것은 없다. 난자와 융합하는 정자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안고 들어올 위험이 있다. 이것들이 침입하게 되면 난자 내의 기생생물들을깨워 난자를 병들게 하거나 죽일 수 있는 쟁취의 전쟁을 벌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정자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묻혀올 수 있는 물질을 난자 안으로 가져가는 것을 피하려 한다. 그래서 오로지 핵만을 난자에게 전달한다. 이것이 바로 안전한 성교가 아닌가?
이 이론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얻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느다란 관으로 여분의 핵을 전달하는 접합생식을 하는 짚신벌레는 이 이론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한다. 이 과정은 관을 통해 핵만 이동한다는점에서 위생적이다. 두 마리의 짚신벌레는 이렇게 2분 정도만 붙어있는데, 이 시간이 넘으면 관을 통해 세포질이 이동한다. 이 관은 너무 좁아서 핵도 간신히 비집고 통과한다. 따라서 짚신벌레와 유사종들만이 그렇게 작은 핵을 갖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 작은핵은 유전자를 저장하고 있어서 ‘암호 저장고‘ 라고 불리며 작은 핵에서 일상생활에 쓰이는 큰 핵이 만들어진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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