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손이나 눈에 있지 않다. 운전대를 한 손으로 잡고도 운전을잘 할 수 있고 전화를 쥐고서도 도로로 시선을 향할 수 있다. 사실 전화기를 손에 쥐는 행동이나 운전대를 조종하는 행동에는 인지능력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과정은 대부분 자동적,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좌회전할 때 혹은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어야 할 때 팔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운전 행위에 따르는 한계가 아니라 주의력 자원과 인지가 갖는 한계다. 사실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는 점에서 손에 드는 전화기나 핸즈프리 전화기는 거의 차이가 없다. 같은 방식, 같은 정도로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아주 능숙하고 별로 힘을 들이지 않는 것 같아도 운전과 통화는 둘 다 한정된 용량의 주의력 자원을 소모하는 행위다. 그리고 운전과 통화라는 다중작업을 하게 되면, 비록 전화로 무슨 말을 듣든,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던 간에 운전이나 통화를 따로 할 때보다 더 많은 주의력 자원이 요구된다. - P46
고릴라 실험을 다시 한 번 진행하면서 나는 실험 참가자의 과제인 패스 횟수 세기의 난이도를 높여 주의력의 한계를 실험했다. 흰 셔츠를입은 사람들의 패스를 모두 세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흰 셔츠를 입은 사람들에 집중하되 공중에서 넘기는 패스와 바닥에 튕겨서 넘기는 패스, 두 종류로 나누어 세라고 한 것이다. 내 예상대로 갑자기 등장한 고릴라를 못 본 사람의 수는 20퍼센트 증가했다. 횟수 세기 과제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실험 참가자들은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그결과 고릴라를 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정신적 자원은 줄어들었다. 주의력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많이 사용하면 그만큼 예상치 못한 일을 알아차리게 될 가능성은 줄어든다. 전화기를 손으로 드는 게문제가 아니라 한정된 인지 자원을 소비하는 게 진짜 문제다. 무엇보다중요한 사실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 실험 참가자들에게서 볼 수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인지의 한계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P47
이런 실패나 주의력 착각이 시각이라는 감각에만 국한되는 것은아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주의 난청無主意 難聽 inattentional deafiness 을 경험할수도 있다. - P50
진이 설정한 상황에서 출근 중인 사람들은 회사에 빨리 가야 한다는생각에 빠져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저 그런 거리의 악사들과 조슈아 벨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연주에 관심을 기울이기는커녕, 조슈아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누구도 조슈아의 수준 높은 음악에 귀 기울이지 못한 이유는 진이선택한 시간과 장소였다. 진은 우려를 표명했다. "만약 우리가 지상 최고의 음악가 중 한 사람이 연주하는 가장 아름다운 곡들을 듣기 위해 잠시 멈출 시간조차 없다면, 현대인들이 삶의 물결에 휩쓸려 그런 소중함을 느낄 수 없게 귀가 멀고 눈이 먼다면, 그때는 또 무엇을 놓치게 되는가?" 분명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되겠지만, 이 거리 공연은 현대인의 삶에 아름다운 것들을 감상할 기회가 부족함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다. 이치에 맞게 설명하자면, 출근할 때처럼 하나의 일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나타나도, 설령 그것이 출근길에서 연주하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라 할지라도, 그 존재를 몰라볼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P53
주의력 착각이 곳곳에 배어 있다면 인류는 어떻게 살아남아 이런 사실을 연구하고 있을까? 어째서 우리 조상은 예기치 않은 포식자들에게모두 잡아먹히지 않은 것일까? 무주의 맹시와 그에 따른 주의력 착각은 현대 사회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조상들도 무언가를 인식하는 데 현재의 우리와 비슷한 한계를 지녔음에 틀림없지만 세상이 단순했던 만큼 인식해야 하는 대상 역시 적었을 것이다. 즉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물체나 상황도 지금보다 드물었을 것이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새로운 기기들에 엄청난 주의를 더 많이, 더 자주, 더빨리 기울여야만 한다. 시각과 주의력을 담당하는 우리 신경계는 자동차 속도가 아니라 보행자 속도에 맞춰져 있다. 걸을 때는 예상외의 물체를 발견하기까지 지체되는 몇 초가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운전할 때는 다르다. 예상외의 상황을 알아차리는데 1초의 10분의 1이라도 지체하면 당신 혹은 다른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알아차리기가 지체되는현상은 가장 빠른 속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무주의 효과는 빠른 속도에서 증폭된다. - P64
문제는 우리의 주의력이 부족할 때 이를 알려줄 증거가 부족하다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의력을 착각하는 근본원인이다. 우리는 미리 알았을 때만 예외상황을 인식할 뿐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은 인식할 수없다. 세상을 제대로 인지하려면 미리 알아챌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지 깨닫게 해주는 경험, 즉 가슴을 두드리는 고릴라를 못 본 것처럼 타인에게 핑계를 전가할 수 없는 (그리고 변명해봤자 소용없는) 경험을 필요로 한다. - P65
