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스가 설명하는 방식은 복권추첨과 비슷하다. 무성생식을하는 것은 번호가 같은 복권을 많이 갖고 있는 것과 같다. 당첨 확률을 높이려면 번호가 다른 복권을 여러 장 갖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후손이 변형되거나 색다른 환경에 처하기 쉬울 때, 성은 종뿐 아니라 개체에게도 유리하다.
윌리엄스는 특히 진디나 단성생식을 하는 윤충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수세대에 걸쳐 단 한 번 성을 가진다. 진디는 여름에 장미 덤불 속에서 번식하고, 단성생식을 하는 윤충은 거리의 웅덩이에서 번식한다. 그러나 여름이 가면 진디나 단성생식을 하는 윤충의 마지막세대는 완전히 유성생식을 하게 된다. 그들은 암컷과 수컷을 낳고 새끼들은 서로의 짝을 찾아 교미하여 튼튼한 자손이 더 좋은 조건이 돌아올 때까지 딱딱한 포낭에 싸여 겨울이나 가뭄을 이겨내도록한다. 윌리엄스가 볼 때 이것은 복권추첨 이론Lottery theory과 맞아떨어졌다. 주변 조건이 우호적이고 예측 가능할 때는 되도록 빨리 생식하는 것이 좋다. 무성생식의 방법으로 그러나 이런 아늑한 세계가 파괴되어, 다음 세대의 진디나 윤충들이 새로운 거주지를 찾거나 예전의 거주지가 원상태로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할 때에는, 서로다른 다양한 자손들을 낳고 그중 하나가 적자로 살아남기를 바라는것이 유리했다. - P101

진보의 사다리라는 낡은 개념이 아직도 목적론의 형태로 남아 있다는 말이다. 진화는 종들에게 이롭기 때문에 종들은 진화가 더 빨리 진행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진화의 특징은 변화가 아닌 안정이다. 성, 유전자 수리, 후세에게 결점 없는 정자와 난자를 남겨주기 위해 고등동물들이 지닌 선별 메커니즘과 같은 이 모든 것들이 변화를 막기 위한 수단이다. 인간이 아니라 실러캔스가 유전자체계의 승리자이다. 실러캔스는 유전형질을 이루는 화학물질에 가해지는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세대 동안 원래 형태를계속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성에 대해 낡은 변절자 가설은 성이 진화를 가속화하는 작용을 한다고 했다. 이 모델은 돌연변이가 다양성의 근원이기 때문에 생명체들이 돌연변이 발생률을 꽤 높게 유지하려 할 것이고, 나쁜 돌연변이를 아주 잘 골라낸다고 했다. 그렇지만 윌리엄스는 어떤 생물이라도 돌연변이 발생률을 되도록 최소화하려는 행동 이외의 짓을 한다는 증거는 발견된 적이 없다고 했다. 모든 생물은 돌연변이 발생률을 0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진화는 돌연변이 방지의 실패에 달려 있다. - P109

붉은 여왕 이론은 세상이 필사적인 경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정말로 계속 변화한다. 그렇지만 방금 전에는 종들이 몇 세대 동안 안정적이며 좀처럼 변화를 겪지 않는다고 하지 않있는가? 그렇다. 붉은 여왕 이론의 핵심은 그녀가 계속 달리고 있지만 항상 같은 장소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결국 시작한 지점으로 되돌아온다. 변화는 있지만 발전은 없다.
붉은 여왕 이론에 따르면 성은 더 커지거나, 더 잘 위장하거나, 더 추위를 잘 견디거나, 더 잘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생물의 세계에 적응하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다. 성의 존재 이유는 반격하는 적과 싸우는 것이 전부이다.
생물학자들은 너무 이른 죽음에 대한 물리적 원인만을 과대평가했지, 생물학적 원인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진화를 설명하는대부분의 글에서 가뭄, 서리, 바람, 기근은 생존의 거대한 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낙타의혹, 북극곰의 털, 술통 같은 윤형동물의 고온저항성 몸 등과 같은 물리적인 적응의 신비는 진화의 위대한 성과 중 하나로 여겨진다. 성에 대한 최초의 생태학 이론들은 모두 물리적 환경에 대한 이러한 적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뒤엉킨 강둑 이론과 함께 다른 주제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붉은 여왕의 행군에서 이는 압도적인 음색을 갖는다. 사실 동물을 죽이거나 생식을 억제하는 요소가 물리적 요인일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기생동물, 경쟁자, 그리고 육식동물 같은 다른 동물이 다. 포화된 연못에서 굶고 있는 물벼룩은 경쟁의 희생양이지 식량 부족의 희생양은 아니다. 대체로 육식동물과 기생동물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세상 대부분의 죽음을 일으킨다.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는 것은 보통 곰팡이로 인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청어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보통 더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거나 그물에 걸려서이다. 무엇이 몇 세기 전에 당신 조상들을 죽였는가? 천연두, 결핵, 폐렴, 전염병, 성홍열, 설사 등이었다. 사고나 기근이 사람들을 약화시켰지만, 감염은 그들을 죽인다. 부유층의 사람들 중 노령이나, 암, 심장마비 등으로 죽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 수는 적었다. - P112

