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은 순청 앞마당에 모여 있었다. 인근 수령들이 말을몰고 들어오자 마구간이 모자랐다. 행궁과 옥당에 딸린 말은순청 마구간을 차지했고, 수령들의 말은 민촌의 헛간에 가두었다. 나머지 말들은 노지에서 눈비를 맞았다.
주린 말들은 묶어 두지 않아도 멀리 가지 못했다. 말들은 모여 있어도 제가끔 따로따로인 것처럼 보였다. 말들은 주려도 보채지 않았다. 먹을 때나 굶을 때나 늘 조용했다. 말들은고개를 숙여서 눈 덮인 땅에 코를 박았다. 그러고는 앞발로눈을 헤치고 흙을 긁었다. 말들은 흙냄새 속에서 아직 돋아나지 않은 풀냄새를 더듬었다. 말들의 뼈 위로 헐렁한 가죽이늘어져 있었다. 언 땅 밑에서 풀냄새는 멀었다. 말들은 혀를내밀어서 풀뿌리를 앓았고, 서로의 꼬랑지를 빨아먹었다. 주저앉은 말들은 갈비뼈가 드러난 옆구리로 가늘게 숨을 쉬었다. 말들은 주저앉아서도 코를 땅에 박고 풀냄새를 찾았다.
말들은 가끔씩 가죽을 실룩거려서 등허리에 쌓이는 눈을 털어 냈다. 주저앉은 말들은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옆으로 쓰러졌고, 쓰러진 말들은 앞다리를 뻗어 눈을 긁었다. 뱃가죽을 보이며 발랑 뒤집힌 말도 있었다. 자지가 오그라진 수말들이네 다리를 들어서 허공을 긁었다. 말 다리는 곧 땅 위로 늘어졌다. 말들의 죽음은 느리고 고요했다. 말들은 천천히 죽었고질기게 숨쉬었다. 옆으로 쓰러져 네 다리를 길게 뻗은 말들도사나흘씩 옆구리를 벌럭거리며 숨을 쉬었다. 숨이 다한 직후에 묵은똥이 비어져 나오고 오줌이 흘러나오는 소리 외에는,
말들은 죽을 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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