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게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때마다 나는 1999년에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유체 이탈, 도플갱어, 예지몽, 인체자연발화, 공중부양 등등 불가사의한 능력이나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정기 구독하던 어린이 잡지에 매달 그런 기사가 한 꼭지는 실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도 역술이나 점, 단학 따위가 판을 치고 있었다. 한강 다리가 무너지거나 IMF 사태로 대량 실직이 일어나는 등예측 불허의 현실 속에서 다들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 때라 그런 비과학적인 말들에서 위안을 찾으려고 했던 모양이다. - P9
그러다가 2012년 ‘춤추는 말의 숫자에 달린 원이 아홉개가 되는 때, 고요한 아침으로부터 종말이 올 것‘이라는 그의 예언시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 예언을 싸이의 <강남스타일> 유튜브 조회수가 십억 회가 넘어가면 지구 종말이 온다는 의미로 해석했기 때문이었는데, 예언이라는 게 이런 식으로 이현령비현령의 사후 추정이라는 걸 이보다 잘 보여주는 예는 없을 것이다. 말춤이라서 말세인가? 말장난을 하려는 게 아니다. 소설가로서 나는 예언의 내용보다는 그 형식이 언어여야만 한다는 게 더 흥미롭다. 어떤 예언가가 환상 속에서 미래의 뭔가를 봤다고 해도 그는 그것을 자신의 지식 수준에 맞춰 언어로 표현해야만 한다. 실제로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모를까, 그걸 언어로 변환한 이상 그 진의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게다가 번역까지된다면 왜곡은 피할 길이 없다. 결국 예언은 그 형식 때문에 빗나갈 가능성이 많은 셈이다. - P10
"그 한 문장으로 판매금지가 결정될 수 있단 말인가요?" "군부가 판매금지를 시킬 때는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요. 그게 독재정권이 하는 일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찾아야 해요. 정권이 싫어하는 게 뭔지를 그렇게 독재정권하의 사람들은 스스로 내적 검열관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탓에 판매금지된 책을 구해 읽어보면 가끔 어리둥절할 때가 있어요. - P16
"과거는 제가 분명히 겪은 일이지만, 앞으로 이 친구와 결혼한다는 건 가능성일 뿐이잖아요." 나는 그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았지만 지민은 그렇게 말했다고한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미래를 기억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그건 지민씨의 엄마가 소설에 쓴 말이에요. 소설 속 연인은 두번의 시간여행을 통해 시간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시간이 없으니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요. 오직 이 순간의 현재만 존재하죠. 그럼에도 인간은 지나온 시간에만 의미를 두고 과거에서 현재의 원인을 찾습니다. 시간이 20세기에서 21세기로 흐르든, 19세기로 흐르든 마찬가지예요. 안타까운 건 이런 멋진 소설을 쓰고서도 지민씨의 엄마가 이십 년 뒤의 지민씨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에요. 가장 괴로운 순간에 대학생이 된 딸을 기억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선택은 달라졌을 겁니다. 용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기억할 때 가능해집니다. 그러니 지금 미래를 기억해, 엄마를 불행에 빠뜨린 아버지와 그 가족들을 용서하길 바랍니다." - P29
1999년 여름, 1학기 종강파티가 끝나고 지민이 내게 자신은곧 죽을 사람이라고 말할 때만 해도 나 역시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다. 어릴 때 내가 상상한 미래는 지구 멸망이나 대지진, 변이 바이러스의 유행이나 제3차세계대전 같은 끔찍한 것 아니면 우주여행과 자기부상열차, 인공지능 등의 낙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1999년에 내게는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미래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과 일어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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