기생생물은 육식동물보다 두 가지 이유에서 더 파괴적인 효과를나타낸다. 하나는 그들이 수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자신들과 거대한 백상어 외에는 포식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아주 많은 기생생물을 가지고 있다. 토끼가 담비, 족제비, 여우, 매, 개와 사람 등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많은 토끼가 이, 벼룩, 모기, 촌충, 점액종 바이러스에게 죽는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의 원인이다. 바로 포식자는 먹이보다 덩치가 크지만, 기생생물은대체로 숙주보다 작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생생물의 생존기간이 짧아서 주어진 시간 동안 숙주보다 더 많은 세대를 거친다는 의미이다. 내장 속의 박테리아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인류가 유인원에서부터 진화해온 전체 세대의 6배를 거친다. 그 결과 숙주보다 더빨리 번식하여 숙주의 개체수를 감소시키거나 조절할 수 있다. 포식자는 단지 먹이가 풍부한가에 따라 많아졌다 적어졌다 할 뿐이다.
기생생물과 숙주는 아주 친밀한 진화관계를 맺고 있다. 기생생물의 공격이 더 효과적일수록(더 많은 숙주를 침범하거나 하나의 숙주로부터 더 많은 자원을 얻을수록), 숙주의 생존 기회는 방어책을 구축할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숙주가 잘 방어할수록 이 방어책을 이겨낼 수 있는 기생생물이 자연선택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익은 항상 한쪽에서 다른 쪽 사이를 오간다. 위기가 닥치면 닥칠수록 숙주와 기생생물 둘 다 힘을 다해서 싸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결코 승리 없이 일시적인 휴식만을 얻는 진정한 붉은 여왕의 세계이다. - P114

또한 변화가 가득한 게 성의 세계이기도 하다. 성은 매 세대 유전자를 바꿔야 할 훌륭한 동기로 작용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성의 역할이다. 이전 세대에서 특정 유전자들이 기생생물의 공격을 잘 방어해냈다면, 그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에서 동일한 유전자 조합을 피해야하는 가장 좋은 이유이다. 다음 세대가 돌아올 때쯤이면, 기생생물들은 전 세대에서 가장 우수했던 방어에 대한 해답을 알아낼 것이기때문이다. 마치 운동과 같다. 체스나 축구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라도 상대방이 그 해법을 터득하면 더 이상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공격의 모든 혁신은 곧 방어의 혁신에 의해 무마된다. - P115

그렇지만 진화에서는 진화 속도가 느린것들이 빠른 것들보다 유전자를 더 많이 섞는다. 세대의 길이와 재조합 정도의 연관성에 대한 오스틴 버트의 발견은 붉은 여왕이 작용한다는 증거이다. 기생생물이 대항할 것을 염두에 두면 세대가 길수록 유전자의 재조합이 많이 일어나는 편이 좋다.  - P121

그렇지만 붉은 여왕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신비스럽고 강력하다. 성교를 거쳐 태어난 자손이 자신의 클론보다 더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 성의 이점은 단일세대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이는 한 세대에공통적인 어떠한 자물쇠라도 이에 맞는 열쇠가 기생생물 사이에서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몇 세대 후에는 반드시 피해야 할자물쇠가 되는 것이다. 그때쯤이면 이에 맞는 열쇠가 흔할 테니 말이다. 독특한 모양의 자물쇠가 매우 유리하게 된다.
유성생식을 하는 좋은 무성생식 종에게는 불가능한 자물쇠의 도서관에 의존할 수 있다. 이 도서관을 다른 말로 하면 이형접합체로異型接合體, 혹은 다형多型 현상인데, 거의 비슷한 뜻이다. 이것은 근친교배를 거듭하면 잃게 되는 자원이다. 즉 대부분의 개체군(다형현상)과 모든 개체(이형접합체)에게서 한순간에 동일 유전자의 다양한 형태가 발견된다는 의미이다. 서양인의 ‘다형화‘된 푸른색과 갈색 눈동자는 좋은 예이다. 갈색 눈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푸른 눈동자의 열성 유전자도 지니므로, 이들은 이형접합체이다. 이런 다형현상은 순수 다윈론자들에게는 성만큼이나 의문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이는 한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와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갈색 눈이 푸른 눈보다 조금이라도 우성이면(더 정확히 말해서 정상 유전자가 겸상적혈구빈혈증 유전자보다 우성이라면), 갈색 눈은 푸른 눈을 멸종시켰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런 다양한 형태의 유전자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 이형접합체가 다양한 것일까? 겸상적혈구빈혈증의 경우에는 이 유전자가 말라리아를 퇴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형접합체(정상 유전자 하나와 겸상적혈구 유전자 하나를 지닌 개체들은 말라리아가 만한 곳에서 정상 유전자를 지닌 개체들보다 더 유리하다. 하지만 동형접합체들(두 개의 정상 유전자나 겸상적혈구 유전자를 지닌 개체들)은각각 말라리아나 겸상적혈구빈혈증에 시달린다. - P122

 해밀턴이 말한 대로 반反기생성 적응은 끊임없는 퇴화이다."
무성생식 종에서는 불리한 유전자가 멸종해버리지만, 유성생식 종에서는 그저 희귀해질 뿐이고, 그랬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해밀턴은 "우리 이론에서 성의 핵심은 지금은 쓸모없지만 나중에는 유하리라 예상되는 유전자를 저장한다는 데 있다. 성은 끊임없이 유전자를 조합하려 하고, 불필요한 것이 필요하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적었다. 질병 저항성에는 영구적인 이상 상황이 존재할 수 없다. 비영구적인 퇴화 현상이 돌고 돌 뿐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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