기억력 착각이란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한계를 착각한다는 뜻이 아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기억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기억력 착각은 자신이 한 일을 어떻게 기억하는지가 강조되어 발생하는 착각이다. - P79
무엇을 인지할 때 사람은 모든 정보를 상세하고 완전하게 조합하기보다는 본 것(들은 것, 냄새 등)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추출하려 한다. 인간이 입수되는 모든 자극을 똑같이 충직하게 간직하도록 뇌를 진화시켜 왔다면 보유 에너지와 자원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억은 우리의 인지내용을 모두 저장하는 대신, 보고 들었던 사실을 가지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 연관성을만든다. 이런 연관 작업은 우리가 본 것에서 중요한 사실을 포착하고세세한 내용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억을 더 잘 저장하고 꺼낼수 있도록 ‘회상의 실마리retrieval cues‘ 를 제공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회상의 실마리는 유용하지만 기억의 정확성을 실제보다 부풀려서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에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사람은 원본의 기억과 연관 작업 및 지식에 기초해 재구성된 기억을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 P80
앞뒤 방면 사이에 명백히 보이는 변화를 포착하지못하는 놀라운 현상을 변화 맹시Change bindiness 라고 한다. 현재 상황과 이전 상황 사이에 존재하는 변화를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 논의했던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indness와 관련 있지만 동일한 현상은 아니다. 무주의 맹시 현상은 목격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던 어떤 대상의 등장을 알아채지 못했을 때 일어난다. 우리가 포착하지 못한 대상은 마치 고릴라처럼 우리 바로 앞에 내내 있으면서 충분히 알아볼 수 있게 뚜렷하다. 변화 맹시로 인해 줄리아 로버츠가 크루아상을 먹고 있던 장면을 기억하지 못하면 팬케이크를 먹고 있는 현재 장면에서 변화를 전혀 포착할 수 없다. 변화 맹시는 현재 모습과 이전 모습 사이의 변화를 비교하여 포착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어떤 사물이 갑자기 다른 사물로 바뀌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러니 변화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매순간 눈에 보이는 대상을 꼼꼼히 점검한다면 뇌의 능력을 지나치게 낭비하는 일일 것이다. 변화 맹시보다 큰 문제는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이러한 오해에 대니엘 레빈은 깜찍하게도 ‘변화 맹시에 대한 맹시change blindness blindnes‘ 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들은 본인의 변화 맹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 P90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정확히 기억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 기억은놀랄 만큼 불완전하다. 대개 우리가 재생하는 기억은 개략적일 뿐이고나머지는 추론으로 채워지며 다른 영향에 좌우된다. 즉 기계로 녹음한음악이라기보다 즉흥적인 반복 연주에 가깝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이정확하다고 믿는 실수를 종종 저지르며, 일어난 일에 대한 정확한 기억과 나중에 덧붙여진 기억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이것이 켄의 사례를설명해준다. 켄은 그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긴 했지만 그 이야기를 자신의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런 유형의 왜곡은 ‘기억출처의 오류 記億出處誤謬failure of source memory‘ 라는 용어로 알려져 있다. 켄은 그 기억의 원출처를 잊어버렸다. 기억출처의 오류는 고의적이지 않은 여러 표절 사례의 원인이 된다. - P100
1899년 프레더릭 컬그로브Frederick Colgrove는 클락Clark 대학 박사과정으로 주요 사건에 대한 상세 기억‘을 체계적으로 처음 연구한 사람이다. 컬그로브는 179명의 중·노년에게 아브라함 링컨의 암살 소식을 들었을 때 어디 있었는지 질문했다. 30년도 넘은 사건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도록 요청했는데도 70퍼센트가 그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해냈다. 게다가 몇 명은 이례적으로 대단히 자세하게 기억했다. 80년이 흐른 뒤 사회심리학자 로저 브라운과 제임스 컬릭은 충격적이거나 중요한 사건에 대한 선명하고 상세한 기억의 특성을 기술하기위해 ‘섬광기억 閃光記憶 flashbulb memories‘ 이라는 표현을 만들었다. 사진 촬영과 비슷하게 들리는 이 용어에는 충격적이고 감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둘러싼 상세한 일들은 사건이 발생되는 순간 기억에 각인된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사건은 어떤 장면이 필름에 찍히듯 뇌에 각인된다. 브라운과 컬릭에 따르면 섬광기억은 ‘플래시가 터질 때 현장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보존하는 사진‘과 매우 흡사하